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8500명 길바닥 나앉을판…파산 위기에 빠진 이 기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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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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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 금리 인상 장부 손실 급증
채권 매각 결정에 고객들 뱅크런
고금리 예측 못하고 채권 과잉투자
수익률 저조해 유동성 문제 발생

SVB CEO 주식 매도 ‘도덕적 해이’
직원 8500명도 해고 위기


실리콘밸리은행(SVB) [로이터=연합뉴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은 단 이틀 만에 벌어졌을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다만 은행이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경고음은 이미 곳곳에서 울리고 있었다. 지난달 2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테크 스타트업이 2000년대 닷컴 버블 이후 가장 큰 가치 하락에 직면해 SVB 시가총액이 2년 전 440억 달러에서 현재 170억 달러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SVB파산 배경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계속된 기준금리 인상과 테크업계 불황이 깔려있다. 여기에 예민한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 고객의 예금인출이 더해져 미국 16번째 규모의 중견은행 파산사태가 빚어졌다.

SVB는 시스코, 비욘드미트, 쇼피파이 등 굵직한 스타트업의 초기 자금을 조달했다. 미국 IT·바이오테크 회사의 절반이 SVB를 이용했을 정도로 벤처·스타트업 지원에 특화한 은행이다. 식품관리 스타트업 셰프엔진의 스테판 칼브는 NPR에 “일반 카드 회사에서 신용카드를 발급 못받고, 대형은행에서 대출을 못받는 고성장 스타트업도 SVB에서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함께 테크기업으로 돈이 몰리면서 작년 3월 말에는 SVB 보유예금이 2000억 달러에 달했다.

문제는 미국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계속 인상하면서 발생했다. 금리가 높아지자 신생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졌고, 기업 성장이 둔화돼 예금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고객이 요구하는 금리가 높아지면서 신규 예금을 유치하는 비용도 올라갔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미실현 손실(자산 획득 비용과 시장 가치간 격차) 문제도 생겼다. SVB의 모회사인 SVB파이낸셜은 장기 미국 국채와 정부지원 모기지 증권을 주로 매입했는데, 고금리 때문에 SVB파이낸셜이 보유했던 증권들이 장부가격보다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말 SVB가 보유한 증권 포트폴리오에서 미실현손실은 170억 달러(약 22조5000억원)를 넘어섰다.

SVB는 대출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자를 안심시킬 목적으로 8일(현지시간) 증권 매각 결정을 발표했다. 210억 달러 상당의 증권을 18억 달러의 손실을 안고 매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결정이 시장에 공개되자 상황은 악화됐다. 주가가 폭락하면서 자본 조달이 더 어려워졌고, 수익률과 투자 위험도에 민감한 벤처캐피털에서 SVB에 예치했던 예금을 앞다퉈 인출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규제 당국에 따르면 9일 은행 예금의 4분의1에 해당하는 420억 달러 예금이 인출됐다. 은행에 현금이 바닥났다. 단 이틀 만이었다. 뉴욕타임스는 “대부분의 정상적인 중견 은행에서는 SVB에서 일어난 일이 패닉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SVB의 고객들은 신생창업자와 투자자들이고, 위험과 변동성에 예민해 몇몇 사람들의 경고로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다”고 지적했다.

SVB가 연준의 긴축을 예상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저수익 상품에 투자한 점도 패착이었다. FT는 SVB가 901억 달러를 저수익 채권에 투자하면서 이후 150억 달러의 미실현 손실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오펜하이머 애널리스트인 크리스토퍼 코토우스키는 “이 결정이 SVB수익성에 ‘돌과 같은 닻(stone anchor)’을 만들었고, 은행은 금리 변화에 취약해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SVB가 투자금을 변동금리 증권부터 다른 은행 예금까지 다양한 수단으로 분산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SVB는 기업 고객을 주로 상대해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사태)에 더 취약했다. 대부분의 SVB고객이 기업의 재무담당자였고, 둘 이상의 은행과 거래하는 경우가 많아 개인고객보다는 예금 인출 및 자금 이동이 수월했다는 분석이다.

한편 SVB최고경영자(CEO)의 도덕적 문제도 제기됐다. 블룸버그는 10일(현지시간) SVB공시자료를 인용해 그레그 베커 회장 겸 CEO가 지난달 27일 모회사인 SVB파이낸셜 주식 1만2451주(47억6000만원)를 매각했다고 보도했다. 파산 공식 발표 11일 전이다. 블룸버그는 이번 주식 매각은 ‘내부자 거래’방지 규정을 거쳐 진행해 법적 문제는 없으나, 지분 매각 보고 시점과 실제 거래까지의 시점이 너무 짧아 제도에 허점이 있다고 전했다.

이번 파산으로 8500여명에 달하는 SVB직원들도 일자리를 잃게 됐다. SVB 파산 관재인인 미 연방예금보험공사는 지난 10일 SVB 직원에게 45일간 고용을 제안하는 이메일을 발송했다. 이 기간 안에 SVB인수 기업이 나오면 직원 고용이 유지되나, 아닐 경우 파산절차가 끝나면 직원들은 해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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