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송도해수욕장은 소나무 숲 옆에 바다가 있는 곳이다. 녹색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을 나서면 새하얀 백사장이 펼쳐지고, 그 위로 푸른 하늘이 열리고 하늘과 이어진 푸른 바다가 끝없이 넘실거려 한순간 마치 다른 세상으로 차원 이동을 한 듯 아름답고 신선한 경이감을 준다.
그곳에서 나는 남편과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때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이었다. 우리의 바닷가 산책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았다. 초속 7미터의 얼음송곳 같은 바닷바람이 온몸을 찌르고 목덜미와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들었다.
남편은 다음날 또다시 입원할 예정이었다. 두 달 만이었다. 새해를 앞두고 젊은 시절 앓았던 암이 재발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몸 상태를 보았을 때 개복 수술을 또 할 수는 없고, 약물치료를 받는 것이 최선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결혼할 때 이런 날이 언젠가 올 것이라고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우리는 젊은 시절에 만나지 않았으므로 청춘의 추억을 공유하지 않았다. 자녀를 갖지 않기로 약속했으므로 가족이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볼 수도 없을 것이었다. 중년의 나이에 미래를 약속할 때는 머지않은 앞날에 노화와 질병과 고통과 돌봄과, 그리고 결국 언젠가는 찾아올 상실의 순간을 견뎌야 한다는 의미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언젠가’가 조금이라도 늦게 찾아오기를 희망하며, 적어도 지금은 아닐 것이라 부정하며 새로운 삶에 발을 디뎠다. 어머님이 응급수술을 받았을 때 나는 그 ‘언젠가’가 드디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입원하게 되었다고 알렸을 때 나는 그 ‘언젠가’가 지나치게 빠르고 가차 없이 진행되는 것이 진심으로 무서워졌다. 새롭게 사랑하게 된 가족을 순식간에 모두 잃을까 몹시 두려웠다.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나는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은 더웠다. 어머님이 입원해 있던 병실도 몹시 더웠다. 그 병원에서 어머님은 혼자 괜찮으실까, 남편은 앞으로 괜찮아질까, 남편의 병원에서 병실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똑같은 생각을 계속 반복했다. 물론 어머님은 혼자가 아니었다. 햇빛이 잘 들고 창밖으로 병원 바깥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병실에서 어머님이 다른 환자분들과 수다도 떨 수 있고 간병사 선생님이 인자하게 웃는 곳이었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인해 면회는 전면 금지였고 나는 포항에 어머님을 혼자 둔 채 남편과 함께 다른 도시의 다른 병원에 들어와 있었다. 여기서도 병실은 더웠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일정 시간마다 체온을 재고 혈액을 검사하러 왔기 때문에 나는 간이침대에서 자다가 목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났다가 간호사 선생님이 보호자는 일어나실 필요 없다고 안심시키면 도로 누워서 비몽사몽간에 까무룩 잠들었다가 사람 목소리가 들리면 또 깨곤 했다.
남편이 시술을 받는 치료실 안에는 보호자가 대기하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나를 그곳에 두고 남편의 병상을 밀고 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보호자 대기실은 병실과는 반대로 몹시 추웠다. 나는 겉옷을 단단히 여며 내 몸을 껴안듯이 양팔로 감싸 안고 남편을 기다렸다. 벽에 걸린 대형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지나치게 큰 소리로 방송되고 있었다.
“여당의 김○○ 국회의원 측은 냉동 돔배기 사업도, 바이오피스트릭스라는 회사도 들어본 적 없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고….”
개별 단어의 의미는 가끔 가다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전체로서의 문장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너무 컸고 대기실이 너무 추웠다. 남편이 보고 싶었다. 어머님이 수술을 받았을 때는 수술실 앞에 남편과 함께 앉아 있었다. 화면에 어머님의 이름과 상태가 떴는데 ‘수술 중’ 표시가 ‘회복실’ 표시로 바뀌고 나서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님도 나오지 않고 ‘회복실’ 세 글자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곳의 화면은 ‘수술 중’도 ‘회복실’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경찰은 도주한 김씨의 행방을 쫓는 한편 공범을….”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추운 보호자 대기실 안에 지나치게 큰 소리로 울려 퍼졌고 나는 더 이상은 억누를 수 없이 이제 곧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르거나 혹은 치료실 문을 열고 뛰어들거나 혹은 비명을 지르며 치료실 안으로 뛰어들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때 치료실 문이 열리고 남편이 침대에 실려 나왔다. 남편은 창백했고, 몸을 떨며 춥고 팔과 다리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았다. 손은 차가웠지만 남편은 살아 있었고 말도 할 수 있었고 감각도 느낄 수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남편을 실은 병상을 밀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함께 움직였다. 남편의 손은 문질러도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았지만 병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내내 남편의 손을 꽉 쥐고 힘껏 문질렀다.
