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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인사하는 이유? 단기기억이 망가지면 생기는 일!

2023.04.05. 오후 12:11
by 논문교수

※※ 네이버 지식+판의 메인 화면에 실린 글입니다(2023.04.13.)


목차

수많은 정보의 홍수

단기기억이란?

멋진 차를 볼 때의 반응

매일 인사를 건네는 H.M.

요약:

  1. 단기기억: 경험/학습 내용이 수초(길게는 몇 분) 기억되는 과정.

  2. 감각기억: 감각 내용이 50~150초 사이 기억되는 과정.

  3. 전두엽 절제술로 단기기억을 상실한 H.M.은 매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인사했다.


​수많은 정보의 홍수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수천 가지의 정보를 접하며 살아갑니다. 말 그대로 물밀듯 밀려와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합니다. 당장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봐도 수많은 시각적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직장 동료가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 창밖 가득히 펼쳐진 하늘,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치는 낯모르는 사람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정보들이지요. 하지만 이 정보들은 모두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아요. 일부만 선택되어 수초 동안 머물게 됩니다. 가령 지나치는 사람들 중 매력적인 이성이 있다면? 잠시 눈길을 주기도 하겠지만 바로 잊어버리곤 합니다. 물론 아주 매력적인 이성이라면 머릿속에 남아 계속 떠올리기도 하겠지요. 이때도 대개는 뚜렷한 모습보다 잔상의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단기기억이란?

이처럼 단기기억(short-term memory)은 경험하거나 학습한 것을 몇 초간 머릿속에 유지하는 기억을 뜻해요. 길게는 몇 분 동안 일시적으로 유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보가 바로 단기기억을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그전에 감각기억 형태로 저장됩니다.

오감을 순간

저장하는 감각기억

감각기억(sensory memory)은 시각 등 감각 신호를 통해 입력되는 정보가 아주 짧게(50~150초) 기억되는 것을 뜻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많은 정보들로 넘쳐납니다. 이것들을 모두 받아들인다면 우리 뇌는 정보의 홍수로 인해 과부하 상태가 될 것입니다. 더구나 모든 정보를 기억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에요. 생존이나 쾌락에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굳이 남겨둘 이유는 없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감각기억이에요.

감각기억은 우리를 둘러싼 엄청난 정보와 자극들을 아주 잠깐 동안 의식 속에 저장시켜줍니다. 그런 뒤 다른 과정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하지요. 감각기억이 저장하는 정보는 시각/촉각/후각 등 오감이에요. 오감이 저장되는 과정은 스냅샷을 찍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스냅샷은 짧은 순간의 기회를 포착해 찍은 사진을 가리킵니다. 스냅샷처럼 우리를 둘러싼 정보는 우리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저장되지요.

<일타 스캔들>의 최치열

tvN 홈페이지 캡처

더 나아가 감각기억은 자극이 사라지고 나서도 그것을 기억하며 그 속성을 감지하도록 해주지요. <일타 스캔들>는 2023년 2~3월에 방영된 tvN 드라마입니다. 로코와 스릴러가 결합된 독특한 스토리로 큰 인기를 끌었어요.

주인공 최치열(정경호 분)은 강남 한복판에서 일타 강사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인물이에요. 사교육계의 BTS라고 불리는 그는 '1조 원의 남자, 10분의 가치는 1,700만 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하지만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고 잠을 잘 잘 수도 없습니다. 성공에 대한 강박과 함께 과거 제자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트라우마 때문이지요. 그래서인지 성격도 까칠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행선(전도연 분)이 운영하는 '국가대표' 반찬가게에서 산 음식을 맛있게 먹게 됩니다. 어째서 까다로운 최치열의 입맛을 사로잡았을까요? 20대 고생하던 시절에 마음과 몸의 허기를 달래주던 밥맛과 비슷했기 때문이에요. 자극은 사라졌지만 그 속성은 무의식 차원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지요.

지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 계발되는 것!(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 →​


멋진 차를 볼 때의 반응

단기기억은 감각기억과 같은 말로 사용되곤 합니다. 하지만 엄연히 다른 단어예요. 감각기억 형태로 저장된 정보들은 그냥 사라지기도 하지만 일부는 단기기억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전환 과정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주의(attention)입니다. 주의는 자극 중 특정한 것을 인지하거나 반응을 보이는 집중 상태를 의미해요. 감각기억을 통해 한순간 입력된 정보들이 모두 의식 속에 남아 있으면, 앞서 말씀드렸듯 우리 뇌는 과부하에 걸려 괴로울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사라지고 일부만 단기기억으로 저장됩니다. 의미가 있거나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남는 것이지요.

