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국가핵심기술 보호기간 없애고 매년 재평가…산업계 “제2의 하이디스 사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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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2.07. 오전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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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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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국가핵심기술’ 1~5년 단위 보호기간 폐지
“기술 변화 속도 고려해 매년 연장·해제 여부 결정”
정부 보호막 사라진 기업들 “기술 유출 불확실성”

정부가 1~5년 단위로 설정했던 ‘국가핵심기술’ 보호 기간을 없애고, 매년 기술 재평가를 통해 국가핵심기술 유지 또는 해제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산업계 변화와 기술 진보 속도가 빠른 만큼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는 첨단기술 바구니도 수시로 들여다보고 그 구성을 달리하겠다는 것이 정부 의도다.

그러나 산업계에서는 3년이나 5년 단위로 국가 보호를 보장받아온 국가핵심기술이 매년 평가 대상에 오르면 그만큼 기업으로서는 기술 유출에 대한 위기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국가핵심기술에서 제외한 기술을 노린 외국 기업의 인수합병(M&A) 시도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전경. / 조선 DB

국가핵심기술 의무 보호 기간 삭제…“기술 변화 속도 따라가고자”

7일 정부·산업계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기술별로 1~5년까지 지정했던 국가핵심기술의 유효(일몰) 기간을 아예 없애기로 했다. 국가핵심기술은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해외로 유출되면 국가 안보나 국민 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이다.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원자력·생명공학·수소 등 13개 분야에서 75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다.

지금까지는 국가핵심기술마다 보호 기간이 달랐다. 가령 반도체 분야에서 ‘낸드플래시에 해당되는 적층조립기술 및 검사기술’의 유효 기간은 3년, 원자력 분야에서 ‘원전 피동보조급수계통 기술’의 유효 기간은 5년이었다. 정부는 통상 3개월 단위로 열리는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 검토 과정을 거쳐 유효 기간 만료 기술의 보호 연장 필요성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기간’ 개념을 모두 폐지하고, 국가핵심기술 전체를 매년 재평가해 보호 지속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그간 국가핵심기술 전체 동향을 제대로 추적하지 않고 유효 기간이 끝난 기술 위주로만 다루다 보니 관련 산업과 핵심 기술의 변화 흐름을 제때 따라가지 못했다는 게 정부가 보호 기간 폐지를 들고 나온 이유다.

한 기업 관계자가 폴더블 OLED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연합뉴스

산업부 관계자는 “예를 들어 정부가 A라는 국가핵심기술의 보호 기간을 3년으로 설정했는데, 관련 기술 트렌드가 순식간에 변하면서 불과 1년 만에 A 기술의 보호 가치가 사라질 수 있지 않느냐”며 “시대가 변한 만큼 주요 산업기술의 안보적·산업적 중요도를 매년 따져 (국가핵심기술) 지정 여부를 유연하게 결정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계 “제2의 하이디스 기술 유출 사태 우려”

정부 취지와 달리 산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가핵심기술이라는 든든한 보호막이 사라지면 그만큼 기업은 기술 유출과 같은 리스크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상당수 국가핵심기술의 유효 기간이 3년이나 5년이었는데, 기업 입장에서 보면 ‘적어도 3년 또는 5년 동안은 국가가 우리 기술을 지켜준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며 “매년 평가를 받는 앞으로는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픽=이은현

국가핵심기술 지정과 누락이 매년 반복되는 과정에서 외국 기업의 기술 약탈 시도가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매각 또는 이전 등으로 기술을 수출하거나 외국인이 해당 기업을 M&A하는 경우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디스플레이 업계 한 관계자는 “2002년 중국 BOE가 하이디스를 인수해 글로벌 액정표시장치(LCD) 1위로 뛰어오른 뼈아픈 기술 유출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고 했다.

작년 10월 검찰청이 발표한 산업기술 해외 유출 적발 건수를 보면, 2017년부터 2022년 9월까지 총 112건의 기술 해외 유출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36건은 국가핵심기술 유출이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 피해가 가장 컸다. 지난달 26일에는 특허청 기술디자인특별사법경찰(기술경찰)과 대전지방검찰청이 반도체 웨이퍼 연마(CMP) 관련 기술을 중국에 유출하려고 한 6명을 기소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업계 우려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국가핵심기술 유효 기간이 매년 갱신되면 업계로선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겠지만, 기술 변화 흐름에 실시간으로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측면에서는 평가 주기를 단축할 필요성이 있다”며 “보호 기간 폐지 결정에 앞서 기업들 의견을 폭넓게 들었고, 앞으로도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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