의료진은 남편의 피부에 구멍을 뚫고 종양에 가장 가까운 동맥에 관을 주입해서 암세포를 죽이는 약물을 투여했다. 최소한 그것이 의학에 무지한 내가 이해한 치료 과정의 골자였다. 약을 집어넣기 위해 피부도 뚫고 두꺼운 동맥 혈관벽도 뚫었기 때문에 상처에서 피가 완전히 멎을 때까지 움직이면 안 된다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엄격하게 명령했다. 시술 후 정해진 시간 동안 식사 금지는 물론이고 물조차 마실 수 없었다. 남편은 좁은 병원 침대에 꼼짝 못하고 누워 팔과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쑤시고 춥다고 호소했다. 괴로움을 토로하다가 남편이 잠깐 잠들면 나도 잠들고, 남편이 신음하면 깨어나서 팔다리를 주무르고 손과 이마를 쓰다듬어주었다. 지나치게 더운 병실의 좁은 간이침대에서 그렇게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밤이 지나고 새벽이 왔을 때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배선실 정수기에서 물을 떠오려고 일어서면서 나는 물컵을 집으려다 쳐서 떨어뜨렸다. 금속제 물컵은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치고 요란하게 데굴데굴 굴러 옆 병상 아래로 사라졌다.
“죄송합니다.”
나는 딱히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병실 전체에 사과했다. 금속 물컵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다. 이른 새벽이라 아직 잠들어 있는 환자분들도 있을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옆 병상 커튼을 살짝 젖히면서 나는 다시 한번 사과했다. 모르는 사람 침대 아래로 기어 들어가서 물컵을 꺼내야 하는 상황이 매우 난처했다. 옆 병상 아저씨는 병상에 아주 편하게 널브러진 자세로 핸드폰 화면의 영상을 보고 있다가 나를 흘끗 쳐다보고 물었다.
“암치료 받았나 부지?”
내가 아니고 남편에 대해서 하는 말이겠지. 이 병실은 다 비슷한 병으로 입원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미루어 짐작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저씨가 말없이 뭔가 내밀었다. 내가 당황해서 쳐다보자 아저씨가 말했다.
“받아요.”
모르는 사람에게 작으나마 민폐를 끼친 입장에서 상대가 뭔가 주려 할 때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나는 받아들었다. 명함 같았다.
나는 명함을 주머니에 황급히 넣었다. 물컵을 조심스럽게 꼭 쥐고 얼른 옆 병상 커튼을 끝까지 닫고 종종걸음으로 남편에게 돌아왔다. 간이침대에 앉아 명함을 들여다보니 ‘신기술’ ‘기적’ ‘치료제’ 같은 글자들이 어지럽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 그렇지. 명함을 구겨 버리려는데 문득 눈에 들어온 이름이 있었다. 포항시 북구 죽도동. 죽도시장? 거기서 신약 개발을 한다고? 시장 안에 제약회사가 있단 말이야?
나는 명함을 뒤집어보았다. 바이오피스트릭스(BioPistrix). 이상한 이름이네. 그런데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죽도시장에 있는 회사라면 어머님한테 나중에 여쭤봐야지. 그런데 뭐라고 여쭤봐야 남편이 입원한 걸 들키지 않고 물어볼 수 있을까. 어머니는 전화를 받으실 수 있을까? 다리는 좀 덜 아프실까? 언제쯤 퇴원하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간호사 선생님이 오셨고 나는 명함에 대해서 잊어버렸다. 몇 달이 지나 내가 병원에서 사용했던 손가방을 뒤져서 영수증과 휴지와 어디선가 뜯어낸 비닐 껍질 틈바구니에서 구겨진 명함을 다시 찾아낸 이유는 순전히 남편이 다시 입원해서 다시 치료를 받아야만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퇴원해서 집에 온 뒤에도 한동안 괴로워했다. 피부와 동맥을 뚫는 시술을 받았으므로 구멍 뚫은 자리가 완전히 아물기까지 몸을 굽히거나 굽혔다 펴거나 걸음을 걸을 때마다 통증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조심해도 남편은 잠결에 돌아눕다가 상처 난 자리를 무심결에 눌러서 비명을 지르며 깨곤 했다.
