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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 '알앤제이' 손유동 "행복해 보이는 내 모습에 재연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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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1. 17:30553 읽음

작품에 잘 스며든다. 존재감을 발휘하면서도 극의 인물로서 존재하고 이야기의 흐름에 힘을 실어준다. 잔잔한 강물처럼 보이지만 수면 아래는 치열함과 노력으로 가득하다. 편안함과 동시에 배우적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 손유동의 이야기.

손유동은 지난 6월 28일부터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알앤제이’(R&J)에 출연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변주한 이 작품은 엄격한 가톨릭 학교를 배경으로, 금서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탐독하며 위험한 일탈의 게임에 빠져드는 학생 네 명의 이야기를 다룬다.

2018년 7월 초연 이후 1년 만에 돌아온 재연에서도 학생 3역을 맡아 머큐쇼, 캐풀렛 부인, 로렌스 수사를 연기한 손유동은 지난 9월 7일 초재연 합쳐 100회 공연을 돌파했다. 돌아온 재연 무대 종연까지 3주도 남지 않은 시간, 3개월의 여정이 끝나가는 소감을 묻자 “정신없이 지나갔다”면서 시선을 벽으로 흘긴다.

“이번에는 회차가 많았다. 거의 매일 공연을 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까 3주밖에 남지 않았다. 긴 여정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어느새 종연의 때가 다가왔다.”

앞선 인터뷰에서 그는 ‘초연 기억이 미화되었을 때쯤에 재연 제안이 와서 참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과연 손유동의 기억 속 초연은 어떻게 남아있을까.

“초연 당시에는 여기저기 아프니까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였다. 그런데 공연은 너무 재미있었다. 두 마음이 공존했었다. 시간이 흘러 몸을 회복하니까 좋은 기억만 남았다. ‘알앤제이’의 음악에는 힘이 있다. 그 음악을 들을 때면 당시 기억과 감정이 되살아난다. 재연 출연 제의를 받고 영상을 보고, 노래를 들었는데 따뜻한 추억과 장면이 떠올랐다. 특히 홍보 영상을 봤는데, 그 안에 내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극 마지막 커튼콜에서 서로 ‘안녕’하면서 헤어지는데 굉장히 뭉클하다. 기분 좋은 슬픔이랄까, 그 감정이 막 올라왔고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

재연에 합류해서 첫 공연을 마치고 난 뒤 기억을 물었더니 손유동은 “물론 행복했지만 힘든 것도 살아나니까 힘들었다”면서 웃어 보였다. 작년 공연에서는 안 하던 동작을 많이 하면서 몸이 아팠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는 아니라면서도 “목이 삐끗하거나 무릎이 까지는 사소한 부상은 있다”는 말로 체력이 필요한 작품임을 드러냈다.

초연에서 재연으로 넘어온 캐스트는 손유동과 송광일, 단 두 배우뿐이다. 특히 초연 때보다 높아진 평균연령은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배우로서 느끼는 변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초연 친구들과는 진짜 감각적으로 느끼고 뛰어놀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면, 재연 캐스트는 더 분석해서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상태로 무대에 올랐다. 텍스트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듣고, 하면서 느껴지는 걸 공유했었던 것이 이번에는 그걸 정확한 말로 주고받아서 텍스트화 시킬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첫 시도를 할 때는 우리가 하는 걸 믿고 할 수 있었고, 동선이 픽스된 상황에서 움직이려면 ‘왜’를 자꾸 묻게 됐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됐었다, 그럼 이건 이렇게 될 수 있지 않겠나?’ 하면서 좋아지는 부분도 있었고, 무대를 하면서 ‘그런 거였구나’하고 받아들인 부분과 전달되는 과정에서 생긴 부분도 있다. 물론 조금 더 분석적으로 다가가는 사람도 있었다.”

작품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학생3을 맡은 손유동은 초연 후 ‘명동로망스’ ‘풍월주’ ‘보도지침’ 등 여러 작품에 참여해 경험치를 쌓았다. 배우로서 한층 성장한 뒤 다시 만난 작품을 보는 시선의 변화가 있었는지 묻자 ‘여유의 유무’를 꼽았다.

“초연 때는 여유가 없었던 부분이 있다. 느끼는 걸 표현하지 못하는 게 초연이였다. 비유하자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데 텍스트화가 안 되는 게 초연, 잘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 재연이다. 초연 때는 학생으로서 느끼는 감정과 분리가 되었다. 지금은 중간중간 다른 배역이 된 순간에도 학생으로 느끼는 감정이 섞여 들어온다. 또 나는 느꼈는데 감정 표현이 안 되던 부분이 재연에 와서는 표현되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른 인물이 하고 있는걸 너무 보고 싶어도 보지 못했던 초연과 여유를 갖고 볼 수 있게 된 재연이라고 할 수 있다.”

ⓒ 쇼노트

프레스콜 당시 손유동은 ‘좋아하는 캐릭터’를 묻는 말에 ‘학생3’을 꼽았다. 상세한 이유를 물었더니 모든 감정을 담기 때문이란다.

“우리의 목적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잘 만드는 게 아니다. 그 연극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희열, 아픔 등 새로운 감정을 경험해나가는 과정 끝에 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맡은 배역들이 주는 여러 감정을 느끼면서 담아내는 학생3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프고, 슬프고, 행복하기도 하면서 ‘사랑’이라는 막연한 감정을 실제로 느끼고 깨닫는 것을 학생3이 경험하기 때문이다. 아픔과 트라우마가 있는 친구이기에 연극을 통해 느끼는 감정이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결혼식 장면’을 선택했다. ‘사랑’과 ‘감정’이 그 이유다.

