왜 86 운동권 정치는 청산되어야 하는가? [민경우의 운동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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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출신 21대 국회의원 약 70명 너무 많아
80년대 중반 운동권은 특유의 급진주의 이념 가져
반대한민국 역사관·평등주의·사회주의 정치관으로 변형
이재명 사법 리스크, 정치적 문제로 치환 법치 무력화
ⓒ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 데스크] 필자는 운동권 정치가 청산되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나눠 살펴보겠다.

첫째. 너무 많다. 21대 국회의원에 운동권 출신은 70명 정도로 민주당 국회의원 164명중 42.6% 해당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비교를 위해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던 11대 국회와 비교하면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 총원은 160명 육사 출신 23명이고 육사 이외에 해사·공사 등을 합치면 29명으로 14.4~18.1% 수준이다.

이 정도면 정치 사회적인 이유를 떠나 단순 수치만으로도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마치 독과점 기업을 분할하여 기업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둘째. 80년대 중반 운동권은 특유의 급진주의 이념을 갖고 있었다. 이른바 NL(민족해방, National Liberation)-PD(민중민주, People’s Democracy),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이라는 것들이다. 이를 사회구성체 논쟁이라고도 한다.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결정적이었던 것은 무엇이 더 마르크스적이고 누가 더 레닌 적이었는가가 아니라 아무도 영미식 자유주의·민주주의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80년대 중반은 한국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성장하며 고도 산업국가로 발전하던 기점이었다. 그런데 그때 신식민지. 반복건 하며 시대착오적인 논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불과 몇 년 후 논쟁의 뿌리였던 소련 사회주의가 멸망했음에도 아무도 반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당시 유력 논객이었던 유시민·조희연 등이 포함된다. 유시민과 조희연을 비롯한 대다수 인텔리는 90년대 초중반까지도 마르크스와 레닌을 들먹이며 고색창연한 논쟁을 이어가다 90년대 중반 어느 날 갑자기 시민운동, 자유주의의 주창으로 변모한다. 변신하는 거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오늘 불현듯 그랬다는 점이다.

인텔리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정직함이다. 이 글과 관련하여 특별히 지적할 것은 정직한 자기 평가가 전제되지 않는 변신은 변형된 형태로 이전 사상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이다.

80년대 20~30대에 급진이념을 받아들이고 소련 사회주의권이 멸망했음에도 아무런 반성도 없었던 수많은 청년이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사회로 진출했다. 그들은 이전의 마르크스 레닌주의·주체사상은 아니더라도 그 변형된 이념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나이를 먹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주사파는 아니면서 그것에서 흘러나온 변형된 이념 중 현실정치에 영향을 미친 것은 첫째. 반대한민국 역사관 둘째. 평등주의, 셋째. 사회주의 정치관이다.

각각이 현 상황에 미친 영향을 간단히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반대한민국 역사관은 남한에 비해 북한이 정통이라고 믿는 역사관이다. 북한이 역사의 정통이라고 생각하면 북한의 행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나 대응이 나오지 않는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래 남북 유화책의 뿌리에는 그러한 역사관이 숨어 있다. 여기에는 천안함, 연평도 등 북한의 도발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북한의 군사 도발 가능성을 의미 있게 고려하지 않는 외교·안보 전략을 포괄한다. 대공 수사 역량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음으로는 평등주의다. 때마침 IMF를 계기로 윗세대가 구조조정이 되고 민주화 세대가 경제 권력을 물려받았다. 이들은 86세대의 평등주의에 기초해 정규직을 신성시하고 비정규직을 불온시하는 성향을 띄었다. 이에 따라 정규직-비정규직을 축으로 한 양극화가 전 사회적으로 확산하고 노동의 경직성이 심화함에 따라 저성장체제가 유지되었다. 사회적 양극화와 저성장체제는 86세대의 평등주의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

끝으로 사회주의 정치관을 들 수 있다. 사회주의는 정치적 상대방을 정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절멸하려는 유인하고 있다. 또한 진리나 사실보다는 진영을 앞세우는 대결적 정치이념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조국 사태 이래 이재명 체제에 이르러서는 극단적인 진영 대결로 날을 세우고 있다.

지난 2022년 3월 대선이 끝났을 때 사법 리스크를 갖는 이재명 대표는 사법 리스크를 해소한 후 차기대선에 도전하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는 인천 계양을에 출마하여 사법 리스크를 정치적 문제로 치환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민주주의 사회의 골간인 법치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 모든 상황에 운동권 정치인들이 깊게 관여했으며 오랜 뿌리를 갖는 그들의 사회주의적 정치관이 영향을 미쳤다.

80년대 중반 직선제를 두고 벌어진 각축에서 학생들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87년 4월 전두환 대통령이 호헌제를 선언했을 때 학생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걸고 거리 민심을 뒤바꿔 결과적으로 전두환의 간선제-김영삼·김대중 씨의 직선제 대치 국면에서 돌파구를 열었다.

87년 직선제 이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거리 투쟁을 할 만큼 중대한 과제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무렵부터는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고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는 양상일 것이다. 따라서 87년 이후 벌어진 주로 친북적 통일운동은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오는 2024년 총선은 두 개의 세력이 대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은 한동훈을 위시한 90년대 초반 개인주의로 무장한 전문가 집단이고 다른 한 집단은 이념 정치에 물든 학생운동 세력이다.

운동권 청산은 이번 총선의 시대정신이자 87년 이후 미뤄두었던 전문지식과 개인주의로 무장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글/ 민경우 시민단체 대안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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