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가 상승과 소비 심리 위축에 따라 외식업 경기가 갈수록 악화하면서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11일 서울 신촌 연세로 부근 상업지역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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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상반기 내수 시장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12월 불법 계엄은 소비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영역은 자영업 소상공인이다.
최근 한국경제인연합회가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대상자 72%는 2024년 매출이 직전 연도에 비해 감소했고, 그 하락 폭은 10%가 넘는다고 발표했다. 2025년 전망에 대한 조사에서도 대부분 올해 매출과 순익이 전년보다 더 줄어들 것이며 10명 중 4명은 3년 내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불황의 흔적은 명징하다. 서울 강남, 여의도, 홍대 같은 주요 상권에서도 빈 상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창 손님으로 붐빌 시간에 한산한 매장도 눈에 많이 띈다. 이런 시기에 가장 힘든 업종은 카페와 술집 같은 기호식품 매장이다. 불황에 사람들은 필수적인 소비를 제외하고 지갑을 닫는다.
맥주 업계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1월부터 3월까지 이어지는 계절적인 비수기를 고려하더라도 심각한 매출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를 비롯한 대기업들의 구체적인 실적은 4월 공시자료를 확인해야 하지만 업계를 연결하고 있는 고리를 통해 전반적인 시장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맥주를 만드는 소규모 양조장부터 주류수입사, 도매사 그리고 맥주 펍까지 업계 관계자의 인터뷰를 토대로 현재 상황과 원인 그리고 전망을 들어봤다. 이 사례들이 업계 전부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 5년 이상 업을 지속해 온 전문가들의 생각인 만큼 상반기 대한민국 소비 경제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소규모 양조장
▲ 한 양조장의 모습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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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맥주 양조장의 경우, 전년 대비 올해 상반기 매출은 20~30% 정도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비수기라는 점을 제외해도 도소매 발주가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황의 조짐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A 브루잉 대표는 경기 침체와 불법 계엄을 가장 큰 원인으로 뽑았다.
"고물가와 고이자로 실질 소득이 줄어들어 외식 소비 특히 맥주 같은 기호품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봅니다. 결정적인 계기도 있었죠. 12월에 발생한 불법 계엄입니다. 내란이 소비자들의 지갑을 닫게 만든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조장 입장에서 불법 계엄이 부른 최악의 나비효과는 환율이었다. 환율의 급상승은 그렇지 않아도 30% 이상 상승한 재료비의 불안을 부추겼다. B 양조장 대표는 전년 개발한 신제품이 출고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매출 저하와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했다.
"주류 시장 다변화, 술 먹는 분위기 감소 같은 문화적인 현상도 맥주 소비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렇지만 경기둔화와 가계부채 증가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을 가장 큰 이유로 생각합니다. 경제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누가 소비를 하려고 하겠어요. 더구나 정치적 불안정은 주류 소비를 줄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죠."
지금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모두 뚜렷한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일단 버티면서 품질을 유지하고 정치가 안정되면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A 양조장 대표는 고품질의 대중성을 지닌 맥주를, B 양조장 대표는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맥주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정치적 불안정성의 해소라고 말했다.
주류 유통사와 수입사
▲ 맥주 도매사의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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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나 맥주 펍 같은 유흥시장에 주류를 유통하는 도매사는 현재 시장의 온도가 심각하게 떨어져 있다고 걱정했다. C 주류 전무는 국내 대기업, 수입, 크래프트 맥주로 나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오비맥주나 하이트진로 같은 대기업 맥주는 전년 대비 같은 기간 15% 정도 하락했지만 수입 맥주는 소폭 상승 그리고 크래프트 맥주는 비슷하다고 말했다.
"먼저 가정용 시장은 저희들의 소관이 아니라 제외하겠습니다. 유흥시장은 급격하게 발주가 줄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불법 계엄 이후 급격한 소비 심리 위축이 침체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이후 확실한 변곡점이 생겼거든요. 수입 맥주의 경우, 일본 맥주가 그나마 소폭 상승을 이끌었습니다. 국내 크래프트 맥주는 시장이 워낙 작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신제품들 덕분에 매출이 크게 하락하지는 않았습니다."
