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양극화, 유권자가 바뀌어야 한다[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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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확증편향으로 믿는 정보만 수용

日방류수 어떤 타협도 만족 불가

반대하면 막을 수 있나 따져봐야

강경노선 유지하는 정당에 환호

黨, 지지층 실망 않게 선명성 우선

유권자 바뀌어야 양극화도 해소


지금 우리나라 정치의 양극화가 심각하다. 선거와 전당대회 등 제도적인 원인은 많이 지적됐다. 그러나 정치 양극화에는 유권자의 책임도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분식점에서 A, B, C 세 사람이 김밥을 먹고 모두 식중독에 걸렸다고 하자. 모두 복통 등 심한 증상을 겪었다. 1인당 위자료 200만 원을 목표로 식당 주인에게 항의하니 50만 원을 제안한다. 소송 불사를 외치니 75만 원으로 올려 주며 더 이상 협상은 없다고 최후통첩한다. A는 75만 원을 받고 주인과 합의했으나, B와 C는 거부하고 소송으로 갔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A는 위자료 소송에 대한 전망을 변호사 친구에게 문의했다. 2년의 소송을 거쳐 100만 원 판결이 예상된다는 답을 들었다. A는 번거로운 소송 후 100만 원보다는 당장의 75만 원이 낫다고 판단하고 식당 주인과 합의했다. 반면, B는 75만 원이 목표 200만 원에 미달하므로 소송으로 가기로 했다. 소송의 예상 판결을 알아보진 않았다. 75만 원을 최후통첩하는 식당 주인이 괘씸하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C는 A와 마찬가지로 소송의 예상 판결에 대해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 문의했다. 많은 조언 중 소송으로 가면 2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한 지인의 말에 솔깃해 소송을 걸었다.

협상을 할 때는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협상에는 상대가 있어 목표의 100% 달성은 어렵다. 적정한 수준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 상대의 최후통첩이 있을 때 협상을 결렬시킬지, 아니면 타협할 것인지 결정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 결정을 하려면 먼저 협상 결렬 시 상황(BATNA)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때 상대의 최후 제안은 목표와 비교해선 안 되며 이 BATNA와 비교해야 한다. 즉, 75만 원이 목표(200만 원)에는 미달하지만, BATNA(2년 소송 후 100만 원)보다 좋으면 A처럼 합의해야 한다.

협상에서 합의를 어렵게 하는 사고방식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B와 같이 타협안을 목표와 비교해 거부하는 유형이다. 간혹 협상 과정에서 생긴 감정으로 인해 타협을 거부하기도 한다. 예컨대 대일 관계에서 우리의 목표는 일본이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하면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해법인 ‘제3자 변제와 한일 관계 정상화’는 분명 우리의 목표에 미달한다. 그러나 이 해법은 협상 결렬 시 상황, 즉 ‘작년의 한일 관계 지속’과 비교해야 한다. 일본의 오염처리수 방류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일본이 오염처리수 방류를 포기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목표를 기준으로 하면 어떠한 타협도 마땅치 않게 된다. 최종 입장을 정할 때는 끝까지 방류를 반대할 경우 어떤 상황이 되는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협상에서 최선을 다하되 목표의 100% 달성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의가 가능하다.

둘째, C처럼 협상을 결렬시켜도 목표를 쉽게 달성할 수 있다고 낙관하면 합의가 멀어진다. 우리는 확증편향으로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를 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타협 않고 버티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낙관하게 된다. 당연 합의는 멀어진다. 민주주의 역사가 긴 나라에선 많은 협상의 전례가 BATNA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그런 경험 축적이 적어 낙관적 예측을 하는 경향이 더 크다. 예컨대 일본의 오염처리수 방류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정할 때는 끝까지 반대하면 우리가 방류를 막을 수 있는지, 국제 관계는 어떻게 될지를 냉정히 검토해야 한다. 이를 알리는 전문가 역할이 중요하다.

B는 타협안이 목표에 미달한다고 거부하고, C는 타협을 거부해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낙관한다. 어떤 타협안도 두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B, C 같은 유권자는 목표 달성을 위해 강경 노선을 유지하는 정당에 환호한다. 그러면 정당은 타협으로 지지층을 실망시키기보다는 끝까지 목표를 향해 달리는 선명한 모습을 보이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합의가 안 된 책임은 상대 정당에 뒤집어씌우면 된다. 정치 양극화의 배경에는 B, C 같은 유권자가 있다. A처럼 BATNA를 냉정하게 예측하고 그보다 나은 타협안은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유권자도 바뀌어야 한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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