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白紙 시위 1년, 바뀐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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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8. 오전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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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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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27일 베이징에서 코로나 봉쇄 조치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백지 시위'를 펼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백지(白紙)를 냈으니 성적이 좋을 리 있나.”

1주년을 맞은 중국의 ‘백지 시위’에 대해 베이징에서 만난 한 지식인은 이렇게 평가했다. 이 시위는 작년 11월 26일 상하이에서 시작돼 수도 베이징 등 전국 각지로 퍼졌던 코로나 방역 반대 시위다. 당시 중국인들은 공안 제재를 피하기 위해 반(反)정부 구호와 같은 특정 문구를 적은 피켓 대신 빈 종이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중국에서 보기 드문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외신에선 ‘중국인들이 정부에 맞서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중국인들은 시위 이전보다 더욱 온순해졌다. 대중 매체와 예술 작품 속 반체제 메시지에 대한 자기 검열은 강화됐고, 사석에서도 국가 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시진핑의 라이벌’ 리커창 전 총리가 사망했을 때도 그에 대한 재평가는 소셜미디어에서 익명으로 이뤄졌다. 백지 시위가 중국인들에게 저항의 경험이 아니라 강력한 국가 통제를 체험한 기억으로 남게 되면서 ‘경궁지조(驚弓之鳥·한 번 화살에 맞은 새는 구부러진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가 늘어난 듯하다.

백지 시위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삼일천하, 용두사미’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실명을 걸고 나선 시위대의 주역도, 구심점이 되는 조직도 없었던 탓이다. 시위의 목표가 ‘방역 즉각 해제’인지 ‘정부의 사과’ 또는 ‘체제 변화’인지 뚜렷하지 않았다. 시위 과정에서 베이징대·칭화대 등 명문대 학생들은 학교 당국 눈치를 보며 입장문조차 내놓지 않았다. 대조적으로 중국 정부는 시위 발생 다음 날부터 참가자들을 찾아내 경고하고 처벌하는 방식으로 일사불란하게 사태를 진화했다.

시위 이후 중국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시위나 공개 항의는 ‘상소’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유리 천장이라도 생긴 것처럼, 중국인들이 비난을 퍼붓는 대상은 지방 정부나 하급 관료에 머물렀다. 지난 8월 베이징과 슝안신구의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허베이성 바오딩시가 ‘해자’ 역할을 하며 피해를 입은 일이 있었는데, 주민들의 비판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 관리에게 돌아갔다. 중국인에게 이제 정부는 타도·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야 할 ‘따거[大哥]’다.

앞으로 중국인들이 국가와 맞서 싸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신장위구르 지역, 홍콩에 대한 중국 정부의 통제를 목도하고, 백지 시위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확인한 이들에게 ‘저항은 부질없다’는 인식이 뿌리 내렸다는 것이다.

중국인이 저항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중국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결론으로 이어진다. 미·중 경쟁 속에서 집요하게 계획 경제·일인 체제를 구축한 중국은 이제 내부적으로 변화할 가능성마저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중국을 상수로 보고 전략을 짜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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