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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빚어낸 네 가지 힘 (2/2)

2022.10.04. 오후 2:25
by 김항배

네 가지 근본적인 힘은 제각각의 역할을 하며 서로 협력해서 현재 우주의 모습을 빚어냈다. 우주의 역사에서 네 가지 힘이 각각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겠다.

중력은 우주의 변화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우주의 변화는 큰 거리 규모에서 변화 양상과 작은 거리 규모에서 변화 양상이 다르다. 여기서 작은 거리 규모란 은하단, 초은하단 등 우주 거대구조 (~수억 광년) 규모를 말하며 현재 볼 수 있는 우주의 크기 (~930억 광년) 규모에 비해서 충분히 작다는 의미다. 이는 큰 거리 규모에서는 물질 분포가 평균적으로 균일하고 작은 거리 규모에서는 다양한 규모의 우주 거대구조들이 형성돼 있는 모습과 연결된다. 우주는 큰 거리 규모에서는 균일함을 유지하며 팽창하고 있고, 작은 거리 규모에서는 물질의 밀도 요동이 증폭되어 구조들이 생겨났다. 이 두 다른 측면의 변화를 이끄는 힘은 모두 중력이다. 일반상대성에 따르면 균일한 물질 분포는 공간을 균일하게 팽창시킨다. 한편 작은 거리 규모에서는 물질이 밀집된 영역은 상대적으로 더 센 중력을 작용해 주변의 물질을 끌어당겨 더욱 밀집되고 물질이 희박한 영역은 더 희박해져서 밀도 요동이 계속 커지고, 충분히 밀집이 일어난 영역에는 구조들이 나타난다.

한 장의 그림으로 보는 우주의 역사

우주의 팽창은 초기 우주를 지배하는 복사 상태 물질의 온도를 내림으로써 물질의 상태변화를 유발한다. 균일하게 분포한 물질이 중력을 발휘하여 스스로 변화의 동인을 만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열평형 깨짐이 발생해서 훗날 우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을 우주 역사의 유물로 남을 수 있게 한다. 물질의 열평형이 깨진 적이 없이 계속 유지됐다면 현재의 우주는 가장 가벼운 입자인 광자와 중성미자의 복사만 남아서 아무런 구조와 복잡계의 출현이 없는 재미없는 우주가 됐을 것이다. 팽창과 열평형 깨짐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물은 바리온(원자)과 암흑물질이다. 이 둘은 압력 없는 물질로서 어느 시점에서 팽창으로 인해 에너지밀도가 더 빠르게 떨어진 복사의 우주 지배를 끝내고 물질 지배 시대를 연다. 물질 지배 시대에 태초의 작은 밀도 요동이 중력의 작용으로 증폭되어 우주 구조가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바리온은 별, 행성, 생명체 등 복잡계를 구성하는 재료가 됐고, 암흑물질은 바리온이 훗날 그런 복잡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충분히 밀집시키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바리온과 암흑물질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으로 남겨졌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는 현재 우주론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각각 바리온창조 문제, 암흑물질 문제로 불린다. 이 과정에는 암흑물질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다른 물질이나 네 가지 힘 이외의 아직 알려지지 않은 다른 힘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중력은 우주의 진화 과정에서 넓은 범위에 흩어져 있던 물질을 뭉쳐서 별과 행성을 만듦으로써 강력과 전자기력이 자신의 역할을 펼칠 수 있는 물질세계를 만들어냈다. 별과 은하 등 구조의 형성은 복잡계가 형성될 수 있는 두 가지 조건인 물질의 밀집과 에너지의 흐름을 만들었다. 현재 우주의 평균 에너지밀도는 1m^3당 양성자 6개 정도이고, 그중 원자는 5%로 평균밀도는 1m^3당 양성자 0.3개다. 별과 행성, 우리 몸의 밀도는 대략 1m^3당 양성자 10^30개 (~1g/cm^3) 정도이므로 우주 평균밀도의 10^30배이다. 우리가 존재하려면 원자의 엄청난 밀집이 필요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복잡계가 자신의 엔트로피는 증가시키지 않고 지속해서 기능을 수행하려면 외부로부터 에너지가 공급돼야 한다. 별은 중심부에서 진행되는 핵융합 반응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복사 에너지로 우주에 내보내서 에너지의 흐름을 만든다. 핵융합의 연료인 양성자 역시 우주 역사의 유물로 남겨진 것이다. 별 주변의 행성에는 별이 만든 에너지의 흐름을 활용하는 고도의 복잡계들이 생겨났다. 별의 존재로 인해 우주는 재미있는 일로 가득 차게 됐다.

별과 행성은 우주가 만든 최고의 예술품이다. 별이 내뿜는 빛은 우주를 밝히고 에너지의 흐름을 만든다. 행성은 별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취해 고도의 복잡계를 형성한다. 그중에는 외부에서 에너지와 물질을 끌어와 자기복제를 하는 복잡계인 생명체가 있다. 별은 또한 생명체의 재료가 되는 다양한 원소들을 만들어서 우주에 공급한다. 별이 등장하기 전의 우주에는 수소와 헬륨만 있었다. 하지만 생명체의 작동에는 탄소, 질소, 산소뿐만 아니라 더 무거운 원소인 인, 철, 아이오다인 등도 필요하다. 별의 일생은 질량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이런 별의 다양성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무거운 별은 길지 않은 일생을 살면서 중심부의 핵융합 과정을 통해 헬륨에서 철에 이르는 안정된 원소들을 합성한다. 중심부의 핵연료가 소진되면 최후의 과정에서 강력한 초신성 폭발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철보다 무거운 원소와 별 중심부의 핵융합 반응에서는 만들어지지 않는 중간 원소들이 합성된다. 강력한 폭발은 합성된 무거운 원소들을 우주에 다시 흩어놓는다. 이렇게 흩어진 초신성의 잔해에서 새로운 별이 탄생하는 과정이 반복됨에 따라 그 별에 딸린 행성에는 무거운 원소들이 충분히 축적되어 생명의 탄생이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가벼운 별은 긴 일생을 살면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주변에 에너지를 공급함으로써 긴 진화의 기간이 필요한 우리 같은 생명체가 생겨날 수 있도록 한다.

