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보내며
배우 유주혜가 보내는 씩씩하고 다정한 편지.
editor 이윤슬 photographer 김진호
꿈 많고 감수성 풍부한 소녀 제루샤와 그의 꿈을 묵묵하게 지원해 주는 키다리 아저씨 이야기.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동명의 원작 소설이 갖고 있는 서정적인 감성과 서간체의 형식을 그대로 무대로 옮겨와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지난 시즌 당차고 사랑스러운 제루샤로 관객들에게 따뜻함을 불어넣어 주었던 유주혜가 4년 만에 돌아온 <키다리 아저씨>에서 다시 한번 제루샤를 연기한다. 제루샤가 보내는 편지에는 꿈과 사랑, 성장과 행복의 비밀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유주혜의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오랜만에 <키다리 아저씨>의 제루샤를 연기합니다. 기분이 어떤가요.
처음 <키다리 아저씨>를 했을 때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 게 감회가 새로워요. 이제 나이가 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루샤를 다시 연기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고 감사해요.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큽니다.
같은 캐릭터, 작품이어도 시간이 꽤 흘러서 새롭게 감각되는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제루샤가 낙천적이고 사랑이 많은 멋진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다시 마주해 보니 이 친구의 아픔이나 결핍이 더 깊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많은 상처를 딛고 성장한 아이라는 생각이 새삼 크게 다가왔어요.
<키다리 아저씨>는 원작 소설의 문학성을 잘 살린 작품이라는 평이 많아요. 책으로 접한 감상도 궁금해요.
읽는데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나오는 책이었어요. 제루샤가 너무 기특하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하면서 실소가 터져 나오다가 또 책장을 넘기면 ‘어쩌면 좋아, 너무 안타깝다’는 마음에 눈물이 났어요. 생동감이 넘치는 책이었달까요.
가장 마음에 남는 부분은 어디였어요?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도 올렸는데, “아저씨의 병아리는 단호한 울음 소리와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열정적인 암탉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고르고 싶어요. 그냥 ‘저 지금 잘 크고 있어요.’라고 얘기하지 않고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제루샤도 너무 멋지고, 저도 제 첫 제루샤보다 이번 제루샤를 더 업그레이드시켜서 멋진 암탉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의 문장들을 극에 녹여낸 작품이다 보니 대사가 방대하기로도 유명해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생각이 하나도 안 날줄 알았는데, 막상 다시 외워서 동선이랑 같이 맞춰 보니 생각보다 몸에 많이 붙어있더라고요. ‘4년 전의 내가 허투루 하지 않았구나, 나 정말 최선을 다했네!’하고 스스로에게 칭찬해 줬어요. 저번에는 두려움이 앞섰는데, 지금은 재미있게 연습하고 있어요. 연습실 분위기도 너무 좋고요.
이번 시즌에서 유일하게 <키다리 아저씨>를 해 본 ‘경력직’이기도 합니다. 함께 하는 배우들에게 해준 조언이 있을까요.
민제(장민제 분)가 “언니, 이거 어떻게 외웠어요?” 물어보길래 “그 대사는 여기서 이런 연상을 하면 쉽게 외워져.”하고 알려줬어요. 동선에 맞춰서 대사의 단락을 나눈다든지, 형용사가 많은 대사는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외운다든지 꿀팁이 있다면 다 알려주고 있습니다.
유주혜 배우에게 다들 많이 의지하겠어요.
제가 더 많이 의지하고 있는걸요.(웃음) 어려운 부분은 서로 도와가며 작업하고 있어요.
이번 시즌 제루샤를 표현하기 위해 특히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요.
대본 안에, 책 속에 있는 제루샤를 더 잘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뒤에 대사로도 나오지만, 이 친구가 고아로 자라서 “우리 부모는 끔찍한 사람들이었을지도 몰라.” 같은 이야기를 해요. 그렇게까지 속내를 얘기한 적 없던 제루샤가 그 이야기를 꺼냈다는 건 항상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잖아요. 애정 결핍도 당연히 있었을 거고요. 사랑을 많이 받는 캐릭터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듯 제루샤에게도 부족한 점이 있어요. 그런 인간적인 면모를 솔직하게 관객들에게 열어 보여드리고 맞닥뜨려 보자는 마음이 있어요.
유주혜와 제루샤가 가진 공통점이 있을까요.