어머니는 좀처럼 병원을 떠나지 못했다. 수술받은 자리는 조금 좋아졌다 조금 나빠졌다 하면서 눈에 띌 만한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퇴원한 뒤에 우리는 명절이 낀 주말에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여전히 면회는 전면 금지였고 간병사 선생님이 수동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를 뒤에서 밀어 병원 로비에 같이 내려왔다. 병원 입구의 두 겹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남편과 나는 통유리에 달라붙다시피 어머니에게 인사했다. 명절이었으므로 우리처럼 가족과 친지를 유리문 사이로 면회하러 온 방문객들이 통유리에 주렁주렁 달라붙어 유리 너머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리 높여 말하고 손짓하며 웃고 울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간병사 선생님의 명절에 대해 생각했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병원에 갇혀 모르는 사람을 일으켜주고 눕혀주고 씻겨주고 식사를 챙겨주고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부드럽게 웃을 수 있는 중노년 여성의 생활력에 대해 생각했다. 세상 전체가 의존하면서도 무시하고 착취하는 필수 돌봄의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휠체어에 앉은 어머님과 여전히 커다란 붕대에 감싸인 어머니의 다리에 대해 생각했다. 남편은 나보다 체격이 크고 몸무게도 무겁다. 남편이 움직일 수 없게 되면 내가 남편을 일으키고 앉히고 눕히고 밀고 다닐 수 있을지 나는 궁리했다. 십 년 뒤에, 십오 년 뒤에 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어머님이 한 달 만에 퇴원한 일이 초봄의 큰 사건이었다. 남편은 교통약자용 저속 전동 스쿠터를 주문했다. 양손으로 조작하게 되어 있어 다리는 전혀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계기반도 단순했다. 비장애인이 천천히 걷는 정도의 낮은 속력부터 최고 시속 20킬로미터까지 다이얼을 돌려 조절할 수 있었고 방향지시등에 오른쪽 혹은 왼쪽을 가리키는 불이 들어오게 하는 버튼이 있었다. 경적도 있었고 안전벨트도 갖추어져 있었고 좌석 등 쪽에는 삼각형 안전경고판도 붙어 있었다. 그것은 멋진, 짙은 빨간색의 어머니 전용 교통수단이었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약간 겁을 내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스쿠터를 타고 운전 연습을 나가면 나나 남편이 따라갔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스쿠터를 모는 어머니를 뒤따라가며 송림 숲놀이터와 송도해안길을 산책했다. 가끔 동네 강아지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뽈뽈 따라왔다. 그렇게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를 걷다 보면 갑자기 장막이 걷히듯 하늘이 열리고 바다가 펼쳐졌다. 몇 번이나 보아도 마술 같은 광경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새하얀 모래사장과 새파란 바다와 바다에 이어진 끝없이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다가, 주변 커피숍에서 따뜻한 음료를 한 잔씩 사서 마시고, 다시 천천히 스쿠터를 모는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햇볕이 좋은 날이면 송림로 테마공원으로 가서 조금 오래 스쿠터 산책을 했다. 공기가 차가웠지만 따스한 햇빛이 맑게 내리쬐는 날 어머니처럼 저속 전동 스쿠터를 탄 여러 어르신들이 공원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지팡이에 의지하거나 수동적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아니라 커다란 전동 기계를 능숙하게 몰고 다니며 공원 안에서 햇빛과 여유를 즐기는 모습은 활기차 보였다. 나는 어머니도 저분들과 함께 전동 스쿠터 동호회라도 조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남편이 쉬는 날은 어머니와 나와 남편이 모두 함께 산책하러 나갔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하얀 백사장과 파란 초봄의 바다와 차갑고 신선한 바람과 소중한 사람들과의 부드러운 순간들을 나는 차근차근 마음속에 쌓아두었다. 이런 순간들은 지나치게 더운 병실 간이침대에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지나치게 추운 보호자 대기실에서 텔레비전 화면을 의미 없이 들여다보아야 할 때를 위해서 간절히 필요했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을 아무리 마음속에 모아보아도 다가오는 불안을 이길 수 없었다. 지나치게 추운 보호자 대기실과 지나치게 커다란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밤새 끙끙거리던 남편의 신음소리를 생각하면서 나는 몇 번이나 망설였다. 남편이 없는 집에서– 남편이 없는 포항에서– 남편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손가방 밑바닥에 구겨져 있던 명함을 찾아내어 전화를 하고 말았다.
전화를 받은 남자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목소리는 예의 바르지만 건조하고 사무적이었다. 어떤 질문에도 남자는 ‘극비리에 개발된 신소재’라는 말만 여러 가지 표현을 사용해 되풀이하며 결론적으로 반드시 내가 직접 찾아와서 재료를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나는 길을 잃었다. 원래 나는 오른쪽과 왼쪽을 잘 구분 못하는 데다 죽도시장 안은 미로 같았다. 골목을 돌고 돌며 상점 사이를 헤매 다니다가 나는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어 어머니한테 전화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다리 통증이 가시지 않아 가게에 출근은 못하고 집에 계셨지만 죽도시장 지리 정도는 손바닥처럼 꿰고 있었다.
“거는 와?” (거기는 왜?)
내가 걱정하던 질문을 어머니는 당연히 던지고야 말았다. 나는 친구가 부탁한 물건이 있다고 둘러댔다.
“거 돔배기 가게 망해서 지금은 암것두 없을 낀데….”
어머니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내가 있는 곳에서 남자가 말한 장소까지 가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나는 어머니와 통화하며 다시 골목을 돌고 돌아 마침내 남자가 말한 장소에 도착했다.
