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가 2000억 투자한 ‘제2의 쿠팡’, 창업자가 물러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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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8. 오전 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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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 마 투자 열풍 잦아들어
AI 옥석가리기 시작

일러스트=양진경

그림계의 ‘오픈 AI(챗GPT 개발업체)’라 불리던 영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스태빌리티 AI’의 에마드 모스타크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투자자들과 갈등을 겪다가 최근 경영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이 최근 글로벌 AI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퇴임의 이유는 신규 투자 유치 실패와 적자 확대 등 경영난. 스태빌리티 AI는 문자만 입력해도 원하는 내용의 양질을 그림을 그려주는 AI 서비스(스테이블 디퓨전)를 2022년 무료 공개하면서 하루 이용자가 1000만명에 달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며 AI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실제 서비스를 출시한 지 몇 달 안 돼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구체적인 수익 모델 없이 비슷한 기술과 서비스가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미국 IT 전문 매체 테크크런치는 “에마드 모스타크가 물러난 것은 AI 스타트업이 돈을 버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2022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AI 투자 열풍 속에 뚜렷한 수익 모델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스타트업들이 폐업하거나 주요 경영진이 물러나는 경우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여전히 조 단위의 천문학적 투자를 유치하는 AI 업체들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투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무너지는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AI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자금이 몰리는 ‘묻지 마 투자’가 성행했지만, 이제는 될성부른 기업을 선별하는 ‘1차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 한 가지 확실한 건 AI도 (비전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수익을 내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새로운 AI를 개발하는 것과 이것으로 수익을 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AI 산업, 옥석 가리기 시작됐다

스태빌리티 AI와 비슷한 사례는 한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2021년 2000억원을 투자하며 ‘제2의 쿠팡’이라 기대를 모은 AI 교육기술 스타트업 ‘뤼이드’도 얼마 전 창업자가 물러났다. 창업자 장영준 대표가 작년 12월 자진 사임하고,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섰다. 투자자들과의 갈등이 주원인이었다. 장 대표는 브라질 정부 등 제3세계 국가들에 공교육 디지털 사업을 추진하려 했으나, 투자자들은 적자가 누적된 상황에서 위험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이에 반대했다. 뤼이드는 최근 3년간(2021~2023년) 약 940억원의 적자를 냈다.

뤼이드뿐 아니라 최근 국내 AI 스타트업에서는 ‘정리해고’와 ‘주요 임원 퇴직’ 같은 이야기가 계속 돌고 있다. 실제 자율주행용 AI 기술을 개발하는 A업체에선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선임 1년 만에 그만뒀다. AI 기반 수면기술 서비스를 제공하는 B업체에선 적자가 계속 커지자 올해 CEO 교체와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한 국내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술력으로만 승부를 겨뤄 살아남을 수 있는 AI 스타트업은 많지 않다”며 “뚜렷한 수익모델이나 유료 서비스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AI’라는 이름값만으로 투자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AI 스타트업 투자는 최근 주춤하다. 스타트업 전문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츠’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액(425억달러)과 투자 건수(2500건)는 전년 대비 각각 10.1%, 24.1% 줄어들었다.

그래픽=양진경

◇돈 먹는 하마 AI

AI 스타트업들이 창업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위기에 빠지는 것은 막대한 투자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 AI 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AI는 서버 구축·운영과 데이터 확보에 큰돈이 들어간다. 더구나 AI 인력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선 큰 연봉을 감내해야 한다. 스태빌리티 AI의 경우 한 달에만 이 같은 운영비로 800만달러(약 108억원)씩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액을 투자받은 유망 스타트업이라 해도 안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실제 미국에선 8억5200만달러(약 1조1500억원)의 누적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가 40억달러(약 5조4100억원)에 달했던 의료 자동화 AI 기술 스타트업 ‘올리브 AI’가 작년 10월 결국 문을 닫았다. 풍부한 자금력을 앞세워 여러 회사를 인수하는 등 사업을 확대하다가 결국 수익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유럽 시장분석업체 CCS 인사이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4년엔 생성형 AI가 찬물을 뒤집어쓰고 성장 둔화를 맞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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