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비명 뒤 끊긴 112 신고… 살해당한 여성 위치 추적 왜 못 했나(종합)

입력
수정2022.08.04. 오후 3:15
기사원문
권승혁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별정통신사 휴대전화 이용자

다급한 위치 확인 구조적 한계

울산서 2시간 뒤 숨진 채 발견

경찰 “제도 보완책 서둘러야”



“2층인데요. 나가!” 그리고 비명을 마지막으로 툭 끊긴 112 신고 전화. 지난 1일 밤 11시 10분께 한 여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다투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여자의 비명과 동시에 연락이 두절됐다. 신고자도, 주소도, 내용도 알 수 없었다.

긴장한 경찰은 곧바로 ‘코드1’을 발령했다. 112 신고 대응 단계 중 코드1은 생명과 신체에 위험이 임박 혹은 발생했거나 현행범을 목격했을 때 적용한다.

경찰이 끊어진 수화기를 붙잡고 신고자에게 다시 연락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성이 ‘별정 통신사(회선 설비 미보유 사업자)’휴대전화를 이용해 정확한 위치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별정 통신사는 이동통신 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의 통신망을 임대해 사용하는 까닭에 긴급 상황 때 위치 추적이 쉽지 않다.

이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도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경찰은 결국 신고자와 가장 가까운 기지국 위치를 찾아내 그 주변을 중심으로 수색 활동을 벌였지만, 특이사항을 확인하지 못했다. 기지국 위치정보로만 추적할 경우 그 범위가 도심지라도 수백m까지 넓어질 수 있다.

그렇게 사건이 발생한 지 2시간쯤 흘렀을까. 이날 새벽 1시 무렵 한 남성이 울산 남구 모 파출소에 찾아와 긴장한 눈빛으로 머뭇거리더니 덜컥 “여자를 죽였다”고 자수했다.

경찰이 즉각 119구조대와 함께 범행 장소를 찾아가 출입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으나, 한발 늦은 뒤였다. 신고자로 보이는 여성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돼 있었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살인 혐의로 A(30대) 씨를 긴급체포하고 자세한 범행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A 씨는 채팅앱을 통해 피해 여성과 처음 만났는데 돈 문제로 다퉜고, 이 과정에서 위협을 느낀 여성이 신고 직후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검찰에 신청할 방침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별정 통신사 휴대전화의 안전상 취약점이 다시 부각되면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위치정보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은 소방청·해경청·경찰청이 화재, 실종 등 긴급 상황에서 구조·신고 요청을 받으면 이통3사로부터 위치정보를 제공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별정 통신업체는 이들 기관으로부터 요청이 들어오면 통신망을 빌려준 통신사에 내용을 전달하고 다시 답변을 받는 구조여서 단계가 복잡하다. 평일 야간이나 휴일 같은 경우 이들 별정 통신업체에 연락이 되지 않아 신원 조회마저 할 수 없어 공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경찰이 신고자의 휴대전화 가입자 정보만 알았더라도 좀 더 빨리 위치를 파악할 수 있지만, 일부 별정 통신사의 경우 업무 시간 외에는 응대 직원조차 두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 휴대전화 이용자가 생활비를 아끼려고 별정 통신사를 이용하는데, 정작 위급 상황 때 안전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선 경찰서 수사 부서에서 장기간 근무한 한 경찰관은 2일 “신고자의 신원만 파악된다면 주소지로 찾아가거나 가족, 지인에게 연락해 좀 더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하지만 별정 통신사에서 협조가 안 되면 사실상 기지국 위치값을 이용한 주변 수색밖에 방법이 없다”며 “별정통신사라 하더라도 야간이나 휴일 긴급상황에 대비해 응대 직원을 두거나 경찰, 소방 등과 비상 연락창구를 두는 등 제도적 의무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