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튀르키예 대지진 현장에서 NGO는 무엇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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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 데스크] “첫 지진 때는 집에 있었고, 이틀 전 여진 때는 밖에 있었다. 마땅한 위생 시설이 없어 화장실을 갈 때는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어가는데 또 무너질까 두렵다. 지진 발생 16일 만에 임시 거처(텐트)가 마련됐고, 그전까지는 밖에서 지냈다. 아직도 텐트가 부족한 상황이다.”
- 사이트 우챠르(Sait Uchar) 하타이 지역 이재민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은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으로 지난 24일 기준, 11개 지역에서 약 4만 4000명의 사망자와 약 53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현장은 도시 전체가 사라질 정도의 아비규환이다.

지진 피해 현장 안타키아 ⓒ
우리가 모르는 긴급구호 현장의 고충
NGO가 현장에 도착해서 즉시 구조 활동, 물자 배급, 의료 지원 등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장에는 정부의 강력한 통제가 있기 때문이다. NGO 구호 활동은 해당국 협조를 받아야만 합법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국내 NGO 역시 다르지 않다. 정부 통제가 이뤄지는 지역 안에서 제한적인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피스윈즈 긴급구호팀은 평시에 현지 네트워크를 유지·관리하는데 투자했던 덕에 막힘없는 활동이 가능했다. 의료팀은 세계보건기구(WHO) 응급의료팀(Emergency Medical Teams) 자격을 획득한 덕에 현장에서 ‘진료 등 의료활동’을 할 수 있었다. 구조팀은 유엔(UN) 인사락(INSARAG) 멤버인 현지 긴급구조단체 ‘GEA’와는 오랜 세월 협업 체계를 구성하고 정기 훈련을 진행했다.

피스윈즈 구조팀 구조 활동ⓒ
빠르게 활동하는 것만큼 적재적소에서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노하우와 철저한 준비가 없다면 아수라장인 현장에서 마구잡이로 활동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평소에 인력과 조직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현장에서 즉시 구호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국제적인 지위를 획득하고, 전문성을 지닌 현지 단체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 이에 공감하는 후원자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심과 증빙 아닌 지원과 협력, 긴급구호는 말 그대로 긴급구호

국내 NGO가 현장에서 구호 활동만큼 신경 쓰는 일은 무엇일까? ‘의심을 걷어내는 일’과 ‘증빙하는 일’이다. 피스윈즈는 지진 발생 직후, 모금플랫폼에서 모금함을 개설하는데 미국에서는 반나절, 한국에서는 10일 소요됐다.

물자 배분 활동ⓒ
미국 플랫폼은 ‘긴급구호’ 특성에 맞게 최소한의 자료를 요구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활동기간과 목적·방향 제안서, 현지 직인이 찍힌 통장사본 등을 제출하고 심사과정을 거쳐야 한다. 의심에 기반한 증빙 방식이다. 긴급한 이슈를 평시와 같은 절차로 진행한다. 정부의 긴급구호 자금을 신청할 때도 마찬가지다.

증빙은 어떨까? 미국 모금플랫폼은 증빙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후원자에게 정기적으로 활동 내용을 보고하라 요구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모금 자격을 박탈한다. 후원자 피드백 중요성에 대한 교육을 플랫폼 내에서 진행하고 이수한 단체만 혜택을 준다.

반면 국내 플랫폼에서는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증빙이다. 긴급구호 현장은 수시로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대응한다. 그럼에도 정형화된 증빙자료를 내놓으라고 한다면 현지에서는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의료팀 지원 활동ⓒ
긴급구호 현장을 목숨 걸고 전문성을 가진 일꾼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이다. 의지가 있는 자원봉사자가 현장에 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증빙은 모금이나 정부기관 담당자에게 할 일이 아니라, 기부자들에게 투명하게 하면서 평가받게 하는 것이 맞다.

작고 무모한 피스윈즈가 할 수 있는 일

피스윈즈는 규모는 작지만, 이러한 구조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기부자와 함께하는 새로운 구조를 설계했다.

우리는 함께 훈련하고 성장해 온 튀르키예 파트너 GEA와 MOU를 맺고, 인명 구조 활동과 의료 지원, 물품 지원 등을 병행하는 중이다. 이는 평소부터 그들과 신뢰를 쌓고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비용을 쓰게끔 후원자들이 동의 덕에 가능했다. 사실 후원자가 아니라, 정부와 유관기관이 이러한 구조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럴만한 토대가 있는지 반문해 본다.

현지 긴급구조단체 GEA와 MOU 체결ⓒ
의심과 증빙에 시달리면서 일하는 사람은 기꺼이 소명의식을 갖고 일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정도 사는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표준을 만드는 일을 해야할 책무도 동시에 부여된다.

우리는 여느 나라보다 선한 기부자와 신의성실한 NGO 일꾼들이 있다.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끔 정부와 민간에서 NGO의 생태계를 조성해주길 기원한다.

*피스윈즈는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튀르키예 지방정부-현지 파트너 단체와 20명의 스탭들이 진행하고 있다. 한편, 피스윈즈 각 국가에서 파견된 스텝들과 바로 돌입해야 하는 재건사업을 위한 지역조사를 전개 중이다. 현재 피스윈즈는 안타키아에서 진료소, 물자 배분소를 운영하고 있다.

*GEA는 '수색'과 '구조'를 전문으로 하는 단체로서 1994년에 설립된 자원봉사활동 조직이다. 해외 재난 발생 시 각국 구조대의 탐색구조 활동을 조정ㆍ통제하는 유엔(UN) 산하기구인 인사락(INSARAG) 멤버로 누구보다 뛰어난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 피스윈즈 구조팀과 긴급구호 현장에서 협업을 통해 파트너쉽을 구축하고, 공동 훈련 등을 전개하고 있다.

고두환 (재)피스윈즈코리아 상임이사 casto84@fairtrave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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