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렌털 시대…회사가 나서서 체험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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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무색할 정도로 이직이 활발해졌다. 박진우 CSO는 “과거와 달리 이직 의향이 있는 직원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회사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다”라며 “경력을 쌓아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이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다들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직원에게는 ‘자기 발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시대가 이렇게 바뀌는 만큼 HR 개념도 그때그때 필요한 인재를 가져다 쓰는 ‘인재 렌털’ 시대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다. ‘인재 렌털’ 시대에 회사 입장에서는 ‘핵심 인재는 덜 뺏기고 남의 인재는 더 영입’하는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환경, 즉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기아가 신입사원 대상으로 실시하는 ‘준비·경험·이동’이라는 주제의 HR 프로그램은 시사점이 있다.

‘준비’ 단계 프로그램은 직원이 직접 경력 프로필을 작성해 향후 경력을 고민한 뒤, 협업 툴에 있는 400개가 넘는 팀의 상세한 업무와 구성원 정보를 습득하도록 돕는다. 다음은 ‘경험’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사내 인턴 제도를 활용한다. 협의를 통해 맞교환된 인턴은 1~3개월간 번갈아 멘토와 멘티가 돼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며 팀 적응을 돕는다. 마지막 ‘이동’ 단계에서는 실제로 인력 재배치가 이뤄진다. 인력이 필요한 팀은 영입을 먼저 제안하는 스카우트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이 동의할 경우 필요한 인재를 적시에 영입할 수 있다. 직원 입장에서는 앞으로 직업 시장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것을 미리 체험해볼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서는 경력사원 역시 이렇게 회사 내 안착을 돕게 시스템을 고도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력 렌털 시대를 대비, 기업 입장에서는 ‘교환 근무 제도’를 선제적으로 활용, 직원에게 자극을 줄 수도 있다. 어차피 일어날 인력 이동, 회사가 나서서 직원에게 ‘사전 체험’을 해보게 한다는 취지다. 유한킴벌리와 휴넷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 회사는 새로운 환경에서 동일한 직무를 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으라는 취지로 직원 간 2주 교환 근무 제도를 운영한다. 그 결과는? 두 회사 임직원들은 “직무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직무 만족도를 높였다”고 답했다.

박인호 네모파트너즈POC 부사장은 “자신의 가치 상승에 대한 욕구가 강한 신입 사원들이 지속적인 성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HR의 주요 과제”라며 “직원의 업무 성취가 조직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인정하고 격려해주는 리더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때 중요한 것은 회사 주도 경력 개발 관리가 아닌, 개인의 자율적인 경력 설계가 가능한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이색 경영도 있다
인사 평가 시스템 없는 이 회사는 어디?
인사부서가 없는 회사도 있다. 마케팅 전문 기업 에코마케팅의 사례다. 에코마케팅은 지난 2003년 설립 당시부터 아직까지도 인사 평가를 실시하지 않는다. 김철웅 에코마케팅 대표는 “한 번도 인사부서가 있었던 적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에코마케팅의 인사 정책은 ‘아우토반 원칙’을 따른다. 속도 제한이 없는 독일의 아우토반 고속도로에서 속도가 빠른 차에 길을 양보하는 원칙은 기본이다. 속도가 빠르면 깜빡이를 켜고 언제든 자유롭게 추월할 수 있다. 속도에 제한을 두지 않은 덕분에 독일은 전 세계 럭셔리 자동차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에코마케팅 역시 실력을 갖추고 성과를 낸 인재에게는 제한을 두지 않고 초고속 승진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서 ‘누구나’에는 인턴도 포함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호봉이 쌓이고, 그에 따라 직급이 올라가는 방식의 인사 체계는 에코마케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팀장이 되고 싶다면, 전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왜 팀장이 돼야 하는지,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스스로 발표해서 설득하면 됩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인정한다면 인턴이라도 팀장이 될 수 있습니다.”

경력직을 채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에코마케팅 인사 정책의 특징이다. 현재 재직 중인 직원의 99%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직원의 지식과 경험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경력직의 지식과 경험은 이미 ‘낡은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그동안 회사의 변곡점은 대부분 신입사원들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며 “아무것도 없는 도화지 같은 직원을 채용해서 자유를 주고, 마음껏 사고를 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에코마케팅은 고착화와 고정관념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 업무를 9개월 이상 맡기지 않는다. 마케팅 부서로 입사했더라도 9개월이 지나면 전산이나 경영지원실 등 다른 부서로 이동해야 한다. 기존 업무를 잘 수행했던 직원도 새롭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새로운 특징을 찾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 대표는 직원들의 주인의식도 강조한다.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6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나눠주기도 했다. 팀장이 되면 자동차 혹은 강남에 위치한 20평대 아파트를 제공한 것도 같은 취지다. “주인이 아닌데 어떻게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래서 직원들이 실제 주인이 되도록 했다. 직원들을 주인으로 만드니 서로에 대한 평가도 냉정해졌다. 그 결과 꾸준한 성장으로 이어졌다.” 인사 평가 시스템이 없는 에코마케팅의 성장 비결이다.

링크드인의 EX 정의·활용 사례
직원 경험을 4박스 모델로…박스 갇힐 때마다 구출
‘직원경험(MZ세대가 선택하는 회사의 비밀, 제이콥 모건 저)’이라는 책에 소개돼 있는 링크드인. 이 회사는 직장 생활이 라이프사이클(인생 여정)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고 봤다. 그래서 이를 EX의 4가지 단계, 일명 4박스 모델(4-box model)로 규정하고 이를 토대로 직원 관리를 하고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열정적인 비버’ 단계다. 말 그대로 신입사원 시절. ‘무척이나 흥분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의 소유자를 의미한다. 두 번째 유형은 ‘빌어먹을(혹은, 이럴 수가)!’ 단계다. 일을 한 지 통상 6개월 정도 지나서(더 빠를 수도 있다) 난관에 부딪히는 때다. 이때 ‘내가 생각한 직장이 아니야’ ‘일이 너무 방대해서 어쩔 줄 모르겠어’ ‘난 이 일과 안 맞아’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세 번째 단계는 ‘좋아, 이제 좀 알겠어’ 단계다.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하고, 과제와 큰 프로젝트도 해냈다. 그러면서 자신감을 되찾고 조직에 소속감을 느끼는 때다.

마지막으로 ‘마스터’ 단계가 되면 능숙하게 일을 잘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다소 지루해지고, 활기가 사라진다. 회사 밖에서 다른 기회를 모색하기도 한다.

링크드인은 이런 EX 유형에 따라 특히 ‘빌어먹을!’ 단계에 놓인 직원을 도와주는 관리자에게 많은 지원과 신뢰를 보낸다. 또 마스터 박스에 갇힌 직원을 찾아내 다시 열정적인 비버 박스로 갈 수 있게 돕도록 하는 식으로 EX를 규정하고 관리하며 회사 성장을 꾀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7호 (2023.12.06~2023.12.12일자) 기사입니다]

기자 프로필

매경이코노미에서 금융, IB, 슈퍼리치, 스타트업 등등 매경프리미엄에서 '재계 인사이드'를 연재하며 돈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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