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네이버 그냥 두고 가짜뉴스 막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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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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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해 심각해 근절하라는 공감 있지만 언론탄압 반발도 불러
단순 조작, 언론사의 부주의, 의도적 전파 일일이 구별해야
뉴스 플랫폼 장악한 대형 포털 유지하면서는 근절할 수 없어

가짜뉴스(Fake News)라는 이름의 태풍이 몰아친다. 기자 출신 국회의원이 단골 진원지로 조롱거리가 됐고, 누구보다 기자 윤리를 강조했던 언론인은 돈을 받고 쓴 인터뷰 기사를 선거 직전 보도한 혐의로 수사를 받는다. 가짜뉴스의 폐해를 참을 수 없는 지경이라 더는 두고볼 수 없다는 공감대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를 없애려는 시도는 언론 탄압이라는 반발에 직면했다. 가짜뉴스가 팬덤 정치를 타고 창궐하는데 정부가 엄한 곳에서 헛심을 쓴다는 불만도 많다. 대형 뉴스포털이 왜곡한 언론의 시장구조를 외면한 가짜뉴스 척결 시도는 성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는 거짓말로 지어낸 뉴스를 말한다. 2016년 미국 대선 직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WTOE5 TV의 보도,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을 조사하던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아내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덴버 가디언의 기사가 그렇다. 페이스북에서 트럼프 기사는 96만명, 힐러리 기사는 56만7000명이 공유했다. 하지만 WTOE5나 덴버 가디언은 존재하지 않는 언론사다. 기사 형식으로 만든 거짓말에 조작한 웹사이트 링크를 건 흑색선전이었다. 선거판을 잠시 흔들었지만 조지 W 부시가 9·11 테러를 사전에 허락했다는 말처럼 저절로 없어졌다. 아직 믿는 사람은 있으나 중요치 않다. 가짜뉴스를 이렇게 좁게 정의하면 대처는 어렵지 않다. 저급한 바이러스에는 어느 사회나 빠르게 면역력을 갖춘다.

문제는 그다음 단계다. 진짜 언론사가 가짜뉴스를 만들거나, 반대로 진짜 뉴스를 가짜로 몰아가는 경우다. 언론사의 잘못된 보도는 가짜뉴스가 아니라 오보라고 부른다. 김일성은 죽기 전 여러번 사망 기사가 나왔다. 해리 트루먼은 자신의 낙선을 보도한 신문을 들고 당선 기자회견을 했다. 정상적인 언론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는 오보를 다루는 법과 제도가 마련돼 있다. 의도하지 않은 어쩔 수 없는 오보에는 법원도 위법성 조각을 인정한다. 그러나 의도가 담긴 오보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거짓을 뉴스로 가장한 가짜뉴스에 불과한데 우리는 아직 면역력이 없다. 신뢰를 인정받은 시스템을 통해 전파되기에 위험성이 훨씬 높지만 기존 제도에는 허점이 많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히틀러는 나치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언론을 뤼겐프레세(거짓말 언론)라고 불렀다. 나치의 선전선동과 다른 기사를 내보내면 뤼겐프레세로 낙인찍고 탄압했다. 이 말을 트럼프가 가짜뉴스라고 바꿔 되살렸다. 그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사에 가짜뉴스 프레임을 씌웠다. 대통령이 돼서도 정상적인 비판 보도를 정치적으로 무마하는데 악용했다. 거칠고 비상식적이었지만 극단적 지지자에게는 효과가 컸다. 믿고 싶은 것만 사실로 받아들이는 집단에게 가짜뉴스를 판단하는 기준은 팩트가 아니라 우리 편에게 유리한가 여부였다.

우리의 언론환경은 매우 특수하다. 네이버 같은 대형 포털이 뉴스 유통시장을 장악한 구조다. 뉴스의 가격을 공짜에 가깝게 내리고 플랫폼인 지면을 광고에 할당해 수익을 올렸던 신문사의 과거 경영 방식이 올가미가 됐다. 플랫폼을 포털에 빼앗긴 뒤 “뉴스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아무리 외쳐도 독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대형 포털이 제공한 틀 안에서 점유율을 높이려는 온갖 못된 행태를 반복했다. 팩트가 검증되지 않은 속보에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클릭을 유도한다. 다른 언론의 기사를 베끼다시피 인용한다. 조회수를 위해서는 아무리 허접한 사안이라도 기사로 만든다. 독자들이 포털을 통해 접하는 뉴스의 대부분은 언론의 뉴스 검증 시스템을 건너뛴 기사다. 오보가 많고, 취재 대상의 정치적 의도를 일방적으로 반영하기 십상이다.

레거시 미디어로 불리는 언론사 대부분이 이 함정에 빠졌다. 뉴스의 홍수 속에 진짜 뉴스를 찾기 힘든 피폐한 현실이다. 가짜뉴스를 없애려면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사실을 조작해 거짓 뉴스를 만드는 유튜버와 온라인 매체를 바로잡는 것인가,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한 채 가짜뉴스 확산에 일조하는 기성 언론을 개혁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정색하고 가짜뉴스를 방송할 만큼 정치적 편향성이 심각해진 공영방송의 행태를 징계하려는 것인가. 국회에서 아무리 공청회를 열어도 가짜뉴스라는 말로 뭉뚱그려 해결하려 해서는 심각하게 왜곡된 언론환경을 바꿀 수 없다.

기자 프로필

27년 편집국 생활을 마치고 논설실에서 일합니다. 따뜻한 비판을 담은 사설과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은 칼럼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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