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국정원의 도·감청을 허용하는 조항이 포함된 테러방지법을 상정한다. 수적으로 밀렸던 야당은 무제한 토론, 즉 필리버스터(Filibuster)를 강행하며 법안 저지에 나섰는데, 위 발언은 당시 16번째 반대 토론자로 나선 추미애 현 법무장관이 했던 말이다. 4년 전 발언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현재 추장관이 추진하는 ‘휴대전화 비밀번호 강제공개법’이 당시 그녀가 했던 말과 정면으로 배치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기에 대해 놀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문 대통령 (이하 문통)을 비롯한 현 정권 인사들이 지난 몇 년간 지겹도록 보여줬던 것이니 말이다.
의아한 것은 문통 지지자들의 반응이다. 그간 정부가 하는 일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마저 반대성명을 낸 ‘강제공개법’에 대해 ‘문빠’(열렬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은 가관이었다. “다른 분은 몰라도 추 장관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전 끝까지 지지하겠습니다.” “떳떳하면 비번 못 깔 일이 뭐가 있나요? 구린 짓을 하니까 비번을 못 까는 거죠.” 누군가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고 우려하자 또 다른 이가 나선다. “그놈들은 빈대가 아닙니다. 초가삼간 다 태워서라도 잡을 수만 있다면 초가삼간도 태워야죠.”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안 할 수 있는 권리는 우리나라 헌법에 보장된 권리, 조국 전 장관이 검찰조사나 재판에서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조국이 이 권리를 행사했을 때 “장관님, 힘내세요” “꼭 승리하십시오”라고 칭송하던 이들이 헌법상의 자기방어권을 침해하는 추 장관의 법안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광경은 그로테스크했다.
박근혜 정권 내내, 난 박 전 대통령 (이하 박통)을 싫어했다. 2주마다 썼던 신문 칼럼의 주제는 모조리 박통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그게 책 한 권 분량이 돼서 결국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난 왜 그렇게 박통을 싫어했을까? 박통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박통은 국회와 사법부를 모두 자기 밑에 있는 이들로 간주했으며, 그들이 자기 뜻에 따르지 않을 땐 짜증을 냈다. 언론이 자신을 비판하는 것도 못 견뎌 했던 박통은 국민의 저항에 대해서마저 비슷한 반응을 보여, 경찰의 과잉진압이 늘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그래서 난 문빠들이 박통을 최악의 대통령으로 언급하는 것도 나와 비슷한 이유에서라고 생각했건만, 위에서 보듯 문빠들은 문재인 정권이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행위에 오히려 환호를 보낸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그들은 왜 박통을 싫어했을까?
이상에서 보듯 주요 부문에서 문통은 박통보다 잘하지 못했다. 심지어 기자회견 횟수마저 ‘불통의 상징’인 박통에 미치지 못하니, 문통이 박통보다 잘한 게 단 하나라도 있는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빠들이 박통을 싫어하고 문통에게 아낌없이 지지를 보내는 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수행과 관계없는 다른 뭔가가 있다는 얘기다. 문통의 외모가 그 중 한 이유라고 말한 건 이 때문이었다. 실제로 ‘82쿡’(82cook) 같은 맘카페에선 문통과 조국의 외모가 꽤 자주 언급되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으리라. 신기한 건 그 다음, 잘생겨서 지지한다는 내 발언에 대해 맘카페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어휴, 꼭 기생충처럼 생겨서.” “부러웠구나. 거울을 부숴.” 야당 일각에서 홍정욱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도 이 때문, 그래서 이런 잠정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반영하며, 박통도 문통도 예외는 아니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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