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채·은행채 줄이고… 국민연금, 구원투수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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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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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경제민생회의]
채권·단기자금 시장 ‘돈맥경화’ 추가 대책
최대 102조 유동성 지원 효과
규제 풀어 은행 대출 늘려주고
한은이 RP 6조원 규모로 사들여
돈줄 마른 증권·금융사에 ‘숨통’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 23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마친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상목(왼쪽부터) 대통령실 경제수석,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추 부총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뉴스1

높은 금리를 준다고 해도 돈을 구하지 못한 기업들과 만기가 돌아온 채권 차환(새 채권을 발행해 기존 채권을 갚는 것)이 다급해진 금융사들의 아우성이 계속되자 금융 당국이 27일 추가 대책을 내놨다. 예대율(예금액 대비 대출액 비율) 규제를 풀어 대출을 늘려주고 은행채와 한전채 발행을 줄이고, 한국은행이 은행 등에 대출을 할 때 받는 담보 채권의 범위도 확대해 시중에 돈이 더 많이 돌게 하려는 방법들이다.

”유동성 최대 102조5000억원 증가”

금융위원회는 예대율 비율을 은행은 100%에서 105%, 저축은행은 100%에서 110%로 6개월간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평소 이 비율을 100% 이하로 유지해야 하는데, 느슨하게 해서 예금보다 대출을 더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이 조치로 은행 등이 최대 60조원 규모의 대출 여력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한은도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은행들이 한은에서 대출을 받거나 차액 결제를 할 때 맡기는 적격담보증권 대상에 은행채와 한전채 등 9개 공공기관채를 추가한다고 의결했다. 은행채와 한전채는 이달에만 23조원 가까이 발행돼 전체 채권 발행의 50%를 차지, 시중 자금을 빨아당기는 ‘블랙홀’로 지목된다. 한은이 은행채와 한전채 등을 담보로 대출해주면 은행과 공공기관들이 자금을 확보해 채권 발행을 줄일 수 있다. 은행채 등의 물량이 감소하게 되면 일반 회사채 등으로 자금이 흘러가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은은 또 증권사, 증권금융 등을 대상으로 환매조건부채권(RP)도 약 6조원 규모로 매입하기로 했다.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직접 유동성을 늘리는 조치다. 정부와 한은이 이날 내놓은 추가 조치는 최대 102조5000억원의 유동성 지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5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도 이날 금융위가 소집한 시장안정 점검회의에서 기업어음(CP)이나 은행채 발행을 줄이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차환을 위한 주관사 역할을 강화하기로 했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7000억원 PF가 만기를 하루 앞둔 이날 차환 발행에 성공한 것도 이런 움직임의 일환이다.

강원도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레고랜드 개발 사업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 보증채무 2050억원을 12월 15일까지 갚겠다고 밝혔다. 내년 1월 29일까지 상환할 계획이었지만, 기획재정부와 협의 끝에 시기를 앞당겼다.

한전채·은행채 줄여 시장 안정시킨다

정부가 지난 23일 ‘50조원+알파(α)’ 비상 대책을 내놨지만, 시장 분위기는 아직 냉랭하다. 27일 채권시장에서 단기 자금 지표로 쓰이는 기업어음(CP·91일물) 금리는 전날보다 0.04%포인트 오른 4.55%를 기록했다. 지난달 말 강원도의 지급 보증과 관련해 문제가 생기면서 레고랜드 사태가 터진 뒤 1.29%포인트 뛰었다. 트리플A(AAA) 초우량 등급 공사채 금리는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6%대까지 올라섰다.

정부는 시장에 추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큰손’ 국민연금을 구원투수로 등판시킬 계획이다. 국민연금이 신용보증기금의 P-CBO(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 발행 물량 중 일부를 사들이는 역할을 해주면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신보의 P-CBO 보증은 개별 기업의 회사채 등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 증권을 발행해 장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증 제도로, 이번에 발행 규모를 8조원에서 16조원으로 늘렸다. 신용 보강이 필요한 중소·중견기업 회사채나 건설사·여전사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은 한 군데라도 무너지면 연쇄적 충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돈 필요한 기업들로 돈이 흐르게 하고 국민연금 등 새로운 자금줄을 대면 한두 주 후에는 정책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 프로필

경제부 정책팀장, 파리특파원, 위클리비즈 편집장 거쳤음. '부자 미국 가난한 유럽(공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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