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 얽힌 이야기 1편은 위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트레이아크의 등장
인피니티 워드는 처음부터 액티비전의 자금 투자 하에 설립된 회사였다. 2003년 ‘콜 오브 듀티’ 발매 직후, 액티비전은 인피니티 워드의 모든 지분을 매입해 완전히 자회사로 만들었다. 경쟁자인 EA가 그랬던 것처럼, 액티비전은 인피니티 워드가 ‘콜 오브 듀티’ 메인 시리즈를 만들고 다른 액티비전의 자회사를 동원해 ‘콜 오브 듀티’ 확장팩과 가정용 게임기 버전을 만들게 했다.
이 과정에서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제작에 참여하게 된 회사가 ‘그레이 매터 인터렉티브(Gray Matter Interactive)’였다. 이 회사는 액티비전 산하에서 FPS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Return to Castle Wolfenstein, 2001)’을 만들어 호평을 들은 전력이 있었다. 그레이 매터 인터렉티브는 ‘콜 오브 듀티’의 확장팩, ‘콜 오브 듀티: 유나이티드 오펜시브(Call of Duty: United Offensive, 2004)’ 제작에 참여했다.
2005년, 그레이 매터 인터렉티브는 액티비전 산하의 또 다른 개발사와 합병한다. ‘트레이아크(Treyarch)’다. 트레이아크는 이전까지 스포츠 게임이나, 영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을 주로 만들어왔는데 그레이 매터 인터렉티브와의 합병을 계기로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주역은 당연히 인피니티 워드였고, 트레이아크는 보조에 불과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제작에 합류한 트레이아크는 ‘콜 오브 듀티 2’의 가정용 게임기 버전인 ‘콜 오브 듀티 2: 빅 레드 원(Call of Duty 2: Big Red One, 2005)’ 개발을 담당했다. ‘빅 레드 원’은 인피니티 워드가 만든 ‘콜 오브 듀티 2’ PC판/Xbox판 원작에 누가 되지는 않을 정도의 그럭저럭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2006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 전시회에서 액티비전은 폭탄 선언을 한다. ‘콜 오브 듀티 2’의 정식 후속작인 ‘콜 오브 듀티 3’는 인피니티 워드가 아닌 트레이아크가 제작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여기에 ‘콜 오브 듀티 3’은 그 동안 PC판이 먼저 나오고, 가정용 게임기 판이 나오던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관례(?)를 깨고 가정용 게임기로 먼저 발매하겠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많은 게이머가 어리둥절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메인이던 PC판보다 가정용 게임기판이 먼저 나온다는 이야기도 그랬지만, 도대체 트레이아크가 뭐하는 회사인데 인피니티 워드 대신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맡아 내놓는지에 대한 의문도 컸다. 인피니티 워드가 대체 뭘 하길래 정식 시리즈를 남의 손에 맡기는지에 대한 논쟁도 함께 오갔다.
게다가 ‘콜 오브 듀티 3’은 정말 ‘초고속’으로 만들어져 발매되었다. 2006년 5월 첫 공개 당시부터 액티비전은 2006년 연내 발매를 공언하고 있었고, 그 해 11월 출시되었다. 인피니티 워드가 아닌 듣도 보도 못한 회사가 만들었고, 정식 공개부터 발매까지 반년이라는 엄청난 개발 속도에, 가정용 게임기로 먼저 나온 ‘콜 오브 듀티 3’에 골수팬들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막상 나온 ‘콜 오브 듀티 3’은 이전에 그레이 매터 인터렉티브와 트레이아크가 만들었던 ‘콜 오브 듀티’ 시리즈 확장팩들이 그랬던 것처럼 괜찮은 수준이었다. 트레이아크는 가장 합리적이고 안전한 방법을 선택했다. 이전까지 인피니티 워드가 만들었던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정석을 그대로 따라갔다. 멀티플레이에 ‘클래스’ 개념을 도입했고, 사운드 부분이 크게 강화된 정도가 이전 ‘콜 오브 듀티’ 시리즈와의 차별점이었다.