20대 때 제 모습을 떠올려 보면 제루샤랑 많이 닮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남들에게 안 좋은 모습 보여주는 게 싫어서 항상 씩씩하고, 당당하고, 털털하게 행동하려고 애썼어요. 억지로라도 ‘나는 행복해, 기분이 좋아!’라고 되뇌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마냥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이제는 내 진짜 감정과 느낌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다른 부분도 있어요?
제루샤가 저보다 똑똑하죠.(웃음) 그렇게 재치 있고 문학적인 표현을 쓰는 데서는 훨씬 우수한 것 같아요. 자기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이렇게 글로 잘 표현하는지, 머리가 탁 쳐질 정도로 너무 대단하고 멋있어요.
보통 인물을 해석할 때 본인과 닮은 부분부터 찾아가는 편인가요?
네, 닮은 점을 먼저 발견하는 편이에요. 비슷한 부분을 따라가다가 다른 부분이 있으면 왜 다른지 그 인물의 배경을 살피게 되죠. 그렇게 인물이 살아온 궤적을 살펴보면서 이해를 넓혀가요.
2인극이다 보니 호흡도 무척 중요하잖아요. 새로 합류한 제르비스들은 어떤가요.
생각보다 다들 너무 잘 어울려서 완성된 무대 위의 모습이 정말 기대돼요. 다른 것보다 세 오빠들이 이 작품을 정말 사랑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같이 대사 읽다가도 “와, 이 대사는 너무 좋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있냐!” 감탄을 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제가 이 작품의 주인도 아닌데 먼저 했던 사람으로서, 이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오빠들이 애정을 쏟는 만큼 얼마나 멋진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돼요.
제루샤가 제르비스에게 쓰는 편지로 작품이 진행돼요. 편지 속 어떤 문장이 가장 와닿아요?
매번 달라요. 요즘은 다들 좋아하시는 “모든 행동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는 거죠.”라는 문장이 참 좋은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받아본 편지 중에 기억에 남는 편지가 있다면요.
아무래도 공연 끝나고 관객분들이 주시는 편지들이죠. 읽다가 감사한 마음에 울컥해서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아요.
그럼 스스로에게 편지를 쓴다면 뭐라고 쓰고 싶어요? 언젠가 펼쳐 볼 자신에게 편지를 남겨볼까요.
‘주혜야’로 시작하겠죠? 주혜야, 넌 지금 <키다리 아저씨>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 나이 때문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은 모르는 거니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퍼해야 해. 현재의 감정을 부정하지 말고 잘 느끼면서 계속 성장하길 바라. 너를 믿어, 주혜야. 이렇게 쓰면 되지 않을까요?(웃음)
어딘가에서 “난생처음 제루샤 애봇이라는 아이와 조용히 대화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제루샤를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라는 대사를 좋아하는 대사로 꼽은 걸 봤어요.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나요.
정말 많이 가져요. 이유도 모르게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제 자신에게 그 이유를 집요하게 물어봐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가다 보면 결국 실마리를 찾게 돼요. 보통 ‘아, 생각보다 별게 아니었네. 그렇게까지 기분 나빠 할 일이 아니었어.’하는 결론에 도달하죠.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고, 나이가 들면서 저만의 건강한 방법을 찾은 것 같아요.
<키다리 아저씨>를 이야기할 때 ‘성장’을 빼놓을 수 없어요. 제루샤는 성장하며 제르비스까지 변화시키죠. 제루샤가 제르비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유주혜 배우를 성장시키는 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을까요.
제가 얼마 전에 결혼을 했는데, 아무래도 남편이 아닐까 싶어요. 8년 정도 굉장히 오랜 시간 만났거든요. 연애를 하다 보면 감정의 밑바닥까지 보게 되는데,(웃음) 그 과정에서 제 여러 모습을 발견했죠. 제가 가진 사랑도 찾게 되면서 많이 성장했어요. 좋은 반려자를 만났죠.
살면서 ‘성장했다’고 체감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어떤 순간들일까요.
배우로서 유주혜가 성장했음을 느끼는 순간은 작품을 보는 시각이 깊어졌을 때죠. 작품을 더 디테일 하게 보게 될 때, 더 큰 숲을 볼 수 있게 됐을 때 스스로 많이 컸다고 느껴요. 그리고 주변 친구들, 동료들, 팬분들이 인정해 주실 때 배우로서 참 잘해온 것 같죠. 인간 유주혜로서는 가족들을 만날 때 많이 성장했다고 느껴요. 예전에는 틱틱거리기도 했는데 요즘엔 어른이 되어가는지 참 애틋하기도 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해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하죠.