원자들이 뭉쳐서 핵융합을 통해 빛을 내는 별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네 가지 힘의 협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별의 형성은 거대한 기체와 먼지구름이 자체 중력에 의해 뭉치면서 시작된다. 중력에 의해 물질이 더 작은 크기로 밀집되는 과정을 중력수축이라 한다. 중력수축으로 물질이 밀집되는 과정에서 대개는 압력이 발생해서 중력수축에 저항한다. 물질의 압력은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평균 운동에너지와 연결된다. 빠르게 움직이는 입자들은 충돌을 통해서 입자들을 더 넓은 영역으로 흩어지게 한다. 중력수축이 일어나서 기체와 먼지구름이 더 작은 영역으로 모여들면 중력 퍼텐셜에너지는 줄어들므로 에너지보존법칙에 따라 그만큼 입자들의 운동에너지가 커져서 압력도 그에 따라 커진다. 따라서 단순히 중력수축만 일어나서는 에너지보존법칙에 의해 작게 수축하는 데 한계가 있다.

더 작은 크기로 중력수축이 되려면 에너지를 방출해서 전체 에너지를 줄여야 한다. 별의 형성 과정에서 에너지 방출은 전자기력의 활약으로 일어난다. 중력수축으로 운동에너지를 얻어 뜨거워진 기체와 먼지 속의 원자들은 핵과 전자로 분해되어 서로 충돌하면서 전자기력의 작용으로 외부로 빛(복사)을 방출하게 되고, 그 에너지만큼 전체 에너지는 줄어든다. 에너지를 방출해서 중력수축을 이어가면 수축으로 줄어든 중력 퍼텐셜에너지만큼 운동에너지가 늘어나는데 이중 절반만 빛으로 방출되고 나머지 절반은 퍼텐셜에너지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운동에너지로 남아서 수축이 진행될수록 온도와 압력이 계속 올라간다. 온도가 올라가면 빛으로 방출되는 에너지가 늘어나서 중력수축은 가속된다. (이렇게 중력수축을 하는 원자들은 외부로 에너지를 방출할수록 온도는 올라가는 독특한 성질을 가졌기에 비열이 음의 값이 된다.) 만약 빛을 통해 에너지를 방출해서 중력수축이 지속되는 상황이 다른 무엇인가의 작용으로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 무한히 수축해 블랙홀이 돼버릴 것이다. 중력수축이 지속되는 상황을 멈추고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빛을 내는 진정한 별이 될 수 있는 것은 전자기력, 약력, 강력의 협력으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 때문이다.

중력수축으로 중심부 온도가 계속 올라가다 어느 임계점을 넘으면 양성자를 재료로 헬륨을 합성하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핵융합이 시작되려면 높은 에너지 장벽을 넘어가야 하는데, 중력수축으로 온도가 높아져서, 즉 입자들의 운동에너지가 커져서 에너지 장벽을 넘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핵융합은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 모두 작용하는 과정이다. 강력과 전자기력은 양성자와 중성자를 묶어서 핵을 만드는데 직접 작용하는 힘이다. 양성자와 중성자 구별 없이 모두 묶어 놓으려는 강력과 양성자를 서로 떼어 놓으려는 전자기력이 서로 경쟁한다. 약력은 양성자와 중성자를 서로 변환해주는 유일한 상호작용이다. 양성자 4개가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로 구성된 헬륨 핵이 되려면 양성자 2개가 중성자 2개로 변환돼야 한다. 따라서 약력의 작용이 있어야만 헬륨 핵합성이 가능하며, 그 결과로 별은 빛(광자)뿐만 아니라 약 상호작용의 결과물인 중성미자를 방출한다.

이제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의 모습을 살펴보자. 지구는 태양에서 오는 복사 에너지와 지구 내부에서 오는 열에너지를 활용하여 지각과 대기의 순환구조들을 유지하면서 생명체가 탄생하고 진화하는 환경을 제공했다. 현재 지구의 모습은 중력과 전자기력의 조화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중력은 지구의 모습을 구로 만들었다. 또한 중력은 내부의 열이 맨틀의 대류를 일으키도록 하고, 맨틀의 대류는 지각판의 이동을 일으켜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태양에서 온 복사 에너지는 대기와 해양의 순환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생명체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이런 변화와 그에 따른 에너지의 흐름이 생명체라는 복잡계가 탄생하고 진화하는 일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물론 지구라는 틀 안에서 일어나는 물질 변화의 세세한 과정을 다듬는 작업은 원자들의 화학반응을 지배하는 전자기력의 역할이다. 태양이라는 별에 딸린 지구라는 행성에 우리가 존재함은 네 가지 힘의 협력으로 끊임없이 변해온 우주 역사의 결과물이다.

우주의 거대함은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사는 우리의 존재를 티끌같이 미미하게 보이도록 만들지만, 우주에서 우리가 존재함은 이렇듯 수많은 우주적 우연과 필연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직조해낸 경이로운 결과이다.

김항배, 한양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입자천체물리학과 우주론을 연구하며, 저서로 <우주, 시공간과 물질>, <태양계가 200쪽의 책이라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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