“찾았어요, 어머니.”
내가 건물에 들어서며 말했다. 건물 안은 어둠침침했다. 거대한 창고 같았는데 안이 회청색으로 희끄무레할 뿐 제약회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서 나는 일부러 명랑하고 큰 목소리로 전화 너머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얼른 사가지고 갈게요. 이따가 저녁에….”
까지 말했을 때 누군가 뒤에서 내 말을 끊었다.
“핸드폰 이리 주시죠.”
나는 돌아보았다. 눈매가 날카로운 젊은 남자가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등산복을 입고 서 있었다.
“저희 회사에서 연구하는 신소재는 모두 기밀 사항이기 때문에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모두 전화기를 수거했다가 나가실 때 돌려드립니다. 이리 주시죠.”
나가실 때 돌려드리는 걸 기다리지 말고 이때 전화기와 함께 나도 나갔어야 했다. 그때 등 뒤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건물 문이 닫히는 소리임을 알았다.
“전화기 이리 주시죠.”
등산복을 입은 남자가 깔끔하게 재수 없는 서울말로 다시 요구했다.
나는 전화기를 남자에게 넘겨주었다. 남자는 전화기의 전원을 끄고 등산복 주머니에 넣었다.
“따라오시죠.”
남자의 입은 웃는데 눈이 웃지 않았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는 남자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남자가 회청색으로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벽 쪽으로 걸어가서 키패드에 번호를 입력했다. 보이지도 않았던 문이 갑자기 열렸다. 남자가 안으로 들어서서 나를 향해 손짓했다. 나는 적절한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따라 들어갔다. 남자가 손짓하자 문이 닫혔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곳은 거대한 수족관이었다. 천장이 아주 높았고 하늘까지 닿을 듯한 그 높은 천장에 꽉 차게 사방 벽에 물을 채운 거대한 수조가 늘어서 있었다. 등산복을 입은 남자가 아주 여러 번 암송한 것 같은 기계적인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의 신소재는 기본적으로 해양생물들이 진화의 과정에서 얻은 신비한 능력들을 활용하여 개발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퍼센트를 차지하며 바다 전체의 면적은 3억6105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고 바다의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1만1000미터가 넘습니다. 바다로 뒤덮인 행성에서 언제나 바다와 함께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나는 남자가 쏟아내는 영업용 설명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천장까지 쌓아올린 수조들을 둘러보았다. 나의 바로 앞에 있는 수조에는 상어가 갇혀 있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같은 데서 보았던 상어는 회색이었다. 눈앞의 수족관 안에 있는 상어는 루비처럼 반투명하게 빛나는 깊고 짙은 붉은색이었다. 상어가 움직일 때마다, 상어를 둘러싼 물이 움직일 때마다 그 반투명하고 유혹적인 붉은 피부 위로 쏟아지는 빛의 파도가 은하수처럼 반짝이며 굴러다녔다. 나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남자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보시는 상어는 생명공학적으로 엔지니어링된 치료용 목적의 특수 상어로서 피부는 바이러스 번식을 억제하는 성분을 가지고 있고 연골어류로서 상어 뼈의 재생력은 인간의 8만 배에 달하며 무엇보다도 상어 간에서 추출한 피스트릭스-레킨 성분은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여….”
붉게 빛나는 상어를 넋 놓고 쳐다보다가 나는 그 옆의 수조로 눈길을 돌렸다. 거기에는 내가 이름이나 종류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은빛의 넙적하고 거대한 물고기가 세로로 서서 뛰는 듯한 동작으로 반복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감금당해 절망한 나머지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정형 행동을 떠올렸다. 물고기도 정형 행동을 하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만약에 내가 3억6105만 제곱킬로미터의 공간을 자유롭게 헤엄치다가 난데없이 잡혀와서 낯선 곳의 한 뼘짜리 수조 안에 갇힌다면 나도 저렇게 절망해서 뛸 것이라 생각했다. 그 옆의 수조에는 조개처럼 보이는 생물이 새까맣고 반들거리는 껍데기 사이로 진주처럼 하얀 바탕에 무지갯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커다란 발을 내놓고 수조 벽을 따라 굼실굼실 움직이고 있었다. 조개를 쳐다보면서 나는 남자가 자꾸 외치는 ‘피스트릭스’라는 단어를 어디서 들었는지 생각했다. ‘레킨(rekin)’은 폴란드어로 상어라는 뜻이었다. 죽도시장 한가운데 자리 잡은, 보면 볼수록 불법적인 사업체가 분명한 이 창고와 남자가 말하는 ‘회사’에서 하필 폴란드어는 왜 갖다 썼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보다 더 알 수 없는 것은 ‘피스트릭스’라는 단어였다. 그 단어가 병원에서 명함을 받았을 때부터 신경 쓰였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딱 짚어 어째서 거슬리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 Помогите…. (도와주시오….)
