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아티스트 시리즈 4.
<컴퓨터 음악과 타악기> 프로그램 노트
◆ 공연 소개 ◆
2024년 더하우스콘서트 상주 음악가는 타악기 연주자 한문경입니다. 현재 중국 톈진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퍼커셔니스트로 맹활약 중인 그를 가장 처음 만난 건 하우스콘서트가 시작되었던 해인 2002년이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인 2004년, 제48회 하우스콘서트에서의 솔로 리사이틀을 통해 타악기 주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한문경은 첫 솔로 무대 이후 20년 만에 다시 하우스콘서트에 단독으로, 무엇보다 상주 음악가로서 여러분 앞에 섭니다. 일 년간 준비된 4회의 무대는 타악기의 무한한 확장성을 소개하는 동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퍼커셔니스트로서의 음악세계를 선보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2024 아티스트 시리즈 4.
<컴퓨터 음악과 타악기>
◆ PROGRAM ◆
◆ 프로그램 노트 ◆
'스네어 드럼과 컴퓨터를 위한 음악'(2007)은 세계적인 퍼커셔니스트 페드로 카네이로의 위촉에 의해 작곡되었으며, 포르투갈 포르토의 Music Viva Festival에서 카네이로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전자음악 트랙은 코트 리페가 이끄는 버팔로 대학교의 힐러 스튜디오에서 그가 IRCAM 재직 당시 개발에 참여했던 Max/Msp 프로그램을 이용해 제작되었다. 컴퓨터는 퍼커셔니스트가 연주하는 스네어 드럼 연주의 여러 매개변수를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이 정보는 프로그램의 디지털 신호 합성 및 작곡 알고리즘을 실시간으로 변화시키며, 그에 따라 컴퓨터 트랙의 출력은 마치 살아있는 앙상블 연주자의 반응과도 같이 연속적으로 변화하고 조정된다. 이처럼 연주자와 컴퓨터 사이의 관계는 두 개별 주체의 이중주와 확장된 한 개체의 독주라는 두 개의 축 사이를 끊임없이 탐험하는 유기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에드먼드 캠피온은 미국의 작곡가이자 음악 교육자이다. 전후 아방가르드 예술 사조가 종말을 고하던 1980년대에 태동한 미국 음악의 새로운 세대의 일원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그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새로운 음악 문화를 흡수하며 컴퓨터 음악을 자신의 중요 제재로 삼게 된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의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 그는 디지털 아티스트 클라우디아 하트와 함께 작업한 영상예술 작품 'Recumulations', 파리 Philharmonie de Paris에서 초연된 시청각 아티스트 커트 헨트슐라거와의 작업 'Cluster X' 등 예술간의 전통적 경계를 허무는 시도에도 적극적이다. 특히 2016년에는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을 위해 ‘Audible Numbers’를 작곡해 파리 Philharmonie de Paris에서 초연, 미국 투어를 진행하는 등 한국 전통음악에도 깊은 애정을 보인 바 있다. American Rome Prize, Lili Boulanger Prize 등의 수많은 상을 받았다.
'Losing Touch'('접촉을 잃는')는 사전 제작된 전자음악 트랙과 실연 비브라폰의 이중주이며, 기술과 조우한 인간이 그 무감각하고 초월적인 힘을 경험하는 과정을 그린다. 전자음악 트랙은 비브라폰의 녹음 샘플과 비브라폰의 음색을 닮은 다양한 소리를 조합해 생성되었으며, 연주자는 트랙의 박자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이어폰을 착용한 채 연주에 임한다. 연주자는 현실에서 틈입하는 수많은 불확정적 요소와 상호작용함과 동시에 확정된 상태인 전자음악 트랙과의 조화를 고려하며 연주에 임해야 하는 난제를 마주한다. 또한 물리적 조건에 구애받지 않아 그 어떤 고난도의 연주도 제한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컴퓨터와 달리, 연주자는 곡이 진행되며 점차 연주 가능한 신체적·심리적 한계에 봉착한다. 그 한계를 넘어서는 어느 순간 연주자는 음악과 자신 사이의 '접촉을 잃게' 되고, 잠시 협업의 희망을 가졌던 기계와 인간은 다시 서로 다른 세계의 일원으로 돌아간다.
1970년대부터 사회적·정치적 움직임에 깊이 뿌리내린 그의 작풍은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 텍스트의 발화를 통해 연주자의 즉흥적 반응을 끌어내는 시도에서 두드러진다. 대표작 '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1975)는 칠레의 동명의 민중가요에 의한 36개의 변주 모음곡으로, 점차 거칠고 복잡해지는 피아노 프레이즈와 악기를 내려치거나 뚜껑을 닫는 등의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조합해 불타오르는 혁명의 정신을 담아냈다. 'Coming Together'(1971)는 애티카 감옥 봉기 당시 사망한 한 죄수의 편지를 텍스트로 삼는다. 반복적인 펜타토닉 베이스라인과 명확히 짜인 구조 위로 여러 악기가 가벼운 자율성을 가진 채 소리를 보태는 과정을 통해 희생자의 육체성을 현현하고 그 고통을 "음악적으로 치유하는" 일에 도전한 역작이다.
