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는 사람은 바보냐”…尹 정부 빚 탕감에 등 돌리는 보수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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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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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조원 규모 새출발기금 논란

소상공인·청년층 재기 목적이라지만
영끌·빚투족이 낸 빚이 공동 책임 돼

'尹 지지' 2030 남성, 공정성 문제 제기
尹 "부실화 전 선제 조치…국가 자산 지켜야" 진화


사진=연합뉴스
“열심히 빚 갚는 사람은 바보입니까.”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사업가 이모(38)씨는 최근 주식이나 암호 화폐에 투자했다 손실을 본 청년들을 구제해준다는 정부 정책에 분노하고 있다. 그는 “한탕을 노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서 투자)과 빚투(빚내서 투자)도 구제해줄 거면 성실히 일하고도 대출금에 허덕이는 우리 은행 이자도 구제해달라”며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에 허덕이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씨 뿐만이 아니다. 서울 강남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방모(52)씨는 “빚을 안 갚고 버티면 탕감받을 수 있는데 누가 앞으로 성실히 빚을 갚겠느냐”며 “정부가 주식과 코인 투자 손실금까지 보전해주는 발상이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이어 “앞으로는 나도 신용이 낮은 동생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게 더 낫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민생경제 활성화 방안의 목적으로 가계부채 및 대출부담 완화에 나서면서, 일부 조치와 관련해 성실히 빚을 갚고 있는 우량채무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윤 대통령을 지지해온 보수성향의 2030남성들은 이같은 정부정책에 분노하고 있다.
◆“나라가 갚아줄게”, 빚투 이자 50% 감면해준다

15일 정부 등에 따르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3일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올리는 빅스텝을 사상 처음 단행했다. 기준금리는 기존 1.75%에서 2.25%로 인상됐다. 이에 따라 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고물가 완화 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전날 2차 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금리 상승기에 대응한 민생안정 방안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문제는 여기에 빚투로 주식이나 암호화폐에 투자했다 손실을 본 청년층 재기를 돕는 청년 특례 프로그램도 포함됐다는 것이다.

대상에 선정된 만 34세 이하 저신용 청년층에게 이자의 30~50%를 깎아주는 것이다. 최대 3년간 원금 상환을 유예해 주는데 이 기간에는 연 3.25%의 낮은 이자율을 적용한다.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나이스 744점, KCB 700점)인 청년이 대상이다.

구체적으로 △저신용 청년 대상 이자 감면(30~50%) △원금 상환유예 기간 중, 저신용 청년 이자율 적용 등이 포함돼있다. 특히 청년들의 신속한 재기를 위해 기존 신청 자격에 미달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이자 감면, 상환유예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또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차 비상경제 민생회의에서 발표된 ‘금융 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 중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도 논란이다. 이 기금은 부실 채권 매입을 통해 채무 조정을 하는 방안인데, 그 과정에서 최대 원금의 60~90%를 감면해주는 파격적인 조치다. 이러한 지원방안을 통해 25만명의 소상공인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윤 대통령과 정부의 이같은 정책에는 그 어느 때보다 청년 세대의 부담이 가중됐다는 위기의식이 깔려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 잔액(1860조원) 가운데 상환능력이 낮은 20·30세대 부채 비중은 27%(508조원)에 달한다. 또 실제 이러한 대출의 상당수가 영끌과 빚투, 가상화폐 등 위험자산 투자를 목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게 공정이냐, 尹에 등 돌리는 2030남성들

하지만 해당 정책이 발표된 직후, 일각에서는 그동안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시민들이 이번 정책으로 심리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번 정책이 구체화할 경우, 차주들 사이에서 ‘빚을 안 갚고 버티면 탕감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청년층들의 경제적 재기를 위해 지원에 국가가 나선 것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영끌·빚투족들이 낸 빚을 성실하게 노동한 다른 사회구성원들이 지는 게 부적절하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특히 이는 공정으로 대표되는 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지지해온 젊은층, 특히 2030 남성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대부분의 보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현재 “이번 기회에 국민의힘 지지를 철회한다”라던가, “이게 공정한 정부 정책이냐” 등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 청년 빚투족과 영끌족을 도와주기 위해 정부가 나선 민생안정 방안에 오히려 공정성의 훼손을 느낀 2030세대가 분노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30세대는 2021년 4.7 재·보궐에서부터 지난 3.9 대선, 6.1 지방선거까지 국민의힘 선거승리의 일등공신이다. 그동안 이들은 민주당 계열 대선후보와 정당후보에 투표했지만 지난해부터는 국민의힘 지지로 옮아갔다. 하지만 최근 이들 연령에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지지율도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윤 대통령도 논란에 대해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청년층 구제 프로그램으로 상실감을 느낀다”는 질문에 “금융 리스크는 비금융 실물 분야보다 확산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며 “완전 부실화가 돼 정부가 뒷수습하기보다 선제적으로 조치하는 것이 국가 자산을 지키는 데 긴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일각의 지적은 이해를 하지만 큰 손실을 입은 저신용 청년들을 구제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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