“학생3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질적으로 행하고 이끄는 학생1과 2를 보면서 세뇌되어 갇혀있던 틀을 깨게 된다. 대표적으로 ‘결혼식 장면’이 그렇다. 사실 모든 장면이 좋지만, 재연 와서는 결혼식 장면이 제일 좋다. 이 장면에 관해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고 무대에 설 때마다 ‘사랑’을 깨닫게 되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 학생1,2가 이어가려고 하는 것도 ‘사랑’이고, 그들이 저를 안아준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사랑이다. 결혼식을 할 때 학생1, 2, 4의 눈을 보며 여러 사랑의 감정을 처음 느낀다. 그로 인해 깨닫고 위로받아서 그 장면이 제일 좋다.”

머큐쇼는 싸움을 말리는 로미오 때문에 죽게 된다. 이때 감정은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와 흩어지며 끝나는지, 아니면 학생3 본 캐릭터 시선에 녹아들며 감정이 표현되는지 묻자 “녹아져서 표현된다”고 답했다.

“그 장면을 통해 ‘죽음’을 경험한 거잖나. 원망과 분노가 섞였지만 로미오를 탓하지는 않는다. 솔직하게 ‘로미오 너 왜 그랬어..’라는 원망의 감정이 있지만, ‘너 때문에 내가!’는 아니다. 사실 두 집안이 지긋지긋한 건데, 그것에 더해 죽음으로 감정을 느낀 순간 다른 역할을 하는 학생들을 바라볼 때도 화가 난다. 그냥 앉아있는 학생4에게도 감정을 느끼고, 나를 그렇게 만든 두 집안이 원망스럽다. 통합적으로 학생 3이 이를 느끼면서 그렇게 된다. 퇴장은 머큐쇼가 아닌 그 장면에서 다 느끼고 담아낸 학생3으로 한다.”

“이 공연은 항상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걸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나?’ 순간 생각할 때가 있어서 어렵다”는 손유동이지만 여러 캐릭터에 대한 분석과 표현은 탁월하다. 그에게 설명을 들을수록 ‘알앤제이’는 더 매력적인 작품으로 다가왔다. 캐풀렛 부인을 표현할 때 중점을 둔 부분 또한 그렇다.

“그냥 1차원적으로 생각했다. 캐풀렛 부인을 표현하기 위해 ‘편견으로서 접근’해야 했다. 이유는 ‘편견으로서의 접근을 깨는 인물’이 학생2이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하는 우리는 진지한 상태가 아니라 ‘난 이렇게 해, 넌 어떻게 해?’라는 장난식으로 시작한다. 학생3으로서 깊은 생각을 하지 않지만, 편견에 따라 표현해야지 감정 및 생각 없이 들어오는 학생2와 충돌하겠구나 생각했다. 연출의 코멘트이기도 했다. 자세나 톤을 잡고 난 후에는 학생4와 놀 듯이 행동하며 자연스럽게 짜여져 지금의 모습이 됐다.”

우아한 자태의 캐풀렛 부인은 딸을 사랑하지만 결혼을 거부하는 줄리엣에게 ‘아버지에게 직접 말하라’면서 외면한다. 그리고 체벌 장면으로 이어진다. 원작과 같은 내용이지만 체벌과 맞닿은 이야기에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캐풀렛 부인이 딸을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캐풀렛 부인도 남편이 무서워서다. 우리에게는 각자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있지 않나. 캐풀렛 부인을 연기하지만 아버지가 화났을 때의 존재를 학생3으로서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심한 체벌을 당한 기억이 있으니 무서운 거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하고 있다.”

‘알앤제이’ 무대에 서는 배우들은 보통 살이 빠진다. 10년간 축구선수 생활을 했다는 손유동도 “저도 체력이 있는 줄 알았다”면서 혀를 내두를 정도다. “봤을 때 활동량이 꽤 많지 않나? 근데 또 살이 빠질 정도인가 싶은가?”라고 묻는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더니 “억울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했던 공연 중 체력적 힘듦으로 1등이다. 배우 모두가 얘기하는 바다. (박)정복 형이 연극 ‘유도소년’이 1등이었다고 했었는데, 비슷하게 함들다고 했다. 사실 나도 움직이면서 ‘왜 이렇게 힘들지’ 생각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학생3이 초중반에 쉬지 않는다. 무도회까지 한 번도 안 쉰다. 맵 여왕, 머큐쇼를 하고 캐풀렛 부인 때 앉아있는데, 그때 맵 여왕 하면서 쓴 에너지와 힘듦이 올라온다. 오프닝 때도 걸어 다니니까 안 그래 보이는데 꽤 힘들다. 긴장해야 하는 장면이라 더 그렇다. 싸우고, 턴하고, 학생1을 들고 레슬링하고, 맵 여왕에 캐풀렛 부인까지 하고 나면 숨 고르는 시간이 한번은 필요하다. 또 머큐쇼하고, 신부님 한 뒤 다시 머큐쇼로 칼싸움하고 들어가면… 어? 힘들만 하네.(웃음)”

(인터뷰②로 이어짐)



[이뉴스데일리 김은정 기자] ninana@enew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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