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희칼럼] 간병지옥 탈출, 문제는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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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2.07. 오후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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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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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간병비 국가 지원" 공약
정교한 재원 마련 대책 없인
국민 짐 못 덜고 희망고문만




몇 해 전 영화 '아무르(Amour)'를 보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르는 프랑스어로 '사랑'이라는 뜻이지만 영화는 노년의 질병과 간병,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반신불수에 치매에 걸린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보던 남편은 서서히 지쳐간다. 결국 아내를 베개로 눌러 질식시킨다. 선량한 사람들도 오랜 간병 끝에 살인에 이르게 된다는 비극적인 설정. 숙연해지는 사랑의 끝이다.

간병 살인은 단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자주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특히 부모님이 고령인 5060세대에게 간병은 남의 얘기일 수 없다. 누군가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차이가 의사의 상주, 간병비 부담 여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가족 중 중증 환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집안에 돌봐야 할 환자가 생기는 것은 '재난'이다. 허둥지둥하다가 깨닫게 되는 것은 가족끼리 알아서 하는 것 외엔 방도가 없다는 것. 누가 돌볼지, 간병비를 어떻게 분담할지를 놓고 형제들끼리 갈등을 겪는 게 다반사다. 간병비는 상상 초월이다. 하루 12만~15만원 수준으로 한 달에 4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요양원은 장기요양보험 적용을 받아 간병비 100%를 국가가 지원하지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요양병원은 전액 보호자가 부담해야 한다. 돈과의 전쟁이다. '간병 파산'에 이르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간병은 2023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950만명에 육박한 초고령사회 한국에서 비켜갈 수 없는 사안이다. 문제는 지금껏 간병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돼 왔다는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간병에 매달리는 '간병 퇴직', 혼자 떠맡는 '독박 간병'이 흔하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 간병'도 낯설지 않다. 10·20대가 가족을 간병하느라 사회와 단절되는 '영 케어러' 문제도 심각하다. 개인이 부담하는 간병비 총액은 10조원으로 추산된다. 이 짐을 국가가 덜어줘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늦은 대응으로 우리는 여전히 '가족 간병의 굴레'에 갇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간병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약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국민 간병 부담 경감 방안'을 발표했다. 간호사가 직접 돌보는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확대하고, 요양병원 간병비를 국가가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올해 7월부터 시범사업을 거쳐 2027년 본격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도 경쟁하듯 총선 공약으로 간병비 급여화를 제시했다. 여야가 "국가가 간병을 책임지겠다"며 한목소리를 낸 것은 긍정적이다. 문제는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대책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요양병원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했을 때 매년 최소 15조원의 건보 재정이 소요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건보 재정은 이미 위기다. 현행 보험료율(7.09%) 유지 시 2026년 적자로 돌아서 2031년 적립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된다. 건강보험료를 올리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누가 '건보료 인상'이라는 방울을 고양이 목에 달 것인가. 건보료 인상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가능할 것인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결국 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간병 지옥 탈출'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너도나도 다 늙고 병든다. 작가 필립 로스는 소설 '에브리맨'에서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대학살이다"라고 육체적 고통을 표현했다. 닥쳐 올 '간병 쓰나미'를 고려하면 정부와 정치권이 총선을 앞두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던질 문제가 아니다. 재원 조달 대책뿐 아니라 경증 환자의 요양병원 입원 증가 등 도덕적 해이를 걸러낼 정교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간병 디스토피아'는 바로 현실이 된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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