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기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의 유족이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한다. 진실규명 결정서에 ‘악질 부역자’ 등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적어 사실을 왜곡하고 모멸감을 줬다는 주장이다. 사건 신청인이 진실화해위 위원장을 형사 고소하는 건 처음이다.
충남 남부지역(부여·서천·논산·금산)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 유족인 백남식(75)씨는 한겨레와 만나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결정서에 1968년 경찰의 신원조사서 내용을 인용 ‘노동당원으로 활약, 처형됨’(아버지 백락용), ‘악질부역자 처형됨’(작은아버지 백락정)이라는 허위사실을 적시했다”며 “이번 주에 서울경찰청에 김광동 위원장을 사자명예훼손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할 계획”이라고 12일 밝혔다. 백씨는 또한 “위법한 결정내용을 취소하기 위해 행정소송도 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동아일보 서천지국장이었던 백씨의 아버지 백락용씨는 1950년 6월27일 저녁 집에서 끌려가 경찰서에 구금·억류된 뒤 어디론가 사라졌고, 작은아버지 백락정씨도 형을 찾으려 집을 나선 뒤 행방불명됐다. 이후 가족은 진실화해위 조사를 통해 “백락용·백락정은 각각 6월28일과 7월17일 사이, 7월1일과 17일 사이 대전 골령골에서 군경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지난해 12월12일 백씨가 받은 ‘충남 남부지역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 진실규명 결정서’에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부역자인 것처럼 기재돼있었다. 백씨가 받은 결정서는 A4 크기 114쪽 분량의 책 형태로 돼 있으며 지역별 개요와 사건 경위, 조사결과가 담겨있다. 진실화해위는 결정서에 1968년 경찰 신원조사서 기록을 인용했는데, 신원조사서는 한국전쟁기 희생자 유족에 대한 일종의 동향감시 보고서다.
백락용·백락정씨에 대한 1968년의 경찰 신원조사서 기록은 진실규명서 책 35쪽 희생 사실과 57쪽 희생자 신원 확인 근거표에 적혀 있다. 이 책에 있는 진실규명 대상자 중 경찰 신원조사 기록 내용이 기재된 사람은 둘 뿐이다. 여기에 인용된 기록에 따르면, 백락용씨는 노동당원으로 활약하다 처형되었고, 백락정씨는 악질 부역자였다. 보는 사람들에게 이 기록이 사실인 것처럼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해당 기록은 경찰이 작성했다는 것 이외에는 단 한 줄의 설명이나 근거가 없다. 수사기록이나 재판 결과도 없다. 백남식씨는 “악질 부역자로 적힌 작은 아버지의 경우, 전쟁 터지자마자 형 찾으러 나갔다가 사라졌는데 어느 틈에 부역했다는 거냐”고 말했다.
이어 백씨는 “진실규명 결정서를 받아보고 사지가 떨리더라. 왜 우리 아버지를 있지도 않은 반역자로 만드나. 영구 보존되는 국가기록물에 이런 거짓말을 쓸 수 있냐”고 말했다. 백씨는 “어릴 적 수시로 집에 찾아와 가족 동향을 캐묻는 형사들에게 시달렸다. 연좌제 피해로 인해 이모가 몇 명인지 고모가 몇 명인지도 모를 정도로 친척들과 연을 끊고 지냈고 결국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백씨는 신원조사서에 근거한 허위사실이 들어간 결정서는 취소·수거되어야 하며, 김 위원장이 유족에게 공식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씨는 이런 내용을 담아 진실화해위 결정내용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1월22일 진실화해위에 접수했지만, 아직 답을 받지 못했다.
김광동 위원장은 지난해 5월25일 기자간담회에서 “희생자 중 부역자를 선별하겠다”는 극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뒤 각종 형태의 경찰 사찰기록을 진실규명 결정서에 그대로 실으려고 해왔다. 그 첫 케이스가 지난해 8월 경찰의 1980년 신원 기록 심사보고에 적힌 심사기준표를 인용한 ‘충남 태안 이원면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이다. 당시 김광동 위원장의 주도로 진실규명 대상자 35명 중 17명의 희생자 이름 옆에 ‘악질 부역 등에 가담 사살 또는 처형된 자’에 해당하는 코드명 ‘1-7’을 기재했다.
진실화해위는 태안 사건의 경우 해당 경찰 기록이 실린 사람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으나, 그 이후에는 진실규명 불능이나 보류 조처를 취해왔다. 지난해 10월에는 1979년과 1981년 경찰이 작성한 ‘대공인적위해자조사표’ 및 ‘신원기록편람’의 처형자 명부에 ‘살인’ 등의 기록이 있다는 이유로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 21명 중 6명의 진실규명을 보류했다. 백락용·백락정씨가 진실규명 불능이나 보류 처리되지 않고 진실규명된 것은 ‘대전형무소에서 사망’으로 적힌 백락용씨 제적등본 등 증거가 명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또한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좌익 전향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관변단체다. 군경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것이라는 막연한 우려 속에 이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2023년 10월31일 진실화해위 제65차 전체위에서 6명의 희생자가 진실규명 보류된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사건의 경우 부역혐의 희생이 아닌 사건 중에서 처음으로 희생자를 부역자로 판단하는 사례가 되어가는 중이다.
‘신원기록 심사보고’ 등 경찰 기록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의 유가족을 사찰한 자료로 1960년, 1979년, 1981년 등 여러 차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새로 만들거나 통합·정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자료는 1기 진실화해위가 전국 각지의 경찰서를 통해 입수했는데, 당시에는 희생 사실을 확인하는 용도로 쓰였으나 2기에서는 김광동 위원장 주도로 희생자의 부역 여부를 증명한다며 진실규명 불능이나 보류 조처를 내리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이 기록은 짤막한 메모 수준이고, 여러 희생자에게 같은 내용을 반복해 적은 터라 신빙성이 거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나 자료가 전혀 없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