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부정수급, 재판 가도 80% ‘벌금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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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7.17. 오전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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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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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 처벌’ 도덕적 해이 우려

정부와 국민의힘은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없애는 방안, 부정 수급 방지를 위한 행정 조치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실업급여 부정 수급은 범죄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뉴스1

실업급여를 속임수로 타가는 범죄에 대해 법원이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는 것으로 16일 나타났다. 일하면서 받는 세후 월급보다 실업급여가 더 많은 부조리 해소와 함께 실업급여 부정 수급에 대한 대응도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는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에서 최근 1년(작년 7월~올해 6월)간 실업급여 부정 수급 사건 판결문 40건을 전수 분석했다. 이 가운데 32건(80%)에 대해서는 벌금형이나 벌금형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벌금 액수도 부정한 방법으로 받아간 실업급여의 절반이 안 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나머지 8건에 대해서는 징역형이 선고되기는 했지만 이 중 7건은 집행유예였고 1건만 실형(實刑)이었다.

실업급여는 직장인이 권고사직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경우 구직 활동을 하는 동안 생활 안정을 위해 지급받는 사회보험이다. 고용보험법은 ‘거짓이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실업급여를 받으면 최고 징역 3년 또는 벌금 3000만원으로 처벌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사업주와 공모한 경우에는 형량 상한이 징역 5년 또는 벌금 5000만원으로 높아진다.

그래픽=김의균

하지만 실업한 사실 자체가 없는데도 실업급여를 받아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A씨는 2016년 지인이 운영하는 업체에 직원으로 이름만 올렸다. 근로 계약서를 쓰지도 않았고 실제로 출근도 하지 않았다. 이후 A씨는 마치 권고사직을 당한 것처럼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2018년 1~4월, 2019년 6~8월 두 차례에 걸쳐 총 960만원의 실업급여를 부정 수급한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A씨가 사기 전과가 있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A씨가 반성하고 있고, 부정 수급한 급여 중 540만원을 반환했다”며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부정 수급액이 960만원인데 반환액과 벌금액 합계는 840만원에 그쳤다.

제조업체를 운영하던 사업주 B씨도 실업급여 부정 수급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B씨가 아예 업체에 근무한 적이 없는 지인 2명을 해고당한 근로자로 꾸며 받게 한 실업급여 총액은 890여 만원이었다. 새나간 실업급여의 11%만 벌금으로 물게 된 것이다.

벌금형마저 집행유예를 받아 바로 내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나왔다. C씨는 2020년 6월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 형식으로 퇴사했지만 실제로는 그해 7월부터 12월까지 같은 회사를 다녔다. 그런데도 C씨는 재직 사실을 숨긴 채 8개월간 실업급여 1400여 만원을 받았다가 기소됐다. 재판부는 C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하면서 2년간 집행을 유예했다. “C씨가 (부정 수급한 실업급여) 전액 반환을 다짐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집행유예 기간에 다른 법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C씨는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실업급여 부정 수급을 저질러도 사실상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 사례가 많아지면 ‘도덕적 해이’가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업급여 브로커’가 개입해 조직적으로 수억원을 타낸 것이 뒤늦게 발각된 일도 있었다. 세무사 사무소 사무장 D씨는 2016~2020년 부정 수급자 78명과 공모해 실업급여 5억7900여 만원을 불법으로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D씨는 작년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받았는데, 이는 최근 1년간 실업급여 부정 수급 판결 40건 중 유일하게 실형이 선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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