데뷔 이후로 많은 작품을 해왔는데, 그중 배우 유주혜를 성장시켜 준 작품을 꼽아본다면요.
확실히 어려운 작품이 배우의 성장을 도와요. 지난번에 <키다리 아저씨>를 하고 이것보다 어려운 작품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있더라고요. 1인극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도 그랬고, 노래 실력을 많이 성장시켜 준 <SIX>도 있었죠. 그래도 딱 하나를 꼽아보자면 어릴 때 했던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떠올라요. 원 캐스트로 3개월을 했었죠. 그때 제 안에 눌려 있던 에너지를 다 분출했어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무대에서 솔직해지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아까 “모든 행동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는 거죠.”라는 문장이 와닿는다고 했어요. 이 작품이 말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키다리 아저씨> 속 사랑은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키다리 아저씨가 나를 지켜봐 주고 있다는 믿음, 아저씨가 나를 믿어주는 만큼 나도 아저씨에게 믿음을 드려야겠다는 그 노력. 이게 다 사랑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요.
제루샤에게 키다리 아저씨와 제르비스는 어떤 존재일까요.
제루샤는 키다리 아저씨를 당연히 늙은 아저씨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도 다 하죠. 세상을 다 알 것 같고, 다 이해해 줄 것 같으니까요. 키다리 아저씨는 제루샤에게 든든하고 포근한, 따뜻한 존재예요. 제르비스와 제루샤는 뭔가 통하는 사이랄까요. 코드나 결이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제루샤도 특이한 면이 있지만 제르비스도 그 못지않게 독특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문학을 사랑하는 소녀를 지원해 주고 싶어 하는 마음, 훌륭한 작가를 키워 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제르비스에게 있으니 둘이 문학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마음을 열어가는 게 아닐까요. 또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니 그런 데서 사랑이 피어나는 것 같아요.
극 중에서 제루샤는 ‘행복의 비밀’을 발견하죠. 유주혜 배우만 알고 있는 행복의 비밀이 있나요?
전 마음이 답답할 때 주위를 많이 둘러보는 편이에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있을 때 사람들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생각보다 사람들 구경하는 게 되게 재밌어요. 생각지 못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 장면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죠. 아니면 아이들을 보거나, 고양이들을 안고 있을 때도 행복해져요. 자기가 뭘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지를 알고 있으면 좋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자기만의 ‘행복의 비밀’을 만들어 보시면 좋겠어요.
올해 뮤지컬 <웨이스티드><SIX> 드라마 <신성한, 이혼> 그리고 이번 <키다리 아저씨>까지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최근 결혼 소식도 전했는데, 2023년이 어떻게 기억될 것 같나요.
2023년요? 절대 못 잊을 것 같아요. 제게 너무 특별한 한 해였어요. <웨이스티드>와 <SIX>도 너무 행복하게 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요. 드라마가 방영됐을 때도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엄청 옛날에 알고 지내던 친구한테도 연락이 왔었거든요. 가족들도 많이 좋아해줬고요. 그리고 제 인생 최고로 중요한 일인 결혼도 했고, 유럽도 처음 가서 30일이나 있었는데 그 여행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올해의 마지막과 내년의 시작을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품인 <키다리 아저씨>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에요.
배우 유주혜의 꿈은 무엇인가요.
항상 유머를 잃지 않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면서 행복하게 사는 게 제 꿈입니다.
마지막으로 <키다리 아저씨>를 보러 올 관객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려요.
연습할 때 어느 날은 이 부분이 좋고, 어느 날은 저 부분이 좋고 매번 달라요. 보러 오시는 관객분들도 그날의 마음에 따라 더 와닿는 부분이 다를 거예요. 그러니 여러 번 보셔라.(웃음) 그만큼 좋은 대사와 장면들이 많은 작품이니 와서 보시고 자신만의 행복의 비밀을 알아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ATTENTION, PLEASE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기간 2023년 12월 5일-2024년 2월 25일
시간 평일 19:30|토 15:00 19:00|일·공휴일 14:00 18:00
장소 드림아트센터 1관
가격 R석 7만원|S석 6만원
문의 02-744-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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