어디선가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Помогите…. (도와주시오….)
루비처럼 붉은 상어와 진주처럼 하얀 조개 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여전히 눈은 상어와 조개를 바라보던 나는 몸만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돌아섰다. 고개까지 돌렸을 때 수조 안에는 거대한 대게가 다리를 모두 벌리고 아닐 비(非) 자로 나를 향해 하얀 배를 보인 채 유리에 붙어 있었다. 배를 제외한 몸 전체가 절대로 자연적일 수 없는 진하고 깊은 푸른색으로 반들거렸다.
“게의 껍질에서는 세포를 구성하는 주성분인 키토산을 추출하여 피부 재생, 노화 억제, 세포 재생 및 각종 질병 치료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골과 관절 등의 수술 후에 치료 효과를 높이고 암세포를 제거하며….”
남자의 설명을 귀담아듣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떠드니까 들려오는 말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 말소리 중에서 몇몇 표현들이 점점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게의 껍데기에 들어 있고 세포가 아니고 세포벽을 구성하는 주성분은 키틴이다. 키토산은 키틴을 끓여서 뭐 어디다 담가둬야 키틴에서 뭐가 떨어져 나가서 만들 수 있는데, 나는 문과 전공이라서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하여간 키틴과 키토산이 다르고 세포는 세포벽을 포함하여 여러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상어의 피부가 정확히 어떤지는 내가 잘 모르지만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이므로 스스로 증식하지 못하여 번식이 아니라 감염을 한다. 번식을 하는 것은 박테리아다.
- Помогите….
나는 호소하는 목소리를 듣고 푸른 대게를 다시 바라보았다. 남자가 내 옆에 바짝 다가왔다.
“저희 회사는 이런 신기술 개발을 극비리에 진행하며 정관계 인사들과 고위급 공무원들의 지원과 투자를 아낌없이 받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예를 들어 저 게의 껍데기와 살에 들어 있는 기적의 자연치료제 성분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투자를….”
- 지구-생명체….
남자의 무의미하고 대부분 과학적으로 틀린 장광설을 끊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 지구-생명체….
수조 속에서 문어가 말했다.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앞에서 수조 속 문어의 하얗고 맨질맨질하게 보이던 문어 대가리의 윗부분 일부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 고향… 행성….
문어가 속삭였다. 나는 수족관 앞으로 다가갔다.
- 돌려… 보내….
문어가 애원했다.
말하는 문어와 러시아어를 하는 푸른 대게와 새빨간 상어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지구상에 존재할 리 없었다.
수조 속의 이 생물들은 등산복 남자가 주장하는 인간의 기술로 ‘엔지니어링’한 결과물이 아니다. 외계 생물이다. 납치당해 갇혀 있는 외계 생물이다.
외계 생물체를 개인사업자가 몰래 거래하는 것은 국제협약 위반이다.
갑자기 오래전에 들은 사실이 떠올랐다.
이 남자가 그 불법 개인사업자다.
나는 조금씩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남자가 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걸음을 멈추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사방은 천장까지 수조로 둘러싸여 있었다. 곁눈질로 보는 것만으로는 문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남자가 키패드에 번호를 입력하던 것을 생각했다. 문을 찾아내더라도 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남자가 활짝 웃었다. 여전히 입만 벌어지고 눈은 전혀 웃지 않는 종류의 인위적인 웃음이었다.
“저희 회사는 살아 있는 신선한 재료만을 사용하여 최상의 성분을 고농도로 축출하여….”
“추출인데요.”
내가 남자의 말을 막고 중얼거렸다.
“… 네?”
남자가 되물었다.
“축출이 아니고 추출이라고요.”
내가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뽑을 추(抽), 나갈 출(出) 해서 추출은 전체에서 어떤 요소를 뽑아내는 거예요. 축출은 쫓을 축(逐), 나갈 출(出) 해서 어떤 직위에서 사람을 강제로 쫓아내는 게 축출이고요.”
남자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건물 안에 갑자기 나타나서 내 휴대전화를 요구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보여준 인위적인 웃음과 여기저기 조금씩 틀린 표현들을 이어 붙인 장광설 속에서 단 한 번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멍청하고 인위적이고 여기저기 계속 조금씩 틀리면서 자기가 뭘 틀리는지 모르고 그저 상대방을 속이려고만 하는 저 몰골이 바로 사기꾼의 본모습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돌연히 바깥이 시끄러워졌다.
“돔배기!”
밖에서 확성기에 실린 목소리가 우릉우릉 울렸다.
“돔배기! 문 열어!”
남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낮게 욕설을 내뱉더니 남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몸을 돌려 수조와 수조 사이의 공간으로 뛰어가서 번개같이 손을 움직여 키패드에 번호를 입력하고 벽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버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반대쪽 벽의 수조 사이 공간이 열리며 검은 정장을 입은 덩어리들이 달려 들어왔다.
