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프리랜서' 울산방송 아나운서 "회사가 날 거리로 내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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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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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기자회견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라” 사측 비판 이어져
이산하 아나운서·손민정 CG노동자에 대한 ‘보복갑질’ 비판 수면 위로
"무늬만 프리랜서일 때는 정규직처럼 온갖 방송 업무를 다 시키더니 근로자로 인정받은 지금, UBC울산방송은 제 자리는 없다고만 말합니다."(아나운서 이산하씨)

"저를 이 아나운서처럼 해고하면 부당해고 인정이 염려되는지, 근로시간과 임금을 줄여 생계가 어려워지도록 합니다. 여태 UBC에서 일한 저의 시간들은 무엇이었을까요."(CG제작 노동자 손민정씨)

▲이산하 UBC울산방송 아나운서가 18일 울산 중구 UBC울산방송 사옥 앞에서 'U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가)'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UBC울산방송에서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해온 방송제작 노동자들이 18일 UBC 사옥 앞에 섰다. 방송제작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워온 관행에 당사자들이 법적 다툼에 나서자, 회사가 보복성 대응에 나섰다는 비판이 지역사회 수면 위로 올라왔다.

엔딩크레딧과 노동당 울산시당위원회,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등이 참여한 'U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가칭)'은 18일 오전 울산 중구 UBC울산방송 사옥 앞에서 '이산하 아나운서 부당전보 규탄과 온전한 노동자성 인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전히 너는 직원들과 다르다는 UBC…거리로 내몰았다"

이산하씨는 이 자리에서 "UBC에 묻고 싶다. 회사의 필요나 지시에 따라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는데, 저는 구성원으로, 근로자로 인정하기 그렇게 힘든지"라고 물었다. 그는 "회사가 부당해고 되돌리고 명확한 계약서를 쓰라는 법 판단 취지를 거슬러 '노동부에 진정 넣으라'고 말하는 태도가 절 거리로 내몰았다"고 했다.

▲이산하 UBC울산방송 아나운서가 18일 울산 중구 UBC울산방송 사옥 앞에서 'U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가)'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씨는 UBC에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계약서 없이 일하다 '해고' 통보를 받은 뒤 노동위에서 거듭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고 복직했다. 그러나 UBC는 근로계약을 작성하지 않고 그가 맡던 프로그램을 줄이다 올해 모두 폐지한 뒤 단시간제 편집요원으로 배치했다. 이씨는 지난 15일부터 UBC 앞에서 부당전보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이씨는 "복직한 첫날을 아직 잊지 못한다"며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출근해 마주한 현실은 소지품 검사였다. 또 '우리는 여전히 네가 직원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는 막말이었다"고 했다. 이씨는 "1인 시위를 시작한 지난 15일 UBC 메인뉴스엔 노동자의 천막농성 기사가 보도됐지만 회사 안에서 부르짖는 제 목소리는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면서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매일 매일이 고통스럽고 끔찍하지만, 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 하나로 버틴다"고 말했다.

UBC에서 CG제작 해온 손민정씨 "소송 제기했더니 새벽 2시간 근무"

"제 문제와 이 아나운서 문제가 다르지 않다. 일을 시킬 때는 직원처럼 막 부려먹고, 필요없다고 마음대로 자르고, 경력을 전부 인정하지 않고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계약을 강요한다." UBC에서 9년째 일해온 CG제작 노동자 손민정씨는 이날 "과거는 부정 당하고 현재와 미래는 빼앗긴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3월 회사를 상대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UBC에서 이른바 '프리랜서'로 일하다 근로자지위소송에 나선 9년차 CG제작 노동자 손민정씨가 18일  UBC 사옥 앞에서 'U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가)'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손씨는 "2년 반 전 이산하 아나운서 소송 시작 이후 회사가 갑자기 프리랜서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고 밝혔다. 손씨가 '나는 프리랜서로 일하지 않았다'며 작성을 거절했더니 1년 뒤 회사는 '무기계약직'을 들고 왔다고 했다. 7년 경력을 인정하지 않고 급여도 줄어드는 계약서였다. 손씨가 서명을 거절했고, 회사는 그를 정규직과 섞여 일하던 3교대제에서 뺀 뒤 근무시간을 대폭 줄였다. 손씨는 "1년 넘게 하루 2시간씩만 새벽에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 최순혁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이 18일  UBC 사옥 앞에서 'U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가)'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참가자들은 이씨와 손씨가 겪는 일이 UBC 노동자만의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최순혁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수많은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자본은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프리랜서라고 부른다. 마치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계약 결정권을 쥐는 사람처럼 우리를 포장한다"고 했다.

최 수석부지회장은 "(현대차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은 현장에서 똑같이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을 하면서도 고용과 임금, 안전, 보건까지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는다. 저항하면 어김없이 우리를 탄압한다"며 "이 아나운서를 향한 탄압도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를 향한 탄압"이라고 했다.

▲ 이선이 민주노총법률원 울산사무소 노무사가 18일  UBC 사옥 앞에서 'U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가)'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선이 민주노총법률원 울산사무소 노무사는 노동을 주제로 한 지상파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방송사 비정규직 실태를 체감한 사례를 언급했다. 이 노무사는 "참여하면서 오히려 방송국에 이렇게 많은 비정규직이 있었나 실감했다. 촬영 장소의 수많은 노동자 중 방송사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은 드물고 계약직, 단시간, 용역, 이산하 아나운서처럼 프리랜서 형식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방송을 만들고 있었다"고 했다.

이 노무사는 "마지막회는 직접 출연하겠다는 현장 비정규직 노동자가 없어 PD님이 괴로워했다. 자기 얘기를 꺼내기조차 두려운 게 비정규직의 현실인데, 이 아나운서가 방송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다툼을 하고, 회사 요구를 거절하며 버티고, 1인시위와 기자회견을 하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느낀다"고 했다.

▲엔딩크레딧과 노동당 울산시당위원회,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등이 참여한 'U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가)'은 18일 오전 울산 중구 학산동 UBC울산방송 사옥 앞에서  '이산하 아나운서 부당전보 규탄과 온전한 노동자성 인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U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은 "울산방송이 하루빨리 이 아나운서의 부당전보를 철회하고, 노동자성을 온전히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협의를 통해 기존 업무를 수행하도록 배치하고 노동시간을 보장하라. 그리고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라"고 밝혔으며 "더 이상 지역사회를 실망시키지 말고 이 아나운서 사안을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UBC 측 언론 담당자는 18일 이날 기자회견과 관련해 회사 입장을 묻기 위한 전화와 메시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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