향후 매출에 대해서는 올해 상반기까지는 어둡지 않겠냐고 전망했다. 미국에서 파생된 관세 전쟁과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특별하게 세울 수 있는 대안도 없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유통사는 꾸준히 새로운 제품들이 시장에 나와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MZ 세대들을 타깃으로 새로운 디자인과 맛을 갖춘 맥주들이 시장의 자극을 줄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해외에서 맥주를 수입하는 D 주류 수입사는 지난해에 비해 10~15% 매출 하락했다고 전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곳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 부진과 불법 계엄을 매출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지금 불황이 외부적인 면에 있다 보니, 뾰족한 대안 없이 영업과 프로모션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말을 줄였다.
맥주 펍
▲ "2차로 맥주를 드시러 오는 손님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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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펍은 경기침체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최종 소비자와 접점에 있는 펍의 매출에 따라 맥주 양조장, 주류 도매사, 맥주 수입사의 존망도 결정된다. 9년째 맥주 펍을 운영하고 있는 F 대표는 올해 매출에 대한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최소 20% 하락입니다. 불법 계엄으로 작년 연말 특수를 누리지 못한 게 제일 짜증 납니다. 맥주를 파는 입장에서 12월 대목은 1, 2월 비수기를 대비한 보험이거든요. 사회 불안정성 때문에 모두 소비를 줄였습니다. 저희 매장뿐만 아니라 주위 다른 매장도 사정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아직 현재 진행형이고요."
F 대표는 소상공인이 이런 시기에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외부 환경 탓이 큰 만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인건비와 공과금을 줄이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가 소매 영역의 타격을 줄이는 데 가장 중요하지 않겠냐고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G 브루펍 대표는 날씨와 정치적 불안정성이 가장 큰 이유라며 한숨을 쉬었다. 맥주는 날씨를 많이 타는 편인데 올해 2월은 유난히 추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불법 계엄이 소비 경기를 침체시킨 근원 아니겠냐고 일갈했다.
"2차로 맥주를 드시러 오시는 손님이 없습니다. 이렇게 불안한데 누가 즐겁게 술 마시러 나오겠어요. 3월 초까지 매출이 최악입니다. 보통 날씨가 따뜻해지는 3월이면 그래도 눈에 띄게 매출이 오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손님도 없을뿐더러 일찍 귀가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10년 넘게 맥주 펍을 운영하고 있는 H 대표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매출이 줄긴 했지만 타격은 크지 않다고 했다. 활발한 상권에 위치해 있다는 점도 한몫했지만 오랜 업력에서 나오는 경험도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H 대표는 불황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맥주 펍인 만큼 직원들이 전문성을 통해 손님 한분 한분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맥주를 판매하고 있는데, 전문 인력을 구하기 힘듭니다. 경기는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법이지요.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 힘들겠지만 이럴수록 정신을 차리고 그 이후를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맥주 문화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다양한 맥주도 나오고 있고, 40대 이상 손님들도 꽤 늘었습니다. 홍보도 꾸준히 하고 전문성을 갖춘 직원도 키워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일상이 돌아오길 바라며
소상공인으로서 나 또한 불안한 정치 상황이 끝나기를 학수고대한다. 실제 내수 소비는 뉴스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공포는 전쟁이나 무정부상태와 다름없다. 제 멋대로 출렁이는 물가와 환율이 언제 쓰나미가 되어 덮칠까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대안을 세울 수 없는 자영업자들이 겪는 어려움도 맥주 업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제의 25%를 차지하는 바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막지 않으면 대한민국호는 서서히 가라앉을 것이다.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시장 경제 주체들이 안정적으로 일상을 회복할 날이 빨리 오길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