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타오를 영등포 명화의 밤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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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0.24. 오후 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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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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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8월1일 서울 영등포로터리 인근에 영화관 하나가 문을 열었다. 1057석 규모의 개봉관 ‘명화극장’이다. 당시 보도된 매일경제 기사를 보면, 70㎜ 필름을 상영할 수 있는 대형 스크린과 46개의 스피커, 입체음향 돌비 서라운드 시스템을 갖췄다고 한다. 지하 2층, 지상 5층 건물에 극장식당, 실내수영장, 헬스클럽, 사우나, 커피숍 등도 들어서 복합여가시설로 기능했다.

명화극장은 서울 서대문 ‘화양극장’, 미아리 ‘대지극장’과 함께 1980~90년대 홍콩 누아르 영화의 성지로 꼽혔다. 1988년 ‘영웅본색2’ 개봉 당시 주연배우 주윤발(저우룬파)과 적룡(티렁)이 이곳을 찾아 사인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생긴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단관극장들은 쇠퇴했고, 명화극장도 개관 20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이 건물이 다시 활기를 띤 건 2002년 ‘명화나이트’로 재탄생하면서다. 서울 서남권에서 가장 유명한 성인나이트로 뜨면서 밤마다 불야성을 이뤘다. 인근 직장인들은 물론, 경기·인천 사람들도 찾아올 정도였다. 부킹의 성지, 어른들의 놀이터로 불린 이곳을 담은 르포 기사도 있다. 한겨레 토요판이 2015년 12월 ‘영등포 명화나이트의 밤…몇 번의 부킹 뒤 몸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번엔 코로나 팬데믹이 문제였다. 고비를 넘지 못하고 2020년 폐업했다.

한동안 폐건물로 방치됐던 이곳 소식이 다시 들려온 건 최근의 일이다.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오아시스 출신 노엘 갤러거가 오는 11월25일 ‘명화 라이브홀’에서 추가 내한공연을 한다고 지난 17일 발표했다. 11월27~28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된 터라 팬들에겐 복음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낯선 공연 장소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알고 보니 명화극장·명화나이트의 그 건물이 2000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새로 태어난 것이었다.

국내에선 아레나급 대형 공연장만이 아니라 2000석 규모 중간급 공연장도 귀하다.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 용산구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 대중음악 공연이 몰리는 까닭이다. 그래서 서울 서남권에 새로운 거점이 생긴 걸 두고 많은 이들이 반기고 있다. 지난 40년간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던 공간이 공연장으로 새롭게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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