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 78. 낡은 허물을 벗고 재생과 부활을 꿈꾼다, 코브라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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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9.04. 오전 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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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브라 자세는 명문혈을 자극해 인체의 근본적 생명 에너지인 삭티의 순환을 돕는다. 손바닥을 어깨와 일직선이 되게 놓고 코브라가 목을 치켜든 것처럼 고개와 상체를 천천히 들어 올린다. 가능한 한 양발을 모은 후 괄약근을 조였다가 숨을 참은 다음 내쉬면서 자세를 푼다. 시연 임은주.


매끈한 몸을 자랑하고 여러 개의 알을 낳는 뱀은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다. 하지만 갈라진 혀와 독, 차가운 몸, 그리고 징그러운 모습이 신과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 탓일까. 뱀은 애욕과 복수의 화신이나 한 서린 동물로 종종 등장하곤 한다.

뱀을 그토록 싫어하는 것은 반드시 그 독(毒)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웬일인지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신화, 전설, 민담에는 유난히 뱀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징그러우면서도 끌리는 힘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다.

지나친 혐오감 뒤에는 호기심과 관심이 있는 걸까. 뱀은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불사(不死), 재생, 영생의 존재이며 다산성(多産性)이기 때문에 풍요와 재물의 신이며, 생명 탄생과 치유의 힘, 지혜와 예언의 능력, 끈질긴 생명력과 짝사랑의 화신(化身)으로 종종 등장한다.

“뱀의 형상은 단순한 선(線) 모양을 하고 있지만, 움직임에 따라서 여러 가지 모습을 낳는다. 기어갈 때는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곡선을 그리고, 똬리를 틀면 동그란 원이 된다. 늘어나기도 하고 응축되기도 하는 뱀의 형상은 신축자재의 생성 운동을 상징하게 된다. 이 때문에 뱀은 인간에게 있어서 위험한 짐승이지만 동시에 숭앙하는 대상물이 되기도 한다.”(이어령)

성경 내 창조 설화나 인류의 기원에 아담과 이브, 그리고 뱀의 모습을 취한 마귀의 꼬임에 빠져 교만으로 신권(神權)에 도전한 인간은 급기야 선악과를 따먹어, 그 결과 인간의 온갖 고통과 범죄의 시작인 원죄(原罪)를 얻게 된 사실에 대해서도 인식하게 되었다.

한국 설화 속에서 뱀은 인간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는 대리자로서 인간 내면의 여러 요소가 기묘한 동물인 뱀의 입과 몸을 빌려서 나타난다.

설화 속에서 뱀은 은혜를 갚는 선한 존재로, 복수의 화신으로, 때로는 탐욕스러운 절대 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오래 묵은 구렁이 이무기는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고 싶은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기다리는 인내의 상징이다. 또한 저승 세계에서 뱀은 악인을 응징하는 절대자로 나타나며, 악한 사람은 뱀이 되어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뱀은 신의 상징으로 인류 문화사에 가장 일찍 등장하는 동물 중 하나다. 뱀은 이미 구석기 시대에 신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이 많은 구석기 유물들이 증명하고 있다. 신석기시대가 되면 뱀은 대단한 신성을 지닌다. 세계적인 신화학자 캠벨(Joseph Campbell)이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지역에서 뱀은 자연의 신성한 생명의 상징으로 경외의 대상이었다.”(정형진, 바람 타고 흐른 고대 문화의 비밀 중)

고대 힌두교 경전인 탄트라(tantra) 시각에서 뱀은 우리 안에 잠재된 우주 에너지를 의미한다. 이 에너지는 똘똘 감긴 것, 스프링, 용수철이란 의미의 쿤달리니(kundalini)라 부른다. 마치 몸을 똘똘 감고서 잠자는 뱀과 같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뱀은 세 바퀴 반 정도 똬리를 틀고 잠을 자고 있고, 그 입으로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형태이다. 탄트라에서 이것은 시바의 아내인 여신 삭티(sakti)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쿤달리니가 잠들어 있을 때, 우리는 의식이 각성되지 않은 채로 무감각하게 살아가게 된다. 한의학에서 삭티는 정(精)이다. 아사나·호흡·명상 등 다양한 형태로 요가 행자들은 쿤달리니를 일깨워 척추를 통해 정수리 백회(사하스라라 차크라)까지 끌어올리는 시도를 부단히 하는 것이 수행이다.