하지만 ‘콜 오브 듀티 3’은 나쁘지 않은 평가와 그럭저럭 평타는 친 판매량에 비해 게이머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 팬의 상당수는 PC플랫폼에 남아 있었고, 이들에게 PC로 나오지 않은 ‘콜 오브 듀티 3’은 없는 게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전 ‘콜 오브 듀티’ 시리즈와 큰 차별점은 없는 ‘안전빵’이라는 사실도 썩 매력적인 부분은 아니었다. 모두의 의문은 이제 하나였다. 대체 인피니티 워드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컨셉을 뒤엎다
트레이아크가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땜빵하고 있는 사이, 인피니티 워드는 물밑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인피니티 워드의 작업은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액티비전의 소수 관계자를 제외하면 인피니티 워드 외부에서 작업의 정확한 내용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협력관계인 트레이아크도 인피니티 워드가 무엇을 만드는지 알지 못한 채 ‘콜 오브 듀티 3’을 만들었다.
인피니티 워드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뒤엎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피니티 워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FPS로 흥한 회사였지만, ‘콜 오브 듀티 2’ 흥행 시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더 이상 우려먹을 것이 없는 소재처럼 보였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역사적인 전투를 게임 내에서 잘 연출해 호평을 받았지만, 역사적 정확성 – 고증 – 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제2차 세계대전은 순식간에 낡은 소재가 될 것이 뻔했다.
게다가 아직 눈을 시뻘겋게 뜨고 살아있던 라이벌 브랜드, EA의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를 완전히 따돌리려면 기존 ‘콜 오브 듀티’와는 완전히 다른 소재가 필요했다. 인피니티 워드가 찾은 해결책은 급진적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인 바로 지금,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한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의 FPS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의 시작이다.
‘콜 오브 듀티 4’는 이미 ‘콜 오브 듀티 2’ 완성 직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인피니티 워드는 진작부터 ‘콜 오브 듀티 4’에 올인하기로 결정한 상태였고, 그렇다고 한창 뜨고 있는 ‘콜 오브 듀티’ 브랜드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므로 트레이아크가 ‘콜 오브 듀티 3’ 제작에 투입되었다. 본 시리즈까지 다른 회사에 맡길 만큼 인피니티 워드는 ‘콜 오브 듀티 4’에 많은 공을 기울였다.
인피니티 워드의 개발진은 ‘콜 오브 듀티 4’ 개발 과정에서 스토리를 신중하게 써 나가야 했다. 실존하는 테러 조직을 굳이 게임에 등장시켜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서도 안됐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상상력을 발휘해 현실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적이 등장해서도 안됐다. 그러면서도 기존 ‘콜 오브 듀티’의 매력인 현실감 있는 전장을 게임에 구현해 내야 했다. 어려운 일이었다.
‘콜 오브 듀티 4’ 개발에 앞서 인피니티 워드의 핵심 개발자들은 미 해병대 훈련소에 입소해 실탄 사격 훈련을 체험했다. M1 에이브람스 전차와 합동 작전을 벌이는 보병이 포를 발사할 때 전차 근처에 서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직접 체험했다. (개발진의 이 체험은 ‘콜 오브 듀티 4’에 그대로 반영된다) 이외에도 실전에 참여한 미 해병대원을 직접 인터뷰해 전투 상황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다. 게임 속 인물의 동작을 자연스럽게 구현하기 위해 제대 군인을 고용해 모션캡쳐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모두 게임에 생동감을 부여하려는 노력이었다.
또 하나의 도전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게임 엔진의 향상이었다. 더 실감나는 ‘콜 오브 듀티 4’의 전장을 위해 인피니티 워드는 기존에 사용하던 IW 엔진을 한단계 개량해야 했다. 광원효과, 각종 특수효과를 위한 동적 물리엔진이 엔진에 추가되었고, 가정용 게임기 버전에도 해상도만 낮춘 동일한 엔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했다. 엔진을 완전히 갈아엎다시피 하는 작업이었다.