“저쪽으로 갔어요!”
내가 남자가 나간 방향을 가리키며 외쳤다. 뭐가 됐든 정보과 소속 검은 덩어리들을 좋아해본 적은 없고 몹시 싫어했던 적은 있지만 지금은 평생 가장 반가운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검은 덩어리들이 반대편 벽을 향해 뛰어갔다. 나도 같이 뛰어가려 했다. 검은 덩어리 대장이 멈추어 서서 나에게 경고했다.
“여기 계십시오.”
적대적이고 권위적인 목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그대로 멈추어 섰다. 검은 덩어리들은 모두 벽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나는 외계 해양생물들이 가득한 수조에 둘러싸인 이상하고 비지구적인 공간 안에 혼자 남았다. 붉은 상어 옆 수조에서 은빛 물고기가 제자리에서 절망적으로 뛰고 있었다.
나는 수조를 여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수조를 여는 방법을 찾아낸다 해도 이 생물체들을 물속에서 꺼내면 피해 생물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붉은 상어와 푸른 대게와 은빛의 절망한 물고기와 흑단처럼 새까만 조개와 하얀 기계 문어는 지구의 바다가 아닌 다른 어딘가 멀고 낯선 곳에서 끌려와 이곳에 잡혀 있을 것이었다. 그곳이 어디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어디인지 안다 해도 납치된 생물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낼 방법을 당장 떠올릴 수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검은 덩어리들은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나는 수조와 수조 사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문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벽을 막은 철판이 반쯤 열린 틈을 발견했다. 그곳으로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는 문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나는 무조건 그 틈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시장의 사람 소리와 바깥 공기와 햇빛과 익숙한 해산물 냄새가 갑자기 나를 덮쳤다. 잠시 눈이 부셔서 그대로 서 있을 때 눈앞으로 뭔가 화려한 색깔의 물체가 휙 지나갔다. 등산복 남자였다. 남자가 한참 전에 도망쳤는데 왜 이곳에서 나타났는지, 의아해하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제대로 끝맺기 전에 등 뒤에서 친숙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외쳤다.
“비키라!”
나는 돌아보았다. 어머니가 나드리 전동 스쿠터를 최고속도로 운전해서 죽도시장 골목 안을 질주해 다가오고 있었다.
“저그 사기꾼이데이! 저놈 잡아라!”
어머니가 외쳤다. 어머니 뒤로 전동 스쿠터 군단이 함께 달려왔다.
그것은 장엄한 광경이었다. 나는 얼른 옆으로 비켜섰다. 나드리 전동 스쿠터는 최고 시속이 20킬로미터다. 어머니와 어르신들의 전동 스쿠터 군단은 순식간에 내 앞을 스쳐 지나 돔배기 사기꾼의 화려한 등산복 등짝을 쫓아 달렸다. 사람이 뛰어가는 평균 속력은 시속 10킬로미터에서 13킬로미터 정도 된다. 전동 스쿠터는 최고 속력인 시속 20킬로미터로 달려도 사람과는 달리 숨도 차지 않고 다리도 아프지 않고 지치지도 않는다. 돔배기 사기꾼의 패배는 정해진 사실이었다.
충분히 가까워졌을 때 어머니가 등산복 남자를 향해 팔을 힘껏 휘둘러 뭔가 던졌다. 야구선수가 홈런을 쳤을 때와 비슷한 경쾌한 소리가 죽도시장 안에 울려 퍼졌다. 돔배기 사기꾼은 순간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어머니가 사기꾼 옆에 전동 스쿠터를 세웠다. 어머니와 함께 사기꾼을 추적하던 어르신들도 한 대씩 스쿠터를 세우고 쓰러진 남자의 화려한 등짝과 천박한 뒤통수를 지켜보았다.
“사기꾼 자슥이 어델 도망가노!”
어머니가 일갈했다.
검은 덩어리들이 뒤늦게 도착했다. 정장 입은 남자가 몸을 굽히고 쓰러진 사기꾼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를 향해 말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 연락하지 마세요, 제발. 이라고 대답하기 전에 검은 덩어리는 몸을 돌렸다. 그와 동료 덩어리들은 죽도시장 바닥에 엎어져 흙먼지와 쓰레기와 구정물 범벅이 된 사기꾼을 일으켜 세워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지매요!”
옆에서 누군가 불러서 나는 돌아보았다. 어머니의 죽도시장 동료 상인분이 어머니를 발견하고 반가워하고 있었다.
“아유, 수술했다메요? 다리는 다 나으신교?”
“하이고 말도 마소, 내 아주 죽다 살아난 기라….”
