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이 테러에 명분을 줘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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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1.30. 오전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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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일시 중지 협상이 이뤄지던 지난 23일에도 가자지구 남부 도시 라파흐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이 발생해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왜냐면] 백수웅 | 변호사·‘테러를 프로파일링하다’ 저자

 우리는 다시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 등 두 차례 전쟁을 겪고 있다. 지구 건너편 일이기 때문에 전쟁의 참상을 직접 느끼지는 못했지만, 전쟁은 내 삶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줬다. 전쟁으로 인해 물류난이 발생했고 원자잿값의 상승으로 물가가 크게 올랐다. 코스피 지수는 또다시 곤두박질쳤고 국내 경제는 어려워졌다. 세계화로 인해 세계는 평평해졌다는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이 몸으로 와 닿았다.

얇아진 주머니 사정을 고민하는 지금, 지구 건너편에서는 치열한 전쟁이 계속 중이다. 명분이 없는 전쟁은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 전쟁에 나서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합당한 지에 대해 제3자가 명확한 정답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걱정하는 것은 있다. 매일같이 뉴스에 보도되는 전쟁의 모습이 너무나 참혹하다. 가자 지구에 있는 병원이 폭격을 당해 의료인 등 500여 명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고 난민촌도 공격을 받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무고한 민간인들은 물론 어린아이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각자의 명분 앞에 국제사회가 합의한 국제인도법 등 국제 규칙들도 유명무실화됐다. 지난 몇 년 동안 세계 경찰국가 노릇을 했던 미국은 이스라엘 편을 든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은 어디서 본듯한 기시감이 든다. 2001년 9월11월에 일어났던 테러 사건이다. 미국은 무고한 자국민을 상대로 공격을 강행해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알카에다와 탈레반 집단에 복수를 다짐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강행했고 알카에다 세력을 손쉽게 소탕한다. 테러 집단과의 전쟁이라는 이유로 국제인도법 등 국제사회가 합의한 인권적 내용은 무시했다. 그러나 전쟁 이후 상황은 미국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 강력한 테러 집단인 이슬람국가(IS)가 새롭게 등장해 알카에다를 대체했다. 이슬람국가(IS)는 전 세계를 상대로 테러를 저질렀다. 이슬람국가(IS)의 세력이 약해지기 전까지 우리는 테러의 공포 속에 살아야만 했다.

미국이 당시에 흥분을 조금은 가라앉히고 국제사회가 합의한 인권 규칙을 준수한 채 전쟁을 진행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대처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테러는 극단적 폭력 행위로 절대로 용인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다만 국제 사회의 인권 원칙을 무시한 대응은 테러리스트에게 빌미를 줄 수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향한 무차별적 공격이 전쟁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극단적 폭력 행위에 명분을 제공하고 또다시 우리를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지는 않을지 깊은 우려가 든다.

세계은행은 이란 등이 참전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지금보다 커질 경우, 유가가 150달러에 육박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만약 그러한 상황이 현실화하면 나의 주머니 사정은 더욱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이미 평평해진 세상에서 지구 건너편에서 발생한 비극적 상황은 내 가족의 삶과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국제사회의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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