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사진을 대하는 마음가짐
일본의 소설가 나카야마 시치리가 2013년 발표한 스릴러 소설 <살인마 잭의 고백>은 1888년 런던에서 벌어진 5명의 매춘부 연쇄 살인 사건을 빗대어, 현대의 일본에서 자신을 '잭'이라고 지칭한 인물의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장기 이식을 두고 벌어지는 살인사건입니다. 소설에는 장기 이식의 찬반론을 두고 열린 TV 토론회에서 장기 이식을 반대하는 스님과 장기 이식을 찬성하는 의사와의 논쟁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스님이 의사에게 하는 말입니다.
기우에 지나지 않습니다.(의사)
몇 번이나 거듭거듭 실례되는 말씀입니다만, 선생님의 시야는 너무나 좁습니다.(스님)
승려의 눈이 갑자기 연민의 빛을 띠었다.
우리는 누구나 한정된 시간밖에 부여받지 못했지요. 그런 와중에 전문 분야에 특화되면 될수록 시야는 좁아집니다. 시야가 좁아지면 세상의 상식과 동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나를 버티고 있던 상식이 어쩌면 세간의 비상식일지도 모른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지요.
사진과는 전혀 관련 없고 동떨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소설책을 읽고 한동안 먹먹했습니다. 마치 제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문장.
전문 분야에 특화되면 될수록 시야는 좁아집니다.
사진에는 특화됐지만, 시야가 좁아졌음을 '이제야' 인정합니다. 2003년 11월 사진을 처음 시작했고, 2008년 12월 군 제대 후인 2009년부터 연작을 하면서 사진을 더욱 진지하게 했습니다. 2009년부터 올해까지 10년의 시간은 사진만 '잘' 하기 위한, 사진에만 특화되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압니다. 사진을 하기 위한 시간이 단지 사진 촬영만이 아니라 사진을 공부하고, 사진을 찍고, 사진을 고르고, 사진을 작업하는 기나긴 시간임을.
그 어느 때보다 사진에서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진입장벽이 낮아졌기에 쉽게 사진을 할 수 있고, 누구나 작품을 만들고 예술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사진의 홍수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진을 '잘' 하기 위해 제 그간의 삶은 집, 회사, 집, 회사, 동물원 그리고 동물원이었습니다.
사진을 '잘' 하기 위해 불안정했던 삶을 안정적으로 만들려고 했고, 그 가운데 자본과는 상관없이, 그러니까 자본의 압박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진을 하려고 했기에, 지난 10년 동안 몇 달의 공백기를 제외하고 직장인으로 살면서 사진 작업을 해왔습니다. 제가 주로 사진 촬영을 할 수밖에 없던 시간은 주말이었습니다.
사진을 하면서 제 스스로에게 가장 떳떳한 점은, 집에 단돈 '10원 한 장' 빌리지 않고, 사진을 해왔다는 점입니다. (옛날에 10원은 동전이 아니라 지폐였습니다. 위키백과에서 1962년부터 1979년까지 공개한 은행권을 찾아보면 10원은 지폐입니다. '10원 한 장'의 계기는 예전에 아버지께서 '10원 한 장 돈 버는 게 쉽냐'라고 했던 말씀이었습니다.)
2003년 사진을 시작해 첫 카메라를 살 때부터 지금까지, 사진에 관련된 모든 것은 제 스스로 해결해왔습니다. 물론, 제 첫 번째 전시회 때 결코 적지 않았던 사진 액자를 선뜻 구매했던 지인분들에게는 지금도 너무나 감사하고 빚을 진 마음이 있습니다.
2016년 12월 서울에서 두 번째 집으로 이사하면서 방은 조금 더 커졌고, 생활은 조금 더 안정적으로 나아졌습니다. 사진을 잘 하기 위한 여건은 더 나아졌으나, 정작 제 자신은 '시나브로'(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사진에 대한 꿈과 희망을 멀리하게 된 것 같습니다.
꿈을 가로막는 것은 시련이 아닌 안정이다.
삶이 안정되다 보니, 역설적으로 꿈을 내려놓게 된 것 같습니다. 편해지니까, 힘든 시절을 잊게 된 것 같습니다. 어느덧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면서, 체력만 약해지는 게 아니라 사진에 대한 열정도 서서히 줄어들었습니다.
집, 회사, 집, 회사의 단조로운 생활에서 100번까지의 동물원은 제게는 희망이자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100번의 촬영을 마친 이후, 꿈을 점차 상실하면서 자이가닉 효과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자이가닉 효과는 사람들이 완성된 과제보다는 미완성된 과제에 대해 더 높은 긴장감을 갖게 되는데, 이 긴장감이 심리적 과정에 에너지를 부여하게 되어 완결하고자 하는 동기부여를 촉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일단 그 과제를 완성하거나 해결하고 나면 긴장이 급속히 떨어져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게 되기도 한다.
- 출처 미상
동물원은 제 평생의 작업이라고 하면서 잘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그전보다 제 스스로의 의지와 열정이 줄어들었음을 인정해야겠습니다.
동물원 작업은 어쩌면 끝을 맞이했으나 제 스스로 평생의 작업으로 끌고 가려고 하기에 끝을 내지 않는 작업인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10년을 작업하고 있어도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았고, 아는 사람만 아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관심과는 상관없이, 동물원은 여전히 동물원 그 자체로 머물러 있습니다. 동물들의 처우나 복지는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그렇기에 제 동물원 작업은 여전히 유효하고, 계속해야 된다는 사명감도 분명합니다.
그렇게 뭔가를 향해
달리다간, 또 뭔가
한 가지 놓치고 지나치는 법.
그런 거지.
살고
죽는다는 건.
- 일본 작가 미우라 켄타로의 만화 <베르세르크> 중에서
(대학교 때 언뜻 보았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는...)
사진을 하면 할수록,
사진만 하면 할수록,
세상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세상의 상식과는 상관없이,
세상과 동떨어질 수 있음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보다 백배는 긍정적인)
저는 사진만 하려고 합니다.
사진만 보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사진만 하다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사진만 하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제가 선택했고,
살면서 가장 좋아한 것이
사진이었으니까요.
사진을 시작한 것은
순전히 제 스스로의 의지였습니다.
사진에 대해서는
타인의 의지가 아닌
제 스스로의 판단과 의지로 해가려고 합니다.
사진을 아무리 잘 하려고 노력해도,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좋지 않은 일도 일어나는 게 현실입니다.
사진 작업을 계속해야 하고,
사진 공부도 계속할 것입니다.
사진과 삶은 이어져있기에,
좋은 삶을 살아야 사진도 좋아질 것입니다.
사진을 끝내지 않기 위해,
계속 그 길을 걸어갑니다.
비두리(박창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