어머니는 자랑스럽게 병원에서의 무용담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전동 스쿠터를 타고 함께 달려왔던 어르신들도 전동 스쿠터에 탄 채로, 혹은 스쿠터에서 내려서 흥정에 돌입했다. 갑자기 몰려온 손님들로 죽도시장이 북적거렸다. 추운 날씨에다 방역수칙과 거리두기로 적적했던 시장에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그기 돔배기 가게 망해서 나간 지가 은젠데 갑자기 물어보이 이상했다 아이가.”
어머니가 나중에 설명해주셨다.
“쟈(남편)가 전화를 해도 안 받고 아무래도 이건 아이다 싶어 가꼬 내 가봤제.”
“그런 덴 대체 왜 갔어요?”
남편이 물었다. 사실 검은 덩어리도 같은 것을 물었다.
“거긴 대체 왜 갔습니까?”
우리는 모두 함께 검은 덩어리들에게 붙잡혀 창문 없는 방에 실려와 있었다. 나는 모두의 시선 속에 우물거렸다.
“그게요….”
어머니는 아직도 수술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었고 회복은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느렸다. 남편의 병이 재발했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나는 대답 대신 검은 덩어리에게 구겨진 명함을 내밀었다.
검은 덩어리가 명함을 받았다. 명함을 내려다본 검은 덩어리의 얼굴이 당장 날카로워졌다.
“이거 어디서 받았습니까?”
검은 덩어리가 고압적으로 물었다.
“병원에서요…. 남편 검사받으러… 갔다가….”
내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남편은 젊은 시절 수술을 한 뒤로 지금까지 계속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았고 그 사실은 어머니도 알고 있었다.
검은 덩어리가 병원에 간 날짜와 받은 검사의 내역과 돔배기 사기꾼의 명함을 받았을 때의 정황에 대해 꼬치꼬치 물었다. 나는 남편의 입원과 약물치료 사실을 어머니 앞에서 밝히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최대한 상세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마침내 검은 덩어리가 말했다.
“다시 연락드리죠.”
“그러지 마세요….”
내가 중얼거렸다. 검은 덩어리가 나를 흘끗 쳐다보았다.
덩어리가 나를 쳐다보았기 때문에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저기….”
나는 없는 용기를 억지로 짜내어 말을 꺼냈다.
“거기 갇혀 있던 문어랑, 대게랑, 상어랑, 조개랑, 또 그 물고기랑… 다들 자기 집으로 돌아가나요?”
검은 덩어리는 표정 없는 얼굴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말없이 문을 열고 손짓으로 나가라고 명령했다.
검은 덩어리들이 또다시 불시에 들이닥쳐 남편의 입원과 치료 일정에 지장이 생길까 걱정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은 예정대로 입원했고 예정대로 검사를 받고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치료실에 들어갔다. 나는 또다시 지나치게 추운 보호자 대기실에서 지나치게 큰 소리로 말하는 텔레비전 화면의 뉴스캐스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경찰은 도주한 김씨의 공범을 체포하여 조사하는 한편 바이오피스트릭스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정관계 고위 인사들을 계속 수사하고 있습니다. 바이오피스트릭스 사는 냉동 상어 고기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신약을 개발한다고 광고하여 거액의 투자를 받으며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 등….”
저거다. ‘바이오피스트릭스’라는 단어가 신경 쓰였던 이유가 저거였다. 화면에는 그때의 등산복 남자가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으로 수갑을 차고 두 경찰관 사이에 끼어 어디론가 호송되고 있었다. 돔배기는 상어 고기를 손질해서 소금에 절인 음식이며 영남 지역 명물이고 주로 제사상에 오른다. 이 돔배기를 냉동해서 특수 약품으로 처리해서 신물질을 추출(축출이 아니다)하여 일종의 만병통치약을 만들어 작금의 코로나 팬데믹은 물론 암까지 모든 병을 다 치료할 수 있고 앞으로도 대대손손 약 팔아 떼돈 벌 수 있다고 떠벌린 사기꾼이 있었다는 것이 뉴스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 사기꾼이 일명 ‘냉동 돔배기 신약 사업’에 유명 인사들을 동원해서 거액을 투자받았고 그 유명 인사들 중에는 국회의원도 있고 고위공무원도 있다고 하여 정계가 발칵 뒤집혔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 달 반 전에 바로 이 보호자 대기실에서 바로 이 화면으로 냉동 돔배기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하는 사기꾼이 고위급 인사들의 인맥을 휩쓸었다는 뉴스를 보면서도 남편 걱정에 파묻혀 전혀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등산복 남자는 공범이었고 주범인 사기꾼 김씨는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회사 이름인 피스트릭스(pistrix)는 라틴어로 상어를 뜻한다고 뉴스캐스터가 덧붙였다. 그래 봤자 사기꾼은 사기꾼일 뿐이지만 아마 라틴어를 쓰면 있어 보일 거라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치료실 문이 열렸다. 남편이 나왔다. 나는 달려가서 남편의 손을 잡았다. 남편이 추위와 통증을 호소했다. 나는 남편의 손을 문질렀다. 간호사 선생님이 침대를 밀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두 번째 입원과 치료는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첫 번째보다 조금 수월하게 지나갔다. 남편이 퇴원하던 날 오후 내내 엘리베이터 사용이 금지되었다. 간호사 선생님들께 물어보아도 ‘막혔다’ ‘기다려야 한다’는 모호한 답변만 할 뿐 아무도 상황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병동 중앙에 엘리베이터가 네 대 있고, 엘리베이터 앞에 병상이 여러 대 동시에 드나들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양쪽에 있는 자동문 앞에서 보호자증이나 직원증을 인식기에 찍어야만 병실로 가는 문이 열리는 구조였다. 병원에서 자동문을 막아버리면 병실에서 나와도 다른 층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지만 역시 인식기에 출입증을 찍어야만 했다. 문은 모두 막혀 있었다. 나도 남편도 병실이 답답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조바심을 냈다. 영화에 흔히 나오는, 연쇄살인마 혹은 범죄자의 누명을 쓴 주인공이 문 앞을 감시하는 경찰을 때려눕히고 병실에서 탈출하는 종류의 시도는 최소한 팬데믹 시대의 한국 병원에서는 불가능했다.