다만 이 과정은 의식적이지 않으며 무의식적으로 발생해요. 이렇게 머릿속에 새겨진 정보들 가운데 일부가 선택적으로 남아 단기기억이 됩니다. 우리는 몇 초 동안에도 수많은 정보와 자극을 받지만 이것을 의식하며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무의식적이며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정보들 중 일부는 짧게라도 기억하게 됩니다. 나의 관심을 끌거나 의미가 있을 듯한 것들은 잠시라도 가치 있게 기억해두려는 것이지요.

멋진 차를 본 당신의 반응

가령 길을 가다 멋진 차를 보았다고 합시다. 다른 수많은 차들이 지나가도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특정 차만 유독 눈에 들어오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평소에 갖고 싶던 차일 수도 있고, 단순히 외양이 멋져 보여서 한순간 눈길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 차는 나의 관심을 끈 것이 분명합니다.

이때 그 차의 외양은 단기기억으로 머릿속에 저장됩니다. 더 나아가 그것이 정말 중요한 정보라고 판단되면 장기기억으로 전환될 수 있어요. 장기기억(long-term memory)은 용량 제한 없이 비교적 영속적으로 저장되는 기억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단기기억과 감각기억은 주의 활동 여부에 따라 명확히 구분될 수 있습니다.

IQ, EQ, SQ, YQ, EnQ 차이점 →→→


매일 인사하는 H.M.

그렇다면 단기기억은 어떻게 증명될 수 있을까요? 전향성 기억상실증을 통해 증명되고 있어요. 전향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은 새로 습득한 정보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전 기억은 유지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뇌 손상 전 발생한 사건은 기억하지만 손상 후 접하는 정보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손상 전이 아닌 후에 순차적으로 발생한다는 의미에서 순행성 기억상실증이라고도 해요.

반대로 손상 전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를 가리켜 후향적 기억상실증(retrograde amnesia)이라 해요. 전향성 기억상실증을 증명해 준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H.M.(Henry Molaison, 헨리 몰레이슨)이에요. 처음에는 개인정보를 위해 약어로만 불리다가 이후 풀네임이 알려졌습니다. H.M.은 측두엽 절제술 후 새로운 기억을 못 하게 된 사람의 이름입니다.

9살 때 자전거에 머리를 부딪친 뒤 발작이 시작되어 계속 나빠져갔습니다. 뇌전증 발작을 앓은 것이지요. 당시 가장 강력한 항경련 제도 듣지 않자 최후의 수단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도의는 측두엽 일부를 떼어내면 발작을 멈출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이에 따라 헨리의 해마 2/3를 포함하는 측두엽 절제술을 시행했지요.

늘 처음 보는 사람처럼

그 결과 헨리는 발작을 멈추는 동시에 기억도 사라졌습니다. 심리학자 브렌다 밀너는 뇌전증은 개선되었지만 기억 체계에 문제가 생겼음을 밝혀냈습니다. 몇 초 동안의 단기기억이나 과거 일 기억은 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일은 머릿속에 입력하지 못하게 된 것이지요. 헨리는 매일 밀너를 볼 때마다 처음 얼굴을 보는 것처럼 인사를 건넸습니다. 새로 습득한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남기지 못한 탓입니다.

이처럼 H.M.의 존재로 인해 단기기억이 장기기억과 별도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현재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뇌 관측 연구소에 옮겨진 그의 뇌는 종잇장처럼 얇은 2401개 조각으로 절편 된 상태입니다. 이 자료들은 이후 개별 뉴런 차원까지 보여주는 자세한 디지털 지도를 만드는 데 활용되었어요.

뇌/기억 연구에 기여

H.M.은 이후 뇌 조직, 기억 형성 연구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기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지만 까다로운 기술인 경영 묘사(mirror drawing)를 익힐 수 있었어요. 경영 묘사는 거울에 비친 자기 손을 보며 무언가를 그리는 어색한 작업입니다. 또 자기 집 구조의 설계를 자세히 그림으로 재현하기도 했습니다. 무슨 냄새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냄새의 크기는 느낄 수도 있었지요.

H. M.은 통증에 대한 내성이 강했다고 전해집니다. 통증 내성은 편도체 소실과 관련 있다는군요. 편도체는 잊고 싶은 고통스러운 과거 경험을 기억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통증 지각(pain perception)이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는 어떤 사고를 하는 사람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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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교수

연세대학교 영문학 학사, 국문학 박사.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은 문학평론가. 논문 입문서인 <질적 연구를 위한 실전 입문서> 두 권을 집필했으며, 프리랜서 플랫폼 '크몽'에서 탑 셀러로 활동했다. 17년 차 논문 컨설턴트이자 글쓰기 전문가로, 블로그 '논문교수의 실전꿀팁'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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