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日서 원격진료 경험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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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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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21일, 일본 도쿄의 집 안방에서 아침 6시 30분에 스마트폰으로 의사를 만났다. 전날 오후 혈압약이 한두 알만 남은 걸 알고 인터넷으로 원격진료 병원을 찾아 예약한 것이다. 의료보험증은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앱에 등록했다. 화상 통화로 만난 의사는 10분 정도 이야기를 주고받곤 처방했다. 진료 후 간호사가 “다음 번 진찰을 위해 원격으로 혈압을 재자”고 했다.

다음 날 택배로 혈압약과 혈압측정기가 왔다. 아침·저녁에 혈압을 재면 자동으로 스마트폰 앱에 기록된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하느라, 2~3시간씩 일과 시간을 뺏기던 불편이 사라졌다. 여전히 팩스를 쓰고 관공서에선 도장을 찍는 디지털 후진국 일본에서 디지털의 혜택을 받은 것이다.

일본 의사들은 힘이 없어서 원격진료를 못 막았을까. 일본 신문의 한 기자에게 물었더니 “일본 의사회는 자민당과 같은 편이고 심지어 목소리를 키우려고 정치단체도 만들고 정치 헌금도 한다”는 시니컬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그에게 재차 “일본 의사회가 극렬 반대했으면 막았을 것 아닌가”라고 물었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극렬 반대’라는 전제를 이해 못 한 것이다. 환자한테 편리한 제도라 반대할 명분도 없고 싫든 좋든 받아들이는 게 시대 흐름 아니냐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초진 원격진료가 지난달 23일부터 가능해졌다.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 중 하나다. 닥터나우와 같은 원격진료앱 3곳의 신청 건수가 초진 허용 전과 비교해 주간 기준 100% 정도 늘었다고 한다.

14일 대한의사협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원격 진료의 전면 확대를 중단하라”고 밝혔다.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 사태의 해결과 아무런 상관없는 대책”이라고 했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원격진료는 감기 등 경증 질환 환자를 도와주니 대형병원의 전공의 공백과는 직접 상관은 없다. 하지만 ‘의사수 확대와 원격 진료를 반대하는 의사들의 행동이 정말 환자를 위한 것이냐’는 질문에선 같은 맥락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같은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이 현장을 모르는 소리란 전공의들의 주장이 모두 그른 소리는 아닐 것이다. 붕괴된 필수 의료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전공의고, 그들의 주장이 해법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밤낮을 희생해온 전공의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몰라주는 여론이 야속할 것이다. 하지만 수십년간 증원을 반대해온 의사들의 논리에는 정말 ‘밥그릇 지키기’나 ‘특권 의식’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은 것일까.

정작 전공의들이 억울함을 토로할 대상은 그동안 너무도 완벽하게 의대 정원 증원을 막는 데 성공한 선배들일지 모른다.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에 적정 의사 수가 몇명일지, 이번엔 짚고 넘어가야 한다.

기자 프로필

조선일보 테크취재팀장. "항상 사람을 취재하고자 합니다" 책 <소통하는 문화권력 TW세대> <와!일본, 응집하는 일본인의 의식구조 해부>, 번역서 <손에 잡히는 유비쿼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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