복도를 기웃거리며 대체 무슨 일인지, 문이 언제 열릴지 엿보다가 나는 복도 끝 병실 앞에 서 있는 검은 정장 사람들을 발견했다. 네 명이 병실 문 앞에 열중쉬어 자세를 하고 두 줄로 서 있었다. 다른 검은 정장 사람이 휠체어에 탄 환자를 밀고 병실에서 나왔다. 환자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남편이 처음 입원했을 때 옆 병상에 누워 나에게 명함을 주었던 그 남자일 것이라 나는 짐작했다. 그 뒤에 따라오던 검은 덩어리 대장이 나를 흘끗 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환자를 태운 휠체어가 나오자 문 앞에 두 줄로 섰던 검은 정장 사람들이 팔을 내리고 자세를 바꾸고 휠체어를 둘러쌌다. 그리고 자동문이 절반 정도만 열렸다. 휠체어를 타지 않은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빠져나갈 만한 공간이었는데, 환자를 태운 휠체어를 둘러싼 정장 사람들은 어찌된 일인지 물 흐르듯 쉽게 밖으로 나갔다. 자동문이 다시 닫혔다. 정장 사람들은 모두 엘리베이터 버튼만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또다시 물이 흐르듯 한꺼번에 엘리베이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그들은 사라졌다.
검은 덩어리들이 휠체어에 탄 냉동 돔배기 사기꾼을 호송해간 뒤에도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우리는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은 일단 몸을 씻은 뒤 이부자리에 퍼져 누웠다. 나는 병원에서 내가 사용했던 담요와 수건, 남편과 내가 병원에 입고 갔던 옷과 신었던 양말 등을 빨래통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이틀 만에 머리를 감고 몸을 씻고 남편 옆에 뻗어 누웠다. 남편은 벌써 잠들어 있었다. 부릉부릉 하는 남편 특유의 코 고는 소리가 평화롭게 침실 천장으로 피어올랐다.
나는 가만히 남편의 손을 잡았다. 남편의 손은 따뜻했다.
힘든 치료를 마치고 겨우 집에 돌아와 잠든 남편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남편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그리고 나는 남편의 등에 얼굴을 대고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남편과 함께 잠에 들었다.
작가의 말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 중 짝수 해 출생인 분들 중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을 안 받은 분은 올해(2022년)가 가기 전에 얼른 빨리 받으시기 바란다. 12월이 되면 신청자가 몰리니까 그 전에 받으시면 좋겠다. 홀수해 출생인 분들도 내년에 일찌감치 다들 받으시면 좋겠다. 팬데믹은 아직 물러나지 않았고(마스크 꼭 쓰세요 여러분) 갑자기 아프면 치료받기 힘들다. 뜻밖에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퇴원할 때까지 가족과 생이별해야 한다.
〈상어〉는 해양수산물 3부작(내 멋대로 붙인 이름) 중에서 마지막 단편이며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에 남편과 시어머니가 동시에 입원하는 상황을 겪으며 나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모든 분들께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동시에 내 한 몸만이라도 건강관리 열심히 해서 병원 신세를 지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 의료계에 더 이상 부담을 지우지 않고 국가와 민족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살다 보면 병들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한국 건강보험 체계가 다른 나라에 비하면 잘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공공병원은 부족하고 의료비는 만만치 않다.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인 사람은 아파도 마음놓고 치료받을 여유조차 없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로 이렇게 아파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계층은 점점 늘고 있다. 아프면 쉴 수 있는 사회, 사고나 질병으로 고통받을 때 적절한 공공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회,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생로병사의 굴곡 속에서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