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부터 쿠팡에서 '햇반' 로켓배송 물량 품절
내년 협상은 ing…연말 전에는 화해 전망돼
갑 대 갑
"서로 자기들이 을이라는데…그냥 갑끼리 싸우는 것 아닌가요?"
쿠팡과 CJ제일제당이 벌이고 있는 '햇반 전쟁'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한 유통업계 관계자가 해 준 말입니다. 매출 20조원을 돌파한, 이커머스의 대명사 쿠팡과 CJ라는 재벌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이 자신을 '을'이라 지칭하는 게 조금 어색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양 사는 최근 CJ제일제당의 즉석밥 햇반을 놓고 '한 판' 붙었습니다. 발단은 이렇습니다. 쿠팡이 갑자기 햇반과 비비고 만두 등 CJ제일제당의 주요 품목에 대한 발주를 중단합니다. 이에 대해 CJ제일제당은 내년 마진율 협상에서 과도한 요구를 하던 쿠팡이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쿠팡에서 CJ제일제당 제품을 팔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를 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전형적인 '유통사 갑질'이라는 주장입니다.
이슈가 발생한 지 1주일쯤 지난 8일부터 쿠팡 로켓배송에서는 더 이상 햇반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로켓배송으로 구할 수 있는 햇반 시리즈는 비인기 제품인 잡곡밥 정도입니다. 햇반이 차지하던 자리는 쿠팡에 입점한 개별 판매자가 판매하는 제품과 경쟁사들의 즉석밥 뿐입니다. 내일 당장 햇반이 배달되길 원하던 분들에게는 참 불편한 상황입니다.
진짜 '갑'은 누구?
양 사의 이야기는 모두 그럴듯해 보입니다. 보통 업계에서 제조사와 채널 간 다툼이 벌어질 경우 불리한 건 제조사입니다. 대형마트가 수차례 갑질 논란에 휩싸인 것 역시 채널이 가진 힘 때문이었죠. 특히 가격 대비 무겁고 부피가 큰 햇반은 이커머스가 몹시 중요한 판매처입니다. 그 중에도 분기 매출이 6조원을 웃도는 쿠팡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체 햇반 판매 중 쿠팡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라니 말 다 했죠. 이런 쿠팡이 햇반 판매를 틀어막으면 CJ제일제당으로서는 '갑질'이라 생각할 만도 합니다.
쿠팡은 '전적'도 있습니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에 3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합니다. 이유는 '갑질'이었습니다. 갑질 대상에는 LG생활건강, 한국P&G, 매일유업, SK매직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기업들이 포함됐습니다. 공정위가 대기업 제조사와 이커머스 중 이커머스가 '갑'이라는 걸 인정한 셈입니다.
까마귀 날자 떨어진 배
하지만 CJ제일제당도 보통 제조사는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번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햇반은 시장 점유율이 60%에 달하는 압도적 1위 브랜드죠. '밥에 진심'인 한국인이 선택한 브랜드답게, 충성도도 매우 높습니다. 쿠팡에서 햇반을 구매하지 못한 소비자들은 오뚜기밥이나 쎈쿡, 더미식밥을 찾는 게 아니라 다른 이커머스나 대형마트에서 햇반을 구매합니다. 쿠팡이 판로를 틀어막았다고 굶어죽는 '불쌍한 제조사'가 될 일은 없어 보입니다.
쿠팡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만, 또 그 사람들이 다 '쿠팡만' 이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서너개의 이커머스 중 그때그때 할인 행사가 있는 곳을 골라 쇼핑합니다. 햇반처럼 '대체불가' 자원의 경우 말할 것도 없습니다. 쿠팡이 햇반을 팔지 않으면, 바로 다른 이커머스를 찾으면 됩니다.
실제 쿠팡이 발주를 중단하자마자 마켓컬리·11번가·위메프 등 주요 이커머스들은 'CJ제일제당 특가전'을 열고 햇반 할인 판매에 나섰습니다. 쿠팡에서 흘러나온 '햇반족'을 잡기 위한 거죠. 햇반만 예시로 들었지만 CJ제일제당의 라인업에는 비비고 만두, 컵반덮반, 고메 핫도그 등 인기 상품이 무수히 많습니다.
쿠팡은 주문량이 늘어 발주량을 맞추지 못한 것이라는 CJ제일제당의 해명도 믿지 않는 눈치입니다. 쿠팡과 CJ제일제당은 전년도 말에 다음해 분의 발주량을 협의합니다. 그런데 새해가 돼서야 판매가 늘었으니 약속한 물량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는 '을'의 행보로는 좀 어색합니다.
칼로 물 베기
이 싸움이 오래 갈 것으로 보는 관계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일각에서 양 사의 분쟁을 '부부싸움'으로 부르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금방 화해할 거라는 거죠. 발주 중단 이슈는 본질적으로 '협상'의 일부이며 양 사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거래처이기 때문에 곧 타협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갈라서는 계기가 되는 게 또 부부싸움입니다. 3년 전 쿠팡과 '부부싸움'을 펼쳤던 LG생활건강은 아직까지도 쿠팡에서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죠. 부디 쿠팡과 CJ제일제당은 '끝'까지 가는 관계가 되지 않길 바라 마지 않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