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빨리 일어나쇼” 산불때 어르신 업고 뛴 인니 3명 ‘특별체류’

입력
기사원문
전혜진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자식들 안부전화 소리도 못들어
‘걱정 마쇼’ 대신 말하고 들쳐업어”
산불 피해복구 성금 925억 모여
“마을 돌아 댕기면서 ‘할매요, 지금 영해까지 불이 다 왔어. 빨리 일어나쇼!’ 하고 소리 지르고 막 들쳐업고 나왔지예.”

지난달 경북 영덕군으로 대형 산불이 번졌을 때 마을 어르신들을 대피시킨 인도네시아 국적의 금양호 선원 수기안토 씨(31·사진)가 8년여 영덕 생활 덕에 배운 구수한 사투리로 6일 말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밤 영덕군 축산면에 산불이 넘어오자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귀가 어두운 어르신들을 깨웠다. 수기안토 씨는 “전화가 미친 듯이 오는데도 어르신들이 안 들리니까 못 받고 있더라”며 “대신 전화를 받아 ‘할매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쇼’라고 했다”고 말했다.

수기안토 씨를 포함해 역대 최악의 산불이 난 경북에서 주민 대피를 도운 인도네시아 출신 선원 3명이 특별기여자 체류자격을 얻게 됐다. 이한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차장은 6일 중대본 15차 회의를 열고 “이번 산불 때 대피에 어려움을 겪던 할머니 등을 도운 인도네시아 국적의 세 분에게 특별기여자 체류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며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이웃의 생명을 구한 분들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수기안토 씨는 산불이 발생한 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7명을 업고 인근 방파제로 대피시켰다. 그는 “불길이 무서웠지만, 인도네시아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했다. 어르신들도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대피를 도왔다”고 했다.

영덕군 어촌계장 유명신 씨(50)는 수기안토 씨에 대해 “심성이 착한 청년”이라며 “어르신들의 무거운 짐을 들어드리고 마을 사람들을 잘 도와서 사람들이 형광등 전구가 나가면 다 그에게 고쳐달라고 할 정도”라고 전했다. 유 씨는 “우리는 ‘쑤기야’ 또는 ‘쑥아’라고 부른다”며 “돈 많이 주는 곳에 가서 일하라고 해도 ‘여기가 좋다’며 계속 있더라. 가족이나 다름없는 친구를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게 돼서 좋다”고 덧붙였다.

5세 아들을 둔 수기안토 씨는 어업 분야 취업 비자로 입국해 3년 뒤면 한국을 떠나야 했지만, 이번 특별기여자 체류자격을 받게 돼 국내 장기체류가 가능해졌다. 영덕군 축산면에서 고령의 어르신들을 부축해 대피시킨 레오 씨, 경북 영덕군에서 구조를 도운 비키 씨도 특별기여자 체류자격을 받았다. 한편 중대본에 따르면 4일 기준 영남권 산불로 피해를 본 주민들을 돕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성금이 92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