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새 70% 오른 전기료…원전으로 ‘에너지 안정’ 꿈꾸는 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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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10.11. 오후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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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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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에너지안보]<15>에너지 위기에 친원전 여론 높은 체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체코 내 원전 친화적 분위기는 더욱 강해졌다. 국제 원유가격이 요동치면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데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으로 겨울 난방이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전에는 세계적 탈탄소 흐름에 맞춰야 한다는 신념의 이유였다면, 이제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원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보다 최소 70%, 최대 300% 오른 전기요금
유럽의 에너지 가격은 1년 새 급격하게 상승했다. 스페인의 전력 도매가격은 지난해 3월 1㎿h(메가와트시)당 54달러에서 올해 3월 312달러로 477% 올랐다. 프랑스(444%), 독일(394%), 영국(338%) 등의 전력 도매가격도 급등했다.

체코도 이같은 에너지 가격 상승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체코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체코의 물가상승률은 17.5%로 30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인은 급등한 에너지 가격이다. 체코 전기요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이상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체코 재무부는 에너지 가격 상승세로 인해 연간 물가 상승률이 2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1년새 급등한 전기료에 대해 설명 중인 미로슬라브 크리스탈 두코바니 구청장. 권민지 기자

한국전력이라는 단일 공급자가 있는 한국과 달리 체코에는 다수 전력 공급자가 있다. 이용하는 요금제도 개인마다 단기요금제, 장기요금제 등 모두 다르다. 이 때문에 전기료 인상 폭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다만 어떤 요금제로 계약했건 지난해보다 큰 폭의 전기요금 인상을 체감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평균적인 인상 폭은 300% 수준으로 추정된다. 미로슬라브 크리스탈 두코바니 구청장은 “지난해 1kWh(킬로와트시)당 3.5코루나(198원) 받던 업체가 올해 12코루나(680원)로 가격을 인상했다. 평균적으로 2~3배 이상 상승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난방 대신 겉옷·온수 대신 냉수
급등한 물가와 전기료에 체코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프라하에 거주 중인 요제프 리막은 지난 19일 “난방비가 부담스러워 기온이 10도 아래로 떨어졌는데도 집에서 난방을 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프라하의 최저기온은 6도였다. 같은 주에는 최저기온이 2도까지 낮아지는 등 초겨울 날씨를 보였다.

리막은 집에서 쉴 때도 외출복을 껴입는 등 난방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리막은 “학교에서는 난방 온도를 20도로 제한했다. 체육 시간 후에는 몸에 열이 나니까 17도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아이들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유럽집행위원회(EC)에 따르면 프라하는 로마, 비엔나에 이어 지난해 대비 전기요금이 세 번째로 많이 상승한 도시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도 이제는 모두 부담이다. 프라하에 사는 아델라는 가능하면 손을 냉수로 씻는다. 온수를 틀면 난방비가 나가기 때문이다. 물을 잠글 때도 수도꼭지가 냉수 쪽으로 되어있는지 확인한다. 혹 온수 쪽으로 수도꼭지가 돌아가 있으면 난방비가 나올까 걱정돼서다. 아델라는 “11월이 되면 집에서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끼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이 현실이 된 후로 원전이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빼뜨리 스메이칼 체코 트레비치시 상공회의소 회장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기업과 개인 모두 원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권민지 기자

기업들 사이에서도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 원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대외 요인에 영향을 덜 받는 에너지원을 확보해 가능한 생산비 변동성을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빼뜨리 스메이칼 체코 트레비치시 상공회의소 회장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전기료가 인상되면서 원전 산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기업인들이 늘고 있다. 기업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안정적으로 에너지가 공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에 대한 반감도 원전 호감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천연가스 비중을 낮추기 위해 원전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체코는 체코슬로바키아 시절이었던 1968년 소련에 침공당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체코인들은 우크라이나 국민에 공감한다. 공개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국민도 다수다. 프라하 시내 곳곳에서 푸틴을 조롱하는 포스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스메이칼 회장은 “에너지 비용 인상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러시아에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기 위해 천연가스 비중을 낮춰야 한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2040년 원전 비율 46% 이상 목표
원전 추가 수주로 당장 전기 공급이 원활해진다거나 전기료가 낮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체코 국민도 알고 있다. 그러나 노후화된 원자로를 신형으로 대체하고 원전 발전 비중을 높이는 게 장기적으로 에너지 자급자족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바츨라브 도스탈 체코 과학기술대 교수는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위기를 경험하면서 체코가 최적의 에너지 믹스를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원전 산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바츨라브 도스탈 체코 과학기술대 교수는 에너지 자급자족을 위해 원자력 발전소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권민지 기자

지난해 새롭게 출범한 페트르 피알라 정부는 기후 보호를 정부 우선순위로 꼽았다. 에너지 안보 및 자급자족, 기후 목표 달성과 저렴한 에너지 공급을 위해 원자력 및 재생에너지 개발 지원에 중점을 둔다는 계획이다. 체코는 현재 33% 수준인 원자력 발전 비율을 2040년 46~58%까지 높인다는 목표다. 석탄 및 재생 불가능한 고체연료는 현행 50%에서 11~21% 수준까지 줄일 계획이다. 도스탈 교수는 “체코는 정권이 교체되어도 친원전 성향은 바뀌지 않는 편이다. 앞으로도 원전 중심의 에너지 믹스 개편이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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