라오스의 불상들을 보면 뱀이 수호신으로 모두 조각되어 있다. 부처가 똬리를 틀고 있는 뱀 위에 앉아서 명상이나 고행을 함으로써 척추 밑에 ‘코브라의 기운’으로 알려진 뱀의 영적 에너지 즉 쿤달리니 에너지가 깨어난, 빛을 내는 막대기가 정수리를 뚫고 치솟는 것을 불상에서 나타내고 있다.

인도의 전통 놀이 가운데 하나로, 코브라에게 피리 소리를 들려주어 코브라가 머리를 치켜들고 춤추도록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쿤달리니 에너지가 각성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놀이로도 생각된다.

뱀은 또한 성적(性的·sex)인 에너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생식기를 통하여 이성에게 전달되면 생명을 잉태하지만, 상단전 쪽으로 올라가면 영적인 각성을 안겨 준다고 전해진다.

요가는 ‘성(性·sex) 에너지를 성(聖·saint) 에너지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성(性)에서 성(聖)으로 가는 길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어이하랴.

“뱀은 각 우주 시대가 끝나는 홍수에도 살아남는다는 특성이 있다. 새로운 우주가 시작되기까지 태초의 바다 위를 떠다니며, 잠든 비슈누에게 자신의 몸으로 잠자리를 제공할 것이다. 뱀은 홍수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명체에서 ‘끝없는 존재’라는 의미의 아난타(ananta)로도 불린다. 또한 자신의 몸에 이전 세상의 일부를 간직하고 있어서 잔재라는 의미의 세샤라고도 불린다. 적절한 때가 오면 뱀의 몸에 간직한 잔재는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클레망틴 에르피쿰)

신화에서 뱀은 탯줄을 상징하는 경우도 있다. 고대인들이 볼 때 뱀은 땅속의 지하 세계와 땅 밖의 관련 세계를 연결하는 생명줄로 상상했던 것이다.

그리스의 신, 의신(醫神) 아스클레피오스를 상징하는 지팡이에 뱀이 감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WHO 엠블럼, 엠블런스, 의사 가운에 새겨져 있듯이 의학의 상징이 되었다.

그 유명한 라오콘 군상의 조각에서 보듯이 인간을 감아 물어 죽이는 무서운 뱀이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에서는 건강, 불로, 장수, 그리고 불사의 상징물로 존재한다.

이것과 비슷한 것으로 케뤼케이온(카투케오스) 지팡이가 있다. 카투케오스 지팡이는 두 마리의 뱀이 똬리 모양으로 지팡이를 감고 있는 것으로 전령사, 전달자, 심부름꾼의 상징이다. 원래 이 상징은 그리스 신화에서 여신 헤라의 전령사인 여신 이리스의 지팡이에서 유래되었다. 나중에는 제우스의 전령인 남신 헤르메스에게도 이 지팡이가 사용되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 국군 의무사령부, 육군 의무병과의 표장도 두 마리의 뱀이 있는 케뤼케이온을 차용하고 있다.

우로보로스(uroboros)는 자기의 꼬리를 먹는다는 헬라어에서 유래했으며, 그 의미는 ‘나에게 끝은 곧 시작이다’라는 말이다. 이 우로보로스는 힌두교에서는 윤회의 바퀴이자 잠재 에너지라는 의미로서 쿤달리니와 같은 상징을 가진다.

본래부터 신과 우주와 윤회를 상징하는 원(圓)에 대한 로망은 대중문화 곳곳에 드러나 있는데, 특히 자기 꼬리를 먹는 뱀인 우로보로스는 매우 특징적이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쉽게 끌고 있다.

원은 우주자연의 영원 불멸을 상징하는데 고대인들은 인간의 결핍과 불완전성을 절감하며 끊임없이 윤회하고 생성되는 불멸의 도상에서 신적인 무엇인가를 발견하고자 하였다.

뱀이 꼬리를 문 형태를 취한 것은 껍질을 벗으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는 파충류의 특징에서 자신의 삶을 삼키면서 다시 비옥하게 만드는 재생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또한 일찍이 우로보로스가 “새로운 피부를 만드는 능력과 끊임없이 자신을 먹어치우는 뱀”으로 순환을 상징한다고 했고, 뒤랑은 “시간 변형의 상징은 파충류 안에서 다원 결정되는데, 파충류는 스스로 껍질을 벗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융 역시 우로보로스를 “소멸과 생성, 자신의 삶을 삼키면서 비옥하게 하고, 다시 죽인 다음에 새롭게 삶 속으로 가져오는 용(龍)”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우로보로스가 상징하고 있는 이 원은 시간적인 형태의 순환을 공간적인 형태로 현시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공간과 시간 밖에서 공간과 시간을 영원히 만들며 지속시키고 있는 우주 창조자의 현현(顯現)이라 할 것이다.