마지막으로 FPS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멀티플레이 강화도 이루어졌다. 인피니티 워드는 ‘콜 오브 듀티 4’에서 연속으로 적을 처치하면 특별한 보상을 사용할 수 있는 ‘킬 스트릭(Kill Streak)’ 도입과, 비교적 좁고 엄폐물이 적은 맵에 게이머를 한 데 몰아넣어 숨 쉴 틈 없이 격렬한 멀티플레이 전장을 구현하려 애썼다.
오랜 기간이 걸렸지만 개발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2007년 4월 말,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의 첫 동영상이 공개되었고, 11월 예정대로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가 발매되었다. ‘콜 오브 듀티 2’ 이후 2년만의 귀환(?)이었다. 새로운 ‘콜 오브 듀티’에 과연 게이머가 열광해 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한 매체를 선호하는 팬들은 그것만 즐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존 ‘콜 오브 듀티’의 팬들이 떨어져 나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모든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였다. 게이머와 게임언론이 모두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에 극찬을 보냈다. ‘FPS 게임에서 현대전을 이렇게까지 묘사할 줄은 몰랐다’는 평가는 과장이 아니었다. 충격적인 오프닝, ‘선이 굵은’ 캐릭터들과 캠페인 내내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는 혁명적인 방식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그 때까지 나온 FPS 중 가장 몰입감이 뛰어난 싱글플레이로 평가받았다.
더 이상 PC판과 가정용 게임기판을 나눠 내지 않고 한 번에 내는 전략도 잘 먹혀 들어갔다. 북미 게이머들은 가정용 게임기에서 즐길 수 있는 대작 FPS 게임에 굶주려 있었다. 게다가 ‘엑스박스360’이나 ‘플레이스테이션3’ 같은 가정용 게임기에서 멀티플레이가 한창 뜨던 시절이었고,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는 그런 가려운 등을 정확히 긁어주며 등장했다.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는 역대 최고의 성공이었다. 발매 6개월동안 전 세계에서 700만장이 팔려 나갔고, 2008년 6월 액티비전은 ‘콜 오브 듀티 4’ 1천만장 판매를 발표했다. 흥행과 평가를 모두 휘어잡으며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는 게임 역사에 최고의 FPS 게임으로 그 이름을 남겼다.
성공가도의 이면에서 싹트기 시작한 불화와 ‘월드 앳 워’
한편,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 출시 다음해인 2008년, 액티비전은 ‘콜 오브 듀티’의 새로운 시리즈를 발표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콜 오브 듀티 4’를 계기로 완전히 현대전으로 전향한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Call of Duty: World at War)’라는 이름의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신작을 2008년 가을 출시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번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는 인피니티 워드가 아닌 트레이아크 개발이었다. 이 ‘월드 앳 워’는 트레이아크와 인피니티 워드 사이에 흐르던 미묘한 기류의 결과물이었다. 인피니티 워드는 ‘콜 오브 듀티 4’ 개발 과정에서 다른 액티비전 계열사와 IW 엔진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았고, ‘콜 오브 듀티 4’가 개발되는 동안 트레이아크는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한 채 무작정 제2차 세계대전을 기반으로 한 FPS 기획에 들어간 상태였다.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가 발표된 후에야 트레이아크는 인피니티 워드에서 현대전을 배경으로 한 ‘콜 오브 듀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콜 오브 듀티’를 만들고 있는 상태에서 중간에 기획을 전면적으로 바꾸긴 너무 늦은 상태였다. 게다가 인피니티 워드는 트레이아크에 대해 묘하게 싫어하는 기색을 그것도 꾸준히 내비치고 있었다.
본래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는 ‘콜 오브 듀티 5’로 알려졌다. 계보로만 따져도 정식 시리즈인 ‘콜 오브 듀티 3’의 후속작으로 기획되었으니 엄연히 정규 시리즈였고, ‘콜 오브 듀티 5’라는 이름을 받을 자격은 충분했다. 그러나 인피니티 워드는 트레이아크의 게임이 ‘콜 오브 듀티 5’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미묘한 (사실상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결국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라는 이름이 되었다.
