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작가가 만들어내는 오일파스텔의 러프한 선은 무심한 듯 하면서도 따뜻하다. 작품 속에 일상적인 풍경을 담아내기도, 까만 밤 속에서 오롯이 내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기도 한다. 작가에게 언제나 위로와 위안이 되었다는 그림은 작가의 손을 통해 우리에게 또 다른 위로를 건넨다.
Q. 작품활동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A.저는 기억이 있을 때부터 계속 그림을 그려왔고, 자연스럽게 미대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그 동안은 순수미술 작가에 대한 로망 같은게 있어서 대학에서도 그런 그림을 배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물론 평면회화 작업도 했지만 현대미술을 접하고 배우게 되면서 ‘과연 그림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그 시기에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평면회화의 한계성을 느끼고 사진이나 영상, 퍼포먼스 작업들로 작업이 확장되어 갔던 것 같아요. 평소 영화를 좋아하는 제가 영상 작업을 시작하면서 스토리와 결합된 영상이 주는 힘에 빠져 졸업 후에는 영화인을 꿈꾸며 영화 미술을 일을 시작했어요. 영화 일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건 제가 미술에 대한 로망이 좌절됐던 경험과 어쩌면 비슷했어요. 그래서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남미여행도 하고 캐나다,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도 하면서 20대의 시간들을 보낸 것 같아요. 그리고 30대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하는 상황에서 그래도 제가 제일 오랫동안 하고, 잘 할 수 있는 ‘그림’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취미미술 화실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그림을 가르치다보니 제 안에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가 생기기 시작해서 ‘나는 어찌됐든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을 표현하면서 살아야하는 사람이구나’하는 깨닫음이 왔어요. 그래서 본격적인 제 작품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Q.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이 많으신데, 그걸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A. 우선 감사한 일이죠. 그 중에서 제 그림을 보고 위로가 된다고 하시는 분들의 말씀이 제일 좋고요, 이런 말을 들을 때, 내가 그림을 그려서 다른 사람한테 먼지만큼의 위로라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Q. 작품 중, 'Deep Night alone' 시리즈를 보면 밤하늘과 함께 항상 그림자가 등장하던데, 이 그림자는 작가님 자신을 표현하신 건가요?
A. 맞습니다. 그림자는 저 자신을 표현한 것이예요. 이 시리즈를 작업할 때,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어요. 우울과 무기력의 시간들이 길어져 긴 슬럼프였는데 그 시간들을 견디다보니 이 시리즈가 나온 것 같아요. 제 고향이 정말 시골인데, 본가에 가면 주로 밤에 산책을 해요. 가로등이 하나 없는 짙은 어둠 속을 걷게 되면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어둡지만 점점 눈이 어둠에 적응하게 되고 밤벌레 소리, 바람소리, 동물의 울음소리들이 들려요. 그 어둠 속에 있는 것이 무섭기도 하지만 굉장히 편안한 느낌을 줬어요. 마치 ‘여기가 내 심연이구나’싶은 깊은 위로를 받았어요. 이런 경험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Q. 작가님 작품의 러프하면서 드로잉적인 느낌이 오일 파스텔을 사용하셔서 좀 더 도드라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오일 파스텔이란 재료를 선택하게 되셨나요?
A. 대학교 1학년 때 동기가 오일파스텔을 사용했는데 호기심에 저도 사서 사용을 해봤는데 처음부터 이 재료가 ‘나와 맞는구나’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어요. 제형이 깊이감이 있으면서도 순간적인 감정을 거칠게 표현하는데 잘 맞더라고요. 처음에는 면을 가득 채워 밀도있게 그림을 그렸었는데 점점 가볍고 러프한 선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오일파스텔로 드로잉적인 느낌의 작업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Q. 작가님이 주로 자연 풍경이나 식물 작업을 많이 하시는데, 보통 직접 보셨던 것을 그리시는 편인가요?
A. 저는 주로 제 휴대폰 사진첩을 많이 참고하는 편이예요. 학교 다닐 때 사진 동아리를 했었어요. 그림을 그리다보니까 사진이 많은 자료로 제공되더라고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눈에 들어왔던 풍경이나 장면들을 찍어두고 나중에 참고해서 그림을 그리곤합니다.
Q. 혹시 작가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공들이셨던 작품이 있을까요?
A. 제 첫 개인전 때 그렸던 그림인데, 어릴 적 제가 살던 집을 그린 작품이 있어요. 저희 부모님도 굉장히 좋아하시는 작품인데, 지금이 이 집이 철거되고 없거든요. 어렸을 때 이 집 담벼락에 접시꽃이 많이 피었었는데 동생들이랑 접시꽃 안에서 놀던 추억이 많이 생각나서 이 그림을 그리면서 많이 행복했어요.
Q. 작가님 작품을 관람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A. 그림에 따라 다르겠지만 ‘위로’라는 큰 맥락을 가져갔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관객이 제가 의도한 대로만 받아들이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저의 의도와 관객 개인의 상상력과 경험이 합쳐져 저의 의도를 더욱 크게 받아들일 수 있고,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작품을 감상할 때 저는 관객들이 저마다의 감정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굉장히 재밌게 느껴지더라고요.
Q. 작가님 소개를 보면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위로를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A. 저는 살면서 살아있음 자체로 위로가 안 되는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저는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일 자체는 누구에게나 녹록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개인인 내가 겪는 일은 결국 나 밖에 모르는 거잖아요. 저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자신을 치유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 같아요.
Q. 추가로 관람객들께 하고 싶은 말씀 혹은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A. ‘Deep Night Alone’ 시리즈는 어둠 속에서 그림자로 나를 마주하는 것을 표현한 작품이에요. 모두에게 심연이 존재하지만, 그 심연을 바라보는 사람은 많이 없다고 생각해요. 보통 그 심연 안엔 내가 피하고 싶은 것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데 살다 보면 그 심연을 바라봐야 하는 순간들이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관람객들이 제 그림을 보면서 각자의 심연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을 거 같습니다.
Revi(박정애)작가님의 작품을 <옐로칩스 마켓>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