'To The Earth'('대지에') 또한 생태주의적 메시지를 음악과 음성 언어의 조합으로 담아낸 두드러진 예시다. 연주자는 서로 다른 음높이를 지닌 네 개의 도자기 화분을 두드리며 <호메로스 찬가>의 일부인 '가이아 찬가'의 텍스트를 노랫말로 부른다. 풍성한 리듬적 모티프와 치밀한 변박을 바탕으로 한 전개는 텍스트 속 단어 하나하나의 발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아주 작은 생태계를 담는 그릇인 화분의 소리에 실어 지구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찬가를 통해 제프스키는 연주자와 관객, 그리고 모두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소리라는 단일한 매개로 묶어내며 상기시킨다.
앤디 아키호는 무대 위 실연의 연극성을 강조하는 작풍으로 주목받는 미국의 작곡가이자 스틸 팬 연주자이다. 올해 Sun Valley Music Festival에서 초연된 첼로 협주곡 'Nisei', 도예가 준 가네코를 기리기 위해 작곡된 'Sculptures' 등의 많은 화제작을 발표한 그는 2023-2024 시즌 오레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주 작곡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일곱 차례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자에 포함되는 등 평단의 고른 호평을 받고 있다. 대표작 중 하나인 'Ricochet'은 탁구와 퍼커션, 바이올린을 위한 삼중 협주곡으로, 탁구 경기의 타악기성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리듬감과 더불어 탁구대 위에 탁구공 더미를 쏟아붓는 등 무대의 물리적 가능성을 십분 활용하는 작곡가 특유의 재기가 돋보이는 곡이다.
'Stop Speaking'('말을 멈춰라')은 스네어 드럼과 디지털 플레이백 트랙을 위한 이중주로, 애틀란타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개최한 2011 현대 스네어 드럼 콩쿠르의 위촉작이다. 사전 제작된 디지털 플레이백 트랙은 맥북의 TTS(Text-to-Speech) 프로그램을 이용해 만들어진 기계 목소리의 내레이션을 담고 있다. '비키'라는 이름을 가진 이 목소리는 시리나 알렉사 등의 인공지능 비서를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자신과 기계, 음악, 생존에 관한 여러 문구를 말한다. 마치 기계에게 자의식이 있는 것만 같은 암시적인 대사와 오류가 발생한 것처럼 몇몇 단어들을 반복해 말하는 불규칙한 발화 리듬 사이에서는 2010년대 초반을 지배하던 신기술과 인공지능을 향한 호기심과 불안감이 엿보인다. 그 위로 연주되는 스네어 드럼은 TTS의 리듬과 음색, 높낮이 등 다양한 청각적 요소와 상호작용하며 TTS의 중립적인 목소리에 마치 청자에게 질문하거나 여러 감정을 느끼는 듯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더한다.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인 피에르 조들로프스키는 '의미'라는 개념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자신의 음악을 육체적인 층위와 심리적 층위에서의 "활성화된 과정"으로 정의하는 그는 영화와 설치미술, 공연과 연극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음악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2019년부터 폴란드 Musica Electronica Nova Festival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으며, 프랑스 IRCAM 전자음악 연구소의 부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Time and Money'('시간과 돈')은 전작 'People / Time'(2003)의 연장선상에서 작곡된 곡으로, 현대 사회 속 사람들의 자유를 옥죄는 두 축인 시간과 재화에 관한 물음을 이어간다. 곡은 짧은 비디오 시퀀스에 이은 목재 정육면체를 이용한 퍼포먼스로 시작한다. 나무토막은 컴퓨터 등의 첨단 기술과 대비되는 평범한 일상 속 객체를 상징한다. 이후 반복적인 리듬 패턴 위로 라디오와 영화의 여러 소리 샘플, 숫자와 돈을 다루는 영상 이미지가 출몰하며 자본과 대중문화의 영향 아래 놓인 두 번째 층위를 형성한다. 연주자가 퍼커션 세트에 앉은 뒤 점차 빨라지는 음악은 재화를 쫓아 끝없이 가속하는 욕망 속에서 그 어떤 짧은 시간도 헛되이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현대인의 삶의 양상을 환기한다. 'Time and Money'는 연주자에게 있어서도 고도의 집중력과 매체와의 깊은 상호작용을 요하는데, 소리와 영상, 연주자의 행동과 맥락이 복잡하게 교차하기에 이들 요소와 완벽하게 조율된 움직임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들로프스키는 이 곡으로 2015 프랑스 The Great Lyceum Prize를 수상했다.
- 정리/작성 : 박수용 (하코너 12-13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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