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넓히기 포기한 1인 가구들...옷·책 보관하는 신박한 공간

입력
수정2023.06.26. 오후 4:08
기사원문
정순우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셀프 스토리지’ 시장 급성장

경기도 판교의 한 IT 기업에 근무하는 김모(31)씨는 한 달에 두세 번 동호회 사람들과 캠핑을 다닌다. 하나씩 사 모은 캠핑 장비가 제법 많아져 10평 남짓한 그의 원룸 오피스텔은 항상 비좁고 어수선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초부터 그는 집 근처 빌딩 지하에 있는 가로·세로 1m 넓이의 ‘개인용 창고’를 매달 9만원을 주고 빌려, 캠핑 용품과 철 지난 옷, 책을 보관하고 있다. 김씨는 “방 두 칸짜리 오피스텔로 이사 가려면 월세를 40만원 더 줘야 하는데, 그걸 생각하면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셀프 스토리지 ‘다락’에서 회사 관계자가 쇼룸과 개인 창고 시스템 이용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집값이 급등하면서 부피가 큰 스키나 캠핑 용품, 피규어 등을 보관하는 셀프 스토리지 매장이 크게 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최근 부동산 업계에서 공유형 개인 창고, 이른바 ‘셀프 스토리지(self storage)’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도심 내 건물이나 지하철 역사 내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캐비닛 또는 부스 형태의 창고를 만들어, 매달 일정 금액을 받으며 개인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해외에선 이미 보편적 서비스로 자리 잡고 있다. 필요한 공간을 외부에서 정기적으로 빌려 쓴다는 의미에서 ‘공간 아웃소싱’ 또는 ‘공간 구독경제’라 부르기도 한다.

셀프 스토리지가 주목받는 것은 1인 가구 증가와 집값 급등이 맞물린 사회 현상의 한 단면이라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1인당 평균 주거 면적은 10평 남짓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급등한 부동산 가격에 넓은 집은 포기하고, 취미 활동을 즐기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문화가 확산하면서 부피가 큰 스키나 캠핑 용품, 서핑 보드, 피겨, 소형 전자기기 같은 물건을 둘 공간이 부족해져, 물품 보관소를 이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짐은 많은데 집은 비좁아... 셀프 스토리지 주목

지난 23일 방문한 서울 강남역 인근 한 빌딩 지하 1층에 있는 셀프 스토리지 매장.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실행시키고 모바일 출입 카드를 발급받아 보안 스캐너에 갖다 대자 출입문이 열렸다. 매장 내부에는 사물함부터 캐비닛 모양 부스까지 다양한 크기의 보관함이 배치돼 있었다. 업체 관계자는 “24시간 CCTV 감시가 이뤄지며 보관 물품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중앙관제시스템을 통해 온도와 습도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 같은 셀프 스토리지 매장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조사 업체 존스랑라살르(JLL) 코리아에 따르면, 국내 셀프 스토리지 매장은 300여 곳으로 작년보다 50% 이상 늘었다. 국내 1위 업체인 세컨신드롬이 운영하는 ‘다락’이 69곳,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또타스토리지’가 24개 지점을 운영 중이다. 엑스트라스페이스, 스토어허브 같은 외국계 기업도 국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셀프 스토리지는 넓이 0.3평에서 3~4평까지, 높이 1~2m로 다양하다. 0.3평에 높이 2m만 돼도 우체국 박스를 10개 이상 쌓을 수 있어 1인 가구가 이용하기엔 충분하다. 비용은 업체나 지역마다 다르지만 0.3평 기준 월 4만~12만원 정도다. 서울 광화문·강남역 등 오피스 밀집 지역뿐 아니라 서울 불광동과 왕십리, 성수동, 봉천동 등 1인 가구 밀집 지역에도 많다. 다락 관계자는 “시내에는 사무·작업 공간이 부족한 기업들이 회사 비품이나 장비를, 주거 지역은 스키·서핑보드·피겨 등 취미 용품을 주로 보관한다”고 말했다.

그래픽_양진경

◇집 3평 늘리려면 월세는 40만원 더 줘야 하니...

셀프 스토리지가 주목받는 것은 1인 가구 증가 추세와 도심 주거 공간 부족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2021년 기준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33.4%, 1인당 평균 주거 면적은 33.9㎡(약 10평). 보통 도심에서 3평 정도 되는 방 한 칸을 늘리려면 월세를 40만~50만원은 더 줘야 한다. 1㎡로 따져도 5만원 이상이 더 든다. ‘셀프 스토리지’는 같은 공간이라도 집과 비교했을 때 짐을 압축적으로 더 잘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 비싼 집 대신 취미 생활에 돈을 쓰는 욜로(YOLO) 문화가 확산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또타스토리지가 이용객 연령대를 분석한 결과, 30대가 46%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40대(22%), 20대(15%)순이었다. ‘다락’이 보관 품목을 조사해 보니, 의류와 취미용품(스키·피겨 등), 생활용품(가전·가구 등), 도서순으로 많았다. 다락 관계자는 “최근 재택근무가 늘면서 주거 공간을 좀 더 쾌적하고 넓게 쓰려는 경향이 많다”고 말했다.

리서치 기업 스태티스타는 2020년 480억달러였던 글로벌 셀프 스토리지 시장 규모가 2026년 647억달러(84조4000억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