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향’ 19년…‘다디단 맛’, 동남아도 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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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럭무럭 자란 ‘K딸기’
그래픽 | 현재호 기자


일본산 ‘아키히메’ 대체품으로 태어나
병해충에 강하고 과실 커 ‘대세’로
찬 바람 불 때 맛보는 ‘빨간맛’

금실·매향·죽향…국산 품종
팡팡 터지는 과즙에 인기

딸기는 한때 ‘봄의 여왕’으로 불렸다. 3~5월에 사먹는 딸기가 가장 맛이 좋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이 일본산이었다. 2000년대 중반 국산 품종 개발에 성공했고, 국내 딸기 시장 판도와 제철 시기가 확 바뀌었다. 우리 입맛만 사로잡은 게 아니다. 국산 딸기는 싱가포르, 홍콩, 태국 등 동남아 지역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학부 때 딸기 재배를 전공하고 현재 농촌진흥청에서 8년째 근무하며 딸기 재배를 연구 중인 딸기전문가 최수현 농업연구사(30·국립원예특작과학원)는 “국산 딸기는 동남아 열대과일보다 부드러우면서 달콤하고, 경도가 높은 미국산이나 유럽산 딸기보다 단맛이 좋다”고 말했다.

설향 개발과 국내 시장 재편

2000년대 초 국내 딸기시장에서 국산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마트와 길거리에서 팔리는 딸기의 85~90%는 장희(아키히메)와 같은 일본 품종이었다. 경쟁력 있는 국산 품종 개발이 시급했다. 민관의 노력 끝에 2005년 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현 딸기연구소)이 ‘눈 속의 향기’라는 뜻의 ‘설향’을 개발했다. 설향의 등장은 국산 품종의 대중화를 알리면서 딸기 제철 시기를 앞당겼다. 최 연구사는 “겨울철에도 생육이 왕성한 설향은 병해충에 강하고 과실이 커 품종 점유율을 단기간에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농가에서 생산되는 딸기의 약 81%가 설향 품종이다. 최 연구사는 “농가들은 통상 9월에 딸기를 심어 11월 말에 수확하는데, 최근 들어 수확 시기를 앞당기려는 농가가 많아지면서 10월에도 고품질 딸기를 맛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겨울철 한참 맛이 좋을 때 먹는 설향의 평균 당도는 12브릭스(당도를 측정하는 단위) 정도다. 다만 출하 시기에 따라 차이가 난다. 최 연구사는 “초겨울 설향은 저온기에 천천히 자라 당도가 높은 반면 늦겨울에 자란 설향은 성숙도와 과실의 착생이 빨라 당도가 다소 떨어진다”고 했다. 국산 품종도 다양해졌다. 당도가 평균 13브릭스 정도인 금실과 죽향 등이 가세하며, 국내 딸기시장은 빠르게 국산 품종으로 재편됐다. 지난 2월 말 기준 국내 딸기시장의 국산 품종 점유율은 98.4%(장희 1.6%)다.

해외 시장에서도 국산 딸기 선호도가 높다. 지난해 딸기 수출액은 7108만달러로, 전년(5863만달러) 대비 21.2% 늘었다. 신선식품 중에선 김치(1억5560만달러) 다음으로 수출액이 많다. 딸기 수출은 동남아에 집중돼 있다. 수출 상위 국가들은 싱가포르(1801만달러), 홍콩(1577만달러), 태국(1394만달러) 등이다. 국산 딸기가 유독 동남아에서 인기가 있는 이유는 뭘까. 최 연구사는 “열대과일과 비교해 과즙이 풍부하고 달콤하다”고 했다. 동남아 지역과 가까운 것도 수출에 유리하다. 특히 한류 영향이 큰 몫을 차지한다. 동남아 지역에선 중국산 농산물에 대해서는 품질과 위생 측면에서 불안해하지만, 한국산은 프리미엄 제품이란 인식이 퍼지면서 선물용으로 인기가 좋은 편이다. 유럽산, 미국산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 최 연구사는 “(하우스에서 재배되는 우리와 달리) 주로 노지에서 재배되는 유럽산이나 미국산은 장거리를 이동하는 특성상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경도가 높은 편인데, 우리와 비교해선 단맛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20여종의 딸기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과거엔 일본에 품종 사용료를 줬으나, 이젠 일부 수출 품종의 경우 종자강국 미국에서도 사용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딸기는 하루이틀만 지나도 쉽게 물러지는 단점이 있다. 수출 딸기는 신선도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국산 딸기는 특수 저장고인 ‘CA(Controlled Atmosphere) 컨테이너’에 실려 수출된다. 컨테이너는 온도, 습도,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조절할 수 있다. 최 연구사는 “딸기는 수확 직후부터 물러짐과 곰팡이 등으로 품질이 떨어지기 쉽다”며 “CA 컨테이너는 내부 대기환경을 조절해 과실의 호흡과 미생물 증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수출용=고품질’은 오해일 뿐

농가에서는 수확 후 해외 현지 도착까지 걸리는 기간을 감안해 딸기가 70% 정도 익었을 때(숙도) 따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 연구사는 “딸기가 완전히 숙도되지 않았을 때 따게 되면 당도가 떨어질 수 있다. 90% 정도 익었을 때 따는 것이 좋지만, 수출하는 농가 입장에선 딸기가 물러질 것을 우려해 통상적으로 70% 정도 익었을 때 딴다”고 했다. 최 연구사는 흔히 쓰는 ‘수출용 고품질 딸기’라는 표현 때문에, 국내용보다 수출용 품질이 더 좋을 것이란 인식이 퍼진 것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그는 “금실과 매향이 당도와 경도 면에서 설향보다 높고 수량이 적어 가격 면에서 조금 비싼 편이긴 하지만, 내수용과 수출용 구분 없이 국내에서도 이런 품종들을 모두 맛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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