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여왕’도 불안했고 ‘황제’도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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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4. 오전 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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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심장 김연아도 타이거 우즈도 긴장감에 시달렸고 실수도 했다
치열한 몰입, 견고한 계획으로 자신만의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2014년 2월 19일(현지시각) 피겨여왕 김연아가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연기하고 있다./주완중 기자

지난달 강원 동계 청소년 올림픽 기간에 ‘올림피언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대회 홍보 대사 김연아와 윤성빈, 유승민 IOC 위원이 청소년 질문에 답하며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다. ‘마음’에 관한 고민이 많이 나왔다. “연습 때는 잘하는데 대회만 들어가면 긴장되고 몸이 굳어 실수를 해요.”

선수 시절 김연아는 탁월한 실력은 물론이고 단단한 눈빛, 중압감을 이겨내는 강심장으로 통했다. 은퇴 10년이 지났지만 그 비결은 여전히 궁금했다. 그는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쏟으며 치열하게 달려간 전투적인 시기였다”고 청소년기를 돌아봤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만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실수하는 상상도 많이 했고,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를 해놨다. ‘안되더라도 괜찮다. 나도 인간인데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부담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정말 경기하듯이, 얼음에 발을 딛자마자 6분간 워밍업을 한 뒤 잠시 쉬었다가 바로 들어가서 프로그램 진행하는 연습을 반복했다”고 한다. “경기에서 연습처럼 하자는 말이 있잖아요. 연습에서 경기처럼 임하는 것도 도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연습 때 하던 것을 몸이 기억하는 게 꽤 있거든요.” 위기를 겪었던 2014년 소치 올림픽을 예로 들었다. “쇼트 경기 직전 6분 워밍업을 제 기준으로 완전히 망쳐버렸어요. 마음에 드는 점프가 하나도 없었어요. 몸에 아무 점프 감각이 없는 듯한 굉장히 불안한 상태로 워밍업이 끝나버린 거예요. 다른 대회도 아니고 올림픽인데.”

어떻게 대처했을까. “평소 연습 때 잘했기 때문에 ‘아, 몰라. 몸이 기억하겠지’ 하며 집중했어요. 그러다 보니 워밍업 때 나오지 않았던 점프가 경기에선 잘나왔어요.” 실전처럼 쌓아온 훈련이 위력을 발휘했다. “멘털이 강하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저도 실수하고 실패한 적 많았거든요.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저도 불안하고 긴장되고 컨디션이 안 좋았던 때가 많았어요. 감사하게도 좋았던 모습들만 많이 기억해 주시더라고요.”

비슷한 이야기를 타이거 우즈도 한 적이 있다. 표정과 분위기만으로도 경기를 압도하던 엄청난 정신력의 소유자. 그도 2년 전 주니어 골프 선수들과 만난 자리에서 워밍업 루틴 질문을 받았다. 우즈는 주니어 시절 경기에 나설 때마다 첫 홀 티샷이 매번 페어웨이를 벗어나 이를 극복하려고 경기 직전 루틴을 생각해 냈으며, 이후로도 유지해 왔다고 답했다.

그가 “드레스 리허설”이라고 표현한 루틴은 이렇다. 연습장에서 가장 짧은 클럽부터 가장 긴 클럽까지 모든 클럽을 순서대로 친 다음, 다시 드라이버부터 샌드웨지까지 역순으로 친다. 마지막으로, 첫 홀 티샷 할 때 사용할 클럽을 꺼내 든다. 바람과 페어웨이 상태, 핀 위치 등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샷을 한다.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클럽을 골프백에 넣고 수건으로 손을 닦은 뒤 다시 꺼내 쳐본다. ‘새로고침’ 하는 것이다.

실제 경기에 들어가 첫 홀 티샷을 하기 전 생각한다. ‘연습장과 똑같아. 똑같은 샷이야.’ 이 루틴을 반복하면서 “첫 홀 티샷을 더 많이 성공하기 시작했고, 더 많은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하기 시작했고, 점점 발전해 나갔다”고 했다.

일반인과는 다른 심장을 갖고 태어난 듯한 ‘전설’들이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고민을 했다는 건 위로와 격려가 되는 이야기다. ‘피겨 여왕’도 불안했고 ‘골프 황제’도 흔들렸다. 작은 실마리를 찾아내 자신만의 방법으로 풀어가면서 스스로를 믿고 결과를 이끌어냈다. 누구나 ‘여왕’이나 ‘황제’가 될 수는 없지만, 인생의 크고 작은 고비를 ‘여왕’처럼, ‘황제’처럼 극복할 수는 있을 것이다. 치열한 몰입과 견고한 계획으로.

1월 28일 강원도 평창군 평창올림픽기념관에서 'KB와 함께하는 강원 2024 올림피언 토크 콘서트'에 참가한 유승민 2018평창기념재단 이사장·IOC 선수위원(앞줄 왼쪽에서 둘째),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셋째),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김연아(넷째)와 청소년들./2018평창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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