인피니티 워드의 불쾌감에는 나름 이유가 있긴 했다. 기껏 ‘콜 오브 듀티 4’라는 이름으로 현대전을 선보였는데, ‘콜 오브 듀티 5’라는 이름으로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을 선보인다면 혼란을 줄 수 있었다. 인피니티 워드는 장기적으로 ‘콜 오브 듀티’라는 이름 뒤에 붙던 숫자를 떼어버릴 생각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여기에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진짜 주인은 인피니티 워드 자신들이고, 트레이아크는 어디까지나 땜빵에 불과하다는 일종의 자존심 문제도 걸려 있었다. 결국 트레이아크는 같은 모회사 밑에 있는 ‘동료’가 아니라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 있어서는 인피니티 워드의 말을 들어야 하는 하청 취급이었다. 트레이아크에는 인피니티 워드가 만든 IW 엔진과 기술 지원 외에는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았다.
이런 미묘한 기류에도 불구하고 트레이아크는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를 예정대로 완성해 냈다. 이전까지 유럽 전선만 다루던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서 벗어나, 태평양 전쟁과 유럽 전선을 교차하는 방식의 게임 진행을 싱글플레이에 도입했다. 영화 같은 멋진 연출이 우선이던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서 탈피해 ‘월드 앳 워’는 전장의 잔인함도 함께 묘사하며 충격을 주었다.
피바다가 된 분수대에 가득 쌓여 있는 소련군 시체, 살아있는 부상병을 확인 사살하는 독일군의 모습, 미군 포로를 잔인하게 참수하는 일본군의 잔혹함과 비무장 포로로 위장해 있다가 수류탄으로 자폭하려는 일본군의 비열함, 무모한 반자이 돌격을 벌이는 일본군을 화염방사기로 잘 구워 버리는 미군의 모습까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에서 벌어진 잔혹함을 정말 여과없이 그려내려 애쓴 모습이 역력했다.
캠페인 내내 유럽 전선과 태평양 전쟁을 오가며 전쟁의 잔혹함을 드러내는 연출이 어우러진 싱글플레이는 비록 새로울 것은 없지만 충분히 몰입감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콜 오브 듀티 4’에 사용된 IW 엔진을 충분히 활용해 그래픽 면에서도 ‘콜 오브 듀티 3’에 비하면 큰 발전이 있었다. 다만 ‘콜 오브 듀티4’를 지나치게 의식한 ‘월드 앳 워’의 멀티플레이는 영 어색한 모습을 지울 수 없었다. 오히려 멀티플레이를 장난스럽게 활용한 ‘좀비모드’가 훨씬 더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콜 오브 듀티 4’를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 게임은 한 물 갔다’는 평가가 돌던 터라 ‘월드 앳 워’도 썩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리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렇지만 ‘월드 앳 워’는 흥행면에서 ‘콜 오브 듀티 4’처럼 폭발적인 흥행까지는 아니지만, 꾸준히 팔려 나가며 이후 5년여동안 15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상 최고의 성공과 사회적 논쟁을 동시에 부른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2’
‘월드 앳 워’의 출시로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활용한 액티비전의 전략은 명확 해졌다. 인피니티 워드가 2년마다 ‘콜 오브 듀티’ 메인 시리즈를 출시하고, 트레이아크가 그 간격마다 ‘콜 오브 듀티’의 외전에 해당하는 게임을 꾸준히 출시해 공백을 메꾸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에 따르면 인피니티 워드는 2009년 새로운 ‘콜 오브 듀티’를 내놓을 차례였다.
액티비전은 당초 이 게임을 공개할 당시에는 ‘콜 오브 듀티 6’이라는 이름의 게임이 제작 중이라고 발표했지만, 결국 ‘월드 앳 워’와 마찬가지로 제목에서 6은 빠지고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2’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모던 워페어2’는 전작의 스토리를 잇는 속편으로 출발했다.