“뱀이 갖고 있는 독이 악이나 죽음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독은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약이 될 수 있다는 양의성을 지니고 있다.(…)극과 극이 반전되어 독과 약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제시한 파르마콘(pharmakon)의 화두처럼 건강과 질병, 선과 악, 생과 사, 암흑과 광명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이어령)

빛과 그늘은 공존한다. 빛이 있기에 어둠이 있고 어둠으로 인해 빛은 그 존재가 더 선명해진다. 모든 존재는 나름의 역할과 의미를 지니니 쓸모없는 존재란 없다. 이를 제대로 모르는 무지나 선입견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닐까.

플라톤은 ‘파이드로스(phaedrus)’에서 ‘글’을 파르마콘 즉 ‘망각과 치유’로 언급하면서 약(치료제)과 질병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파르마콘(parmacon)’이라고 말한다. 즉 약과 질병은 서로 보충되고 대립되는 것인데 ‘글’은 이러한 모순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이다. 이중성과 애매성을 의미하는 파르마콘은 독이자 동시에 약이며,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독을 가진 뱀 역시 인간을 해하는 죽음의 상징이요, 악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구제해주는 건강과 장수와 재생, 그리고 불사의 힘을 주는 의학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뱀의 독을 채취해 그 종(種)의 해독제는 물론 항암제, 난치병 약 및 화학약품에까지 널리 사용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상징들이며, 상징들 속에서 살아간다(we are symbols, and inhabit symbols).” 에머슨의 말이다.

뱀은 치유와 불사의 상징으로 죄로부터 회복되는 상징을 지니게 되었고,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지지 않으면 안 된다.”(요한3:14)

이뿐만 아니라 정교회의 주교들은 청동의 뱀을 표상하는 지팡이를 권위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모세의 지팡이를 십자가로, 청동 뱀을 예수에 비유한다.

우리 민간신앙에서도 뱀은 한 가정의 재물을 쌓아둔 곳간을 지키는 업으로 숭앙된다. 업구렁이가 나가면 집안이 망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한국의 뱀은 기독교의 사탄과는 또 다른 샤머니즘을 낳았다.

용비어천가에 “뱀이 까치를 물어 나무 끝에 얹으니 성손(聖孫)이 바야흐로 일어나려 함에 기쁜 일이 먼저 있게 되었도다”라고 했듯이 뱀은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 된다.

짜증 한 번 냈다가 축생계로 떨어진 수행자 이야기도 전해진다. 생불(生佛)로 불릴 정도로 덕이 수승했던 스님이 산책 중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어 먼지가 스님을 덮치자 “뭔 고얀 놈의 바람이 이렇게 먼지를 일으키는고” 하며 자신도 모르게 버럭 짜증을 냈는데, 그날 꿈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 그를 경책하니 놀라 일어나려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스님의 몸이 구렁이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일기진심 수사보(一起嗔心 受蛇報).’ ‘한 번 화내면 뱀의 업보를 받는다’는 무서운 가르침이었다.

이 말대로 한다면 아마 세상은 온통 구렁이들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되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말다툼이나 논쟁이나 청문회 등에서 화를 먼저 내거나 흥분하면 거의 수세에 몰린다는 것을 왕왕 접하게 되니 틀린 말도 아닌 듯하다.

수행의 척도는 화(火)를 얼마나 잘 다스리느냐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참 쉽고도 어려운, 단순하고도 복잡한 수행의 길이다.

중국 후한 때 응빈이 한 고을 원으로 있을 때, 어느 날 문안 온 부하직원 두선에게 술을 대접했다. 마침 벽에 빨간 칠을 한 활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잔에 든 술에 뱀처럼 비쳤다.

두선은 오싹 놀랐으나 상관 앞이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억지로 마셨다. 그리곤 그날로 병이 나서 몸져눕게 되었다. 응빈은 병문안을 가서 병이 난 연유를 듣고 집에 와 곰곰이 생각하던 중 벽에 걸린 활을 보고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두선을 불러 뱀이 아니라 활의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얘기해 주었더니 두선의 병이 그 순간 말끔히 나았다고 한다. ‘배중사영(盃中蛇影)’ 이란 ‘잔 속에 비친 뱀의 그림자’란 뜻으로, 병은 마음에서 생긴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서정주 시인이 1936년에 22세 나이로 시인부락에 발표한 ‘화사(花蛇)’는 ‘뱀’을 주제로 하고 있다.

