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공학으로 바꾼다고요? 반대합니다” - 왜 여성들은 ‘안전한 공간’ 찾을까?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여대 ‘공학 전환’ 저항 확산
“안전한 공간” 공감대 커
동덕여대가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했다고 알려지며 학생들이 반대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20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학생들이 교내 운동장에서 학생총회를 열고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과 관련 찬반투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동덕여대는 비교적 안전한 울타리이자 생존의 공간이었다." (11월 12일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총력대응위원회' 기자회견)

동덕여대를 둘러싼 남녀공학 전환 논란이 뜨겁다. 공학 전환에 저항하는 움직임은 다른 여대와 일반대학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여성신문이 만난 '공학 전환 반대' 입장을 밝힌 20대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표현은 "안전한 공간"이었다. 이들은 여대는 여성의 목소리를 지지하고, '여대생'이 아닌 '대학생'으로서 설 수 있는 공간이라고 입을 모았다.

동덕여대 재학생이 시위에 나선 건 학교 발전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남녀공학 전환 추진'을 언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실제 동덕여대 남성 재학생이 지난해 0명에서 2024년 6명(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정보공시)으로 늘었다. 지난 11일 동덕여대 학생 1천여명이 대학본부가 학생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공학 전환을 추진한다며 반대 시위를 시작했다. 20일 동덕여대 총학생회가 연 학생총회에서는 참석자 99.9%가 '공학전환 반대'에 표를 던졌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불법시위'로 규정하고 "폭력을 주도하는 학생들의 의견은 전체 의견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학생들은 "민주적 절차의 부제와 여대라는 공간이 갖는 상징성" 등을 이유로 들며 남녀공학 전환에 반대했다.

12일 남녀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동덕여대 재학생들이 붉은색 라카 스프레이로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 입구에 '공학 전환 입시 사기' 등의 글을 적은 모습.   ⓒ신미정 기자


최현아 동덕여대 총학생회장은 지난 1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학교 측의 '불통'을 지적하며 학교의 남녀공학 추진 논의에서 학생들은 배제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여성을 타깃으로 한 혐오 범죄가 많이 발생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온전하게 한 사람으로서 자리하고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고 했다.

동덕여대 재학생 김은진(가명, 22학번)씨도 여대 필요성의 이유로 '안전'을 꼽았다. 김씨는 지난 2018년 학내에서 발생한 이른바 '알몸남 사건'을 언급하며 "이번 공학 전환이 비민주적인 절차로 진행된 것도 문제지만, 공학 전환은 안전을 위협받을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알몸남 사건'은 2018년 10월 한 20대 남성이 동덕여대 대학원 건물에 침입해 강의실과 여자 화장실 입구 등에서 자신의 나체 사진과 음란행위를 하는 모습 등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건이다. 이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여대라는 특성에 성적 요구가 생겼다"고 진술했다.

여대 존재의 이유로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우려를 꼽는 이들도 있었다. 동덕여대 졸업생 신은빈(가명, 09학번)씨는 "여성을 향한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현실에서 여대는 존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씨는 "여성이 남성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대학생'으로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행동을 논의할 수 있는 장으로서 여대는 필요하다"고 했다. 또 다른 동덕여대 졸업생 김채원(가명, 09학번)씨도 "여대가 세워진 이유를 볼 때 아직 공학 전환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남녀공학 대학을 다니다 이화여대 대학원에 진학한 안은정씨는 "여대에 오고 나서 젠더 폭력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아무데나 눕고, 잘 수 있다.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고, 페미니즘에 대해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했다.

동덕여대가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작된 학생들의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시위를 둘러싼 조롱과 위협이 여대 필요성을 다시금 일깨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SNS에 '동덕여대에서 칼부림을 벌이겠다'는 글이 올라와 경찰이 추적에 나섰고, 지난 14일에는 20대 남성이 한밤중에 동덕여대에 무단 침입해 체포됐다.

현재 공학 전환 반대 서명운동에 개인 자격으로 서명한 사람이 14일 기준 36만여명에 달한다.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을 위해 모금운동을 시작한 학생회 측 계좌에는 공지 8시간 만에 2300만원이 모였다. 여성 대상 범죄와 여성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여대의 소명이 다 하지 않았다"(성신여대 학생들 시위 문구)라고 이들은 말한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최근 발생하고 있는 젠더폭력과 여자 대학이 갖고 있는 상징성 때문에 다른 여자 학생들도 공감하고 연대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대 혐오와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이나 여성에 대한 공격과 싸우는 것"이라고 했다.

'여대'라는 공간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논의를 시작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는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학교의 입장이 타당한가"라고 반문하며 "남학생을 받는다고 대학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대학을 경제의 논리로 대학을 운영하는 것이 맞는지도 물어야 한다"고 이 교수는 짚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그간 여대는 여성들이 미래사회의 대안적 주체로서 자신들을 재정의할 수 있는 공간이자, 여성의 위치에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내는 곳이었다"며 "안전하기 위해 여대를 폐쇄적인 공간으로 남기기보다 소통하고 연대하는 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임윤경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지난 8일 열린 '여성혐오와 여자대학, 그 변화의 시작' 토론회에서 오늘날 여대가 존재의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단순히 안전하고 평등한 공간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인재로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임 교수는 "여학생들로 하여금 남녀공학을 선망하지 않게 만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 학교에 입학하면 다른 사람과 달리 이 사회를 구원할 인재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줘야 한다"고 했다.

또한 나임 교수는 한국의 여대도 미국의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처럼 연대를 통해 '경쟁 없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세븐 시스터즈는 19~20세기 남성 대학에 버금가는 교육을 여성에게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여대 7곳을 가리킨다. 한 곳은 남녀공학으로 전환되고, 다른 한 곳은 하버드 대학과 통합돼 현재 5곳만이 여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졸업한 웨즐리 대학이 대표적인 세븐 시스터즈 중 한 곳이다.

기자 프로필

TALK

응원의 한마디! 힘이 됩니다!

응원
구독자 0
응원수 0

성평등과 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작은 선의들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보와 피드백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shin@womennews.co.kr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