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관세를 발표한 뒤 지난 며칠간 세계 경제는 대혼란에 빠졌죠. 상대국이 보복관세 맞대응을 선언하면서 자칫 1930년 대공황 시절 관세전쟁 같은 재앙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컸는데요. 여전히 불확실성은 남은 상황. 전 세계를 긴장케 한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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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뉴욕증시 마감 뒤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나눴다며 “제안된 관세가 최소 30일 동안 중단될 것”이라고 밝힙니다. 25% 관세폭탄이 시행되기 7시간 전쯤 말이죠.
멕시코와 캐나다 정상은 각각 펜타닐 미국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국경감시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에 약속하고 유예 조치를 얻어냈습니다. 멕시코는 북부 국경에 군인 1만명을 투입하겠다고 했고요. 캐나다는 국경 보안에 이미 13억 캐나다달러를 투입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2억 캐나다달러를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죠.
어떤가요. 좀 굴욕적으로 보이나요? 하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재앙적인 관세전쟁만은 어떻게든 피해야죠. 진짜 25% 관세가 발효되는 상황과 비교하면 이게 훨씬 낫습니다. 당장 주식시장만 봐도 알 수 있죠.
트럼프 대통령은 10% 추가관세를 발표한 중국과도 협상에 나설 거라고 말했죠. 후보 시절 공언했던 ‘중국에 최대 60% 관세 부과’ 얘기와 달리, 10%만 부과하기로 한 것 자체가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던 셈인데요. 물론 그는 이런 협박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것(10% 추가관세)은 단지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중국과 협상을 하지 못한다면 관세는 매우, 매우 커질 것입니다.”
결국 트럼프식 벼랑 끝 전술이 상당히 들어먹히고 있는데요. 1987년 출판된 저서 ‘트럼프; 거래의 기술’에서 그는 자신의 거래 원칙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저는 크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항상 그렇게 했습니다. 저에게는 매우 간단합니다. 어차피 생각할 거라면 크게 생각하는 게 낫습니다.”
글로벌 관세전쟁이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경제 이슈도 그에겐 거래를 위한 수단으로 보입니다.
우선, 그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무려 수입품 1조4000억 달러(약 2052조원)어치에 관세를 부과하려고 했거든요. 이는 트럼프 1기에서 관세를 부과한 외국산 제품(3800억 달러)의 3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게다가 중국은 10%인데 멕시코·캐나다엔 25% 관세를 발표한 것도 놀라웠습니다. 가장 가까운 두 이웃국가가 주 타깃이란 뜻이니까요. ‘불법이민자와 펜타닐 마약의 침략 근절’이라는 모호한 목표를 들고나왔다는 점도 눈에 띄었죠. 목표가 모호하다는 건 관세를 언제까지 부과하느냐는 사실상 트럼프 마음에 달려있단 의미였습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부터 이웃국가에 불만이 컸습니다. 나프타(NAFTA, 북미자유무역협정)가 미국 일자리를 빼앗는 “최악의 협정”이라고 공격했고요. 결국 재협상을 거쳐 이를 한층 깐깐한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로 대체했는데요.
당시 그는 ‘역대 최고의 거래’를 협상했다고 자화자찬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미·중 갈등의 반사이익 덕분에 전 세계 자동차·가전 공장은 멕시코, 배터리 공장은 캐나다로 더 몰렸습니다. 특히 멕시코 경제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 미국 인접국으로 생산기지 이전) 덕을 톡톡히 보며 호황을 누렸죠.