천경자 화백은 20대 후반 매우 충격적인 소재로 30여 마리의 뱀이 뒤엉킨 ‘생태(生態)’를 발표했다. 이 소재를 통해 고통과 질곡의 인생 역정에서 이탈할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중섭이 1954년 그린 ‘해와 뱀’도 시선을 끈다.

전남 보성의 대원사 티벳 박물관 소장 ‘피리 부는 어린 크리슈나’에선 연꽃 위에 서서 피리를 부는 모습으로, 여기에 주인을 보호하는 다섯 마리 코브라가 등장한다.

아울러 파괴와 재생의 신 시바는 역동적이면서도 정적이고, 금욕적이면서도 에로틱하게 묘사된다. 이때 시바는 호랑이 가죽을 입고 뱀을 목에 두른 모습으로 흔히 등장한다.

코브라 아사나를 범어로 부장가 아사나(bhujanga asana)라고 한다. 손바닥을 어깨와 일직선이 되게 놓고, 마치 코브라가 목을 치켜든 것처럼 고개와 상체를 천천히 들어 올린다. 이때 팔의 힘이 아니라 하복부에 집중된 힘으로 행한다. 등뼈를 서서히 젖히면서 경추, 흉추, 요추, 선추까지 차례로 기(氣)의 흐름을 느끼면서 행한다.

치골 및 발끝이 바닥에 닿게 한 후, 그대로 동작을 유지한 채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역순으로 상체를 내린다. 이때 가능한 한 양발을 모은 후 항문의 괄약근을 조였다가 숨을 참은 다음 내쉬면서 자세를 푼다. 상체를 최대한 위로 들어 올린 후 턱은 바짝 당기고 눈은 부릅뜬 채 목표물인 먹잇감을 향하는 코브라의 모습을 취해본다.

양팔을 쭉 뻗고 하는 걸 원칙으로 하나 허리가 불편할 때나 고혈압이 있을 때는 양팔을 반만 펴거나, 팔꿈치를 바닥에 붙이고 한다. 또는 한 발을 옆으로 직각으로 굽힌 아르다 부장가 아사나를 행하거나, 양다리는 쭉 뻗은 채 양손은 뒤로 하여 허벅지나 발목에 닿게 할 수도 있다.

이 자세 실행 시에 허리 뒷부분 요추 3번과 4번 사이에 있는 명문혈(命門穴)에 강한 자극이 오는데, 이곳을 활력과 에너지를 관장하는 생명의 문이라 한다. 이 명문혈을 자극하는 것은 신장의 기운을 도와 인체의 근본적 생명 에너지인 삭티의 순환을 돕게 된다.

이 자세는 허리의 경직을 풀어주며, 가슴의 흉선을 발달시킨다. 정신 집중력과 아나하타 차크라(중단전, 단중혈)를 자극하게 되어, 포용력을 갖춘 넉넉한 성품을 유도하게 된다.

심리적으로 흥분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처지는 날 이 자세를 정성껏 해보기를 권한다. 폐기능도 활성화된다. 임맥을 따라 하단전으로 기를 내려 신장에 자극을 준다.

가슴이 좁거나 상체가 빈약하고 자세가 앞으로 굽은 사람이나, 오래 앉아서 생활하는 사람, 특히 공부한다고 앞으로 몸을 숙이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권하는 자세이다. 임산부는 이 자세를 자제한다.

코브라는 성장하기 위해 수시로 허물을 벗어야 한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 몇 번이나 낡은 껍질을 벗어야 될까? 매번 그것은 작은 부활이며 보다 큰 재탄생이 될 것이다.

뱀은 미끄러지듯 소리 없이 움직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한다. 또한 뱀은 눈꺼풀이 없으니 입을 닫고 산다.

그 모습을 보면 깨어 있는 묵언 수행자의 모습 같기도 하고, 끊임없이 자아성찰과 사유를 추구하는 눈 푸른 납자(衲子)를 떠올리게 한다.

“너무 빨리 내닫거나 느리지도 않고,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는 것을 알아챔으로써, 헤맴(迷妄·미망)에서 벗어난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이.” 수타니파타 사품(蛇品) 중에 나오는 말이다.

지혜와 유혹, 선과 악의 투쟁 등을 역설적으로 나타내는 뱀의 이중성은 우리의 마음속에도 항시 존재한다. 두려움과 욕망의 독이 존재하고 재생과 지혜의 빛이 존재한다. 만약 우리가 욕망의 뱀이 아니라, 내적인 힘과 지혜를 상징하는 뱀의 현명함을 취할 수 있다면, 우리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참된 나(眞我·atman)에게 접근하는 또 다른 길이 되지 않을까.