러시아 국수주의자와 중동의 테러리스트가 손을 잡고 일을 벌이던 ‘모던 워페어’의 스케일은 이제 ‘모던 워페어2’에서 러시아와 미국이 전면전을 벌이는 제3차 세계대전까지 확대되었다. 러시아 공수부대가 미국에 강하하고, 수도인 워싱턴 D.C. 에서도 러시아군과 미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여기에 사회적 논쟁을 부를 만한 임무까지 끼어 있었다. ‘No Russian’ 미션이다.
2009년 11월 ‘모던 워페어2’ 발매와 함께 ‘No Russian’ 미션은 엄청난 논쟁거리가 되었다. 인피니티 워드는 ‘모던 워페어2’를 위해 게임 엔진을 다시 한 번 개량하고, 사운드를 크게 강화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모던 워페어2’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어 준 것은 ‘No Russian’ 미션이었다. 게이머가 테러리스트의 입장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해야 하는 미션 내용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왔다.
인피니티 워드는 ‘No Russian’에 대해 게임의 극적인 흐름을 위해 넣은 미션이며, 게임 내에서 이 미션을 플레이하지 않아도 스토리 진행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계속되었다. 특히 ‘No Russian’ 미션의 배경인 러시아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높았다. 액티비전은 ‘No Russian’ 미션을 삭제한 ‘모던 워페어2’ 러시아어판을 내놓았고, 독일과 일본에서도 ‘모던 워페어2’의 ‘No Russian’ 미션 때문에 일부 컨텐츠가 삭제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모던 워페어2’는 전작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뒀다. 북미와 영국에서 단 하루만에 470만장이 팔려 나갔고, 단 하루동안 기록한 매출은 3억달러가 넘었다. 게임은 물론 영화를 포함한 다른 매체와 비교해도 역사상 가장 큰 성공으로 꼽혔다. 액티비전은 2010년 6월 ‘모던 워페어2’가 2천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음을 발표했다.
평가 면에서도 전작의 명성을 그대로 잇는 성과를 거뒀다. 테러리스트의 농간으로 러시아가 미국을 침공하며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진다는 ‘모던 워페어2’의 스케일은 현실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게임 내에서는 그런 현실성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을 정도의 연출로 게이머를 압도했다. 여전히 ‘새로운 것’은 없지만, 오히려 싱글플레이가 너무 짧아서 아쉽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멀티플레이 면에서도 ‘모던 워페어2’는 마찬가지로 성공을 거뒀다. 밸런스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져 나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던 워페어2’의 멀티플레이는 북미와 유럽 특히 가정용 게임기로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멀티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유료 이용권인 ‘Xbox360’ 엑스박스 라이브 골드 패스와 함께 필수로 구입해야 하는 게임 목록에 한동안 올라 있었다.
최고의 영광 뒤에서 불거져 나오는 갈등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콜 오브 듀티4: 모던 워페어’와 ‘모던 워페어2’의 연 이은 흥행으로 영광의 정점에 올랐다. 모회사인 액티비전의 매출을 책임지는 ‘기둥’의 위치는 물론이었고, 게이머가 ‘아무 생각 없이’ 구입해도 어지간하면 후회하지 않을 걸작 게임의 반열까지 올랐다. 특정 무기와 능력(Perk)이 밸런스를 망친다는 불만 정도는 아직까지는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슬슬 DLC 장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액티비전의 상술도 아직은 애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콜 오브 듀티’ 영광의 정점 이면에는 이후 ‘콜 오브 듀티’ 브랜드에 혼란을 가져올 치명적인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 인피니티 워드에게 부외자 취급을 받던 트레이아크는 내심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고, 인피니티 워드의 잇따른 성공에 도취된 몇몇 핵심 개발자들은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 ‘모던 워페어’ 연대기의 화려한 마무리를 지어야 할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3’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게임역사를 뒤흔든 풍운아들'에서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비밀글'로 댓글을 달아주세요. '게임역사를 뒤흔든 풍운아들'은 매주 토요일 네이버 모바일 '게임' 페이지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