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달러’ 숨죽이자 난리 난 金···금값 강세 비밀은

입력
기사원문
배준희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2022년 하반기 ‘킹달러’ 국면에서 한동안 주춤했던 금값이 다시 상승세다. 최근 달러 강세가 한풀 꺾인 데다 경기 침체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안전자산 선호도가 높아진 결과다. 달러 패권에 저항하려는 중·러 중앙은행의 금 매입 확대 등의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금 가격 상승·하락
금값, 연일 최고치

금리·달러화와 음(-)의 상관관계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월 11일(현지 시각) 기준 2월 인도분 국제 금 가격은 온스당 1880달러로, 지난해 5월 9일 이후 8개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값은 2023년 들어 줄곧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2022년 하반기 금은 자산 시장에서 다소 소외됐다. 그랬던 금 가격이 최근 오르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인식이 금융 시장에 확산하면서 금리 고점이 곧 확인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금 가격은 실질금리, 달러화와 역의 상관관계를 보인다. 가령, 실질금리가 상승하면 분기 혹은 연 단위로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단기 채권의 투자 매력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이자를 받아 이를 높은 금리로 재투자할 수 있어서다. 이런 이유로 금 투자의 매력은 감소한다. 2022년 미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선 여파로 달러화가 초강세를 보였고 금 가격은 온스당 1600달러 선까지 추락했다. 2023년 상반기 중 금리가 고점을 찍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이에 선행해 달러 대비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금을 사두려는 투자 수요가 몰렸다는 분석이다.

두 번째는 경기 침체 우려 확산이다. 지난 10여년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금 가격 패턴을 보면 2008년, 2011~2012년, 2020년, 2022년 등의 연도별 구간에서 정점을 찍었다. 당시 금 가격의 선행 요인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투자 심리의 불확실성이 커졌던 때와 일치한다. 2008년은 글로벌 금융위기, 2011~2012년은 미중 무역분쟁, 2020년은 코로나 팬데믹, 2022년은 고강도 긴축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 등이 투자 심리의 불확실성을 잔뜩 고조시켰던 때다.

실제 불확실성이 큰 환경에서 의사 결정을 내릴 때는 모호성이 낮은 선택지가 선호되는 ‘모호성 회피(Ambiguity Aversion)’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게 행태경제학(Behaviour Economics) 선행연구의 지배적인 견해다(엘스버그의 역설·Ellsberg‘s Paradox). 모호성이란 특정 결과가 발생할 확률에 관한 불확실성(Uncertainty)을 뜻한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모호성이 큰 선택지를 고를 경우 상대적으로 덜 유리한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인식돼 이런 선택을 피한다는 것이다. 가령, 해외보다 자국 주식 투자를 선호하거나 경기 불확실성이 커졌을 때 금을 비롯한 안전자산으로 투자 수요가 몰리는 것 등이 이런 의사 결정 행태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더 오를까

“더 간다” 대세지만 금리 변수

관건은 앞으로 금 시세가 얼마나 더 오르냐다. 이를 현 상황에서 단정적으로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현재는 금융 시장에 공포가 확산된 상황으로 금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논리가 힘을 얻는다.

금 가격이 중장기적으로 더 오를 것으로 보는 논거는 이렇다.

금 가격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 요인은 실질금리와 달러화 추이다. 이들은 서로 음(-)의 상관관계를 가지므로, 금 가격이 오르기 위해서는 실질금리 하락과 달러화 약세가 동반돼야 한다. 결국 실질금리 하락 등의 요인이 충족되려면 세계 경제의 총수요 둔화와 이에 따른 경기 침체 가시성이 높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주요 연구기관에서 침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은 금 수요의 구조적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얕은 침체(Shallow Recession) 전망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침체에 빠진 뒤 좀처럼 반등을 하지 못하는 ‘늪지대 침체(Swamp Recession)’, 소득 상위층이 불황의 직격타를 맞는 ‘리치세션(Richcession)’, 침체를 피하면서도 경기 악화에 따른 고통이 장기간 지속되는 ‘슬로세션(Slowcession)’ 등 여러 시나리오가 제기된다.

금 시장의 최대 ‘큰손’인 각국 중앙은행의 전략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러 패권이 흔들리면서 주요 중앙은행은 금 보유를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정세가 또다시 요동쳐 주요 중앙은행의 금 수요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금융 제재 과정에서 막대한 외환보유고가 장부상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러시아 중앙은행은 외환보유고 축적을 멈추고 금과 중국 관련 자산 보유를 늘릴 전망이다. 최다 금 보유국인 중국과 러시아 간 밀월 관계가 심화하면서 이들 국가는 달러 패권에 저항하려는 목적으로 금 보유를 더욱 늘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관측이다.

경기 침체에 대비하려는 서방 중앙은행과 달러 패권에 저항하려는 중·러 간 전략적 연합 등의 복합적 요인으로 이미 각국 중앙은행은 지난해 3분기부터 ‘역대급’ 금 매입에 나섰다. 세계금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은 지난해 3분기 약 400t에 달하는 금을 매입했다. 이는 전년 대비 약 4배 이상 급증한 규모다.

반면, 실질금리 인하가 시장 예상과 달리 매우 더딜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격적인 ‘리쇼어링(기업의 국내 복귀)’ 정책으로 미국 시장에서는 아직 고용과 소비가 경기 침체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2023년에도 금리 인하보다는 4~5%대 금리가 상당 기간 지속되는 ‘피크앤하이’ 패턴이 고착화할 것이라는 인식도 만만찮다.

종합하면, 현재 금 가격은 단기 급등했다는 점에서 가격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추이와 미국 금리 인상 뒤 가격 향방을 살펴 시기를 분산, 분할 매수하는 것이 속 편한 선택지다. 포트폴리오 전략 관점에서 금의 비중은 10% 안팎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 견해다. 김소현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축 통화에 대한 불신에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을 사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금값 전망은 긍정적”이라며 “연말 금값은 온스당 최대 2050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3·설합본호 (2023.01.18~2023.01.31일자) 기사입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