꾸물거리고 꿈틀거리지만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목표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전진하는 뱀처럼 생(生)의 굴곡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희망 한 자락이 바로 저 언덕 너머에 무지개마냥 걸려 있기 때문이리라.

고대에는 뱀이 현생과 내세, 인간과 하늘을 연결해 주는 무지개에 비유되기도 했다지 않는가.

“노력이 작은 결실을 맺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으로 자신감이 생기고, 그 자신감은 다시 그 습관을 강화해 준다”는 말이 있다.

김연수 작가는 ‘지지 않는 말’ 중에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고 말한다.

‘지속의 힘’만큼 강한 게 또 있을까? 심신의 건강을 위해 쉬지 않고 꾸준히 요가 수련 또는 그 밖에 각자 취향에 맞는 운동을 권한다. 우리의 건강은 행복감을 가장 먼저 만들고 느끼게 해주는 바꿀 수 없는 재산이기 때문이다. “몸은 마음을 돕고, 마음은 몸을 돕는다.” 그래서 성명쌍수(性命雙修) 수행이라고 하지 않던가.

“하려고 하면 방법이 생기고, 하지 않으려고 하면 핑계가 생긴다”는 말이 있다.

‘코브라 자세’로 끝없이 엄습하는 삶의 무게로 인해 웅크렸던 상체를 활짝 뒤로 젖히며, 신이 주신 선물인 오늘 하루, 오늘 현재(present)를 활기차게 맞이해 볼 일이다.



[부장가 아사나/ 최진태]

꿈틀대는 몸통이며 섬뜩한 피부 색깔/날름대는 혓바닥에 진저리를 쳐대지만/개중엔 반려동물로 키우는 자 있다하오

낙원에서 아담이브 추방케 한 원죄 지은/사악한 생물이라 너도나도 손가락질/선악의 분별 능력을 선물한 걸 잊었나요

두 마리 뱀이 얽혀 지팡이 감았도다/평화의 상징이며 의술 치유 뜻한다네/어느덧 헤르메스가 신화 속서 걸어왔군

이집트선 나일강 신 호주에선 바다의 신/인도에선 비슈누를 물 위에서 떠받쳤던/그대들 신령스러운 동물임을 기억하오

자신의 삶 삼키면서 다시금 비옥하게/재생과 순환의 상징 부활의 모습까지/신비로운 예지 통찰력 고대부터 알려졌군

자신의 꼬리일랑 물고있는 우로보로스/나에게 끝은 바로 시작임을 말하는 것/윤회의 수레바퀴며 쿤달리니 상징임

우리 민간신앙에선 불길하다 일컬으며/이따금 복수 화신 행동거지 돌아보게/때로는 은혜를 갚는 영물로도 등장하네

비오는 날 용이되어 승천하는 모습 보소/그 이름 백년 묵은 이무기라 한다지요/인내하고 또 기다린다 집념의 상징일세

집안의 재물일랑 이 몸이 관장하니/업신(業神)으로 모셔져서 그렇게 받들기도/부자 가난 구분하는 말 업 들이고 업 나가고

잘못된 정보지만 암수가 서로 엉겨/48시간 사랑하는 초절륜을 볼라치면/숭상치 않는 범부들 몇몇이나 있을까

치명적 뱀독 속에 감춰진 다이아들/고혈압 치로제며 화장품 항 혈전제/천연자원 고부가 가치 한 순간에 탈바꿈 해

아름다운 장미속엔 가시가 있다 하오/미식가 사로잡는 졸복어엔 맹독 상존/지고의 아름다움 속 지고의 독 공존함을/*“아들이여, 모름지기 그 독을 조심할지어다”

*투르게네프의 ‘첫 사랑’ 중 “아들이여 모름지기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 하라. 그 행복, 그 독을 두려워하라”를 재구성

온갖 장애 걷어내며 굼실굼실 전진하는/목표를 정했으면 무소의 뿔 처럼 간다/닮았네 뒤돌아보지 않는 행자 행태를

기존의 습 허물처럼 훌훌 털고 벗어던져/새 세계로 들어서는 수행자의 뒷모습을/빼닮았네 허물벗는 뱀 그 자태를 보게 되면

바닥에 양손 짚고 상체를 젖히면은/척추의 경락들이 스멀스멀 뚫어지며/치오른 가슴의 열화 산화되며 녹는구려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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