아마 트럼프는 이런 상황이 못마땅했을 겁니다. 미국인에 와야 할 일자리와 투자를 캐나다·멕시코에 뺏기고 있다. 이렇게 그는 판단했죠. 그는 무역을 마치 부동산 개발업처럼 ‘제로섬 게임’으로 봅니다. 모두가 승자가 되는 ‘윈윈’이란 개념은 없이, 승자와 패자를 가르려고만 하는데요. 사실 이런 자유무역 효과를 상당수 미국 기업도 누리고 있고, 그 결과 진짜 이익을 보는 건 미국 소비자라는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그가 생각하는 건 단 하나. 기업이 미국 영토에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들게 하는 겁니다. 그 목표에 방해가 된다면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도 매운맛을 보여줘야 하죠. 그 수단이 바로 25% 관세폭탄이고요. 역사학자 버나드 루이스의 유명한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입니다. “미국은 적으로선 무해하지만 친구로서는 배신적(treacherous)이다.”
일단 멕시코산 아보카도, 캐나다산 방울토마토 같은 식료품은 미국 내 소매가격이 바로 뛰었을 겁니다. 두 나라는 미국 야채 수입의 47%를 차지하죠.
북미 3국이 긴밀하게 얽혀있는 자동차 산업은 혼란 끝에 일시 정지됐을지 모릅니다. 부품 하나를 만드는 데 멕시코에서 캐나다, 다시 미국으로 6번쯤 국경을 왔다 갔다 해야 하기 때문이죠. 캐나다 자동차 협력업체 리나마르의 린다 하센프라츠 회장은 “(관세로 인해) 그저 엄청난 비용이 발생할 뿐이고, 아마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북미에서 자동차 생산이 중단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캐나다 정부는 이미 공언했던 대로 총 1550억 캐나다달러(약 155조원)어치 미국산 제품에 25% 보복 관세를 부과했을 거고요. 어쩌면 멕시코도 비슷한 조치에 나서게 됐을지도 모르죠. 그랬다면 이건 진짜 전쟁입니다.
관세는 그 자체로 부작용이 적진 않지만, 이렇게 상대국이 보복관세로 맞대응하기 시작하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법입니다. 교역량이 위축되면서 모두가 패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1930년 시행된 미국의 스무트-홀리(Smoot-Hawley) 법입니다. 2만개 넘는 수입품에 대해 평균 59% 관세를 부과했고, 곧장 다른 국가들의 보복으로 이어지면서 전 세계 교역량이 4년 만에 3분의 1로 쪼그라들었죠(1929년 82억 4280만달러→1933년 30억 달러). 이번 트럼프 관세를 두고“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전쟁(The Dumbest Trade War in History)”(월스트리트저널 사설), “가장 큰 자책골”(메리 러블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연구원)이란 혹평이 쏟아졌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 최상의 시나리오에서조차 이번 관세폭탄의 여파는 상당할 겁니다. 일단 앞으로 언제 다시 미국 태도가 돌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멕시코·캐나다 진출 기업은 미국으로 생산공장을 옮겨야 할지 말지, 고민이 클 거고요. 무엇보다 이웃나라와의 협상이 끝나면 그다음엔 한국을 포함한 대미 수출국이 타깃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 관세 시한폭탄이 우리에게 날아들지 모르는 상황인 거죠.
불확실성은 기업활동과 경제에 해로운 법입니다. 그리고 아직 트럼프 대통령 임기는 4년이 남아있군요. By.딥다이브
트럼프 시대가 된 걸 실감하는 지난밤이었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에 부과하기로 했던 25% 관세를 한 달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멕시코와 캐나다가 국경 보안과 펜타닐 차단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게 명목상 이유입니다. 누가 힘의 우위에 있는지 확실히 보여주는 트럼프의 승리입니다.
-30년 넘게 자유무역협정으로 긴밀히 통합돼 온 이웃 국가에 고율 관세를 매긴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무역을 제로섬게임으로 보는 트럼프식 사고방식이 드러납니다.
-만약 계획대로 관세가 부과되고 보복관세까지 시행됐다면 그건 북미경제를 수렁에 빠뜨리고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재앙이 됐을 겁니다. 전쟁만은 피하는 게 최선이죠. 다음 관세 시한폭탄의 타깃은 과연 누가 될까, 벌써부터 두렵습니다.
*이 기사는 2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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