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우리 교실이 이렇게 됐을까. 진상 갑질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도를 넘었다. 통상적인 교육지도지만 꼼짝없이 아동학대범으로 몰려도 속수무책이다. 내 아이만 칭찬 스티커를 못 받았으니 아동학대라고 신고한 부모, 오토바이 등교를 제지했더니 ‘인권 침해’라 따지는 학생, 교과서 속 동시에 나오는 것처럼 까치발로 몇 걸음 걸어보게 했다가 아동학대로 고소당한 교사. 교실에서 폭력이 일어나도 소리를 질러 공포심을 느끼게 하거나 신체 접촉이 이뤄지면 아동학대가 될 수 있으니 교사는 웃으면서 “친구야, 그만하세요”라고 해야 한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걸까. 아동학대로 ‘의심만 가도’ 신고가 가능하고, 포괄적이고 애매모호한 ‘정서적 학대’라는 법 규정이 문제다. 아동학대 근절이라는 취지에는 맞지만, 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정당한 훈육과 학대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아동학대죄는 ‘아동기분상해죄’라는 교사들의 자조가 나올 법하다.
사실 이번 사태에서 제일 안타까웠던 것은 스물셋 여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학부모에게 들었다는 “교사 자격이 없다”는 말이었다. 실제 많은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하며 ‘교사의 자격’을 거론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부모의 자격’이 있을까. 교사에게도 인격이 있으며 시도 때도 없이 호출되지 않고 사생활을 보호받아야 하는 ‘개인’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부모, 교육 현장을 고객 만족 서비스 현장쯤으로 여기며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부모, 내 아이는 절대 손해 보지 말아야 하고 내 아이의 행복을 위해 온 세상이 조아려야 한다고 믿는 부모, 제대로 가정교육을 못 받은 ‘금쪽이’들을 학교에 맡겨놓고 소비자 의식을 발휘하는 부모···. 교사들은 임용고시라도 봤지만, 학부모는 그저 아이를 낳기만 하면 ‘자격’이 절로 주어지는 걸까.
한 교사는 “학부모들이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서 학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지만 더는 과거 같은 촌지, 체벌, 차별이 난무하는 현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과연 작금의 상황이 학생 인권과 교권의 충돌인지, 아니면 진상 학부모 인권과 교권의 충돌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아동학대를 주장하는 학부모의 가정에 똑같은 기준의 아동학대가 없는지 묻고 싶다는 교사도 있었다. 법·제도 정비와 함께 나의 권리를 주장할 때는 상대방의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는 인권 교육의 ABC가 필요하다. ‘역지사지, 공존하는 시민성’이 제도 개선과 같이 가야 한다.
글=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그림=김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