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전부는 아니다. 자녀 수가 준 만큼 부모가 소아 진료에 갖는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아진 것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령 아이를 빨리, 혹은 제대로 봐주지 않는다고 의료진에게 폭언, 심지어 폭행하는 사례가 늘었다. 맘카페 갑질도 무시 못 할 기피 요소다. ‘애가 먹을 건데’라며 없는 메뉴나 공짜 서비스를 요구한 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별점 테러를 일삼아 식당 사장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갑질 사례가 SNS에 자주 등장한다. 소아과 병원에선 ‘애가 아픈데’ 버전으로 바뀌어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영향력 있는 맘카페 회원이라며 좋은 후기를 대가로 진료비를 공짜로 해달라는 등 이런저런 요구를 하다 거절당하면 거꾸로 악성 포스팅을 올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실제로 이런 피해 탓에 소아과를 아예 닫아야 했던 사례를 주변에서 목격하기도 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사명감으로 진료 현장을 지키던 의료진 이탈을 가속화했다.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암 투병을 하며 미숙아를 돌보던 의료진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구속되는 모습을 보면서 다들 '나도 언젠가는 죄인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느꼈다. 천안의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에서 근무하는 한 소아과전문의는 "환아 상태가 안 좋아질 때마다 죄 없이 법적 처벌을 받을까 봐 두렵다"고 했다.
더 이상 소아 진료 인프라가 붕괴하지 않도록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소아 진료 인프라가 붕괴하면 당장 안타까운 어린 생명을 잃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한 번 붕괴하면 재건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등 의료 현장에서 나오는 대안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먼저 소아 가산 수가를 적용해 저수가를 개선하는 것이다. 입원 진료는 100% 인상하고 특히 중증 질환일수록 가산율을 높인다. 전공의 부족으로 대학병원의 진료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입원전담전문의 인건비 지원도 필요하다. 의료붕괴가 이미 시작된 지방에서는 지역 가산 수가를 신설한다. 재원이 문제라는 건 안다. 하지만 MRI 검사 등 비급여진료를 급여화해 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불러온 지난 문재인 정부의 문케어를 중지해 낭비를 막는 등 일부 조정만으로도 일정 부분이나마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동네의원이 안심하고 중환을 의뢰할 수 있는 지역 거점 병원 육성도 빼놓을 수 없다.
다음으로 의료진이 고의적 위해를 가한 게 아니라면 구속수사 및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피해자를 위한 보상재원을 정부가 100% 부담해 분만의료기관의 부담을 줄이는 걸 골자로 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이 최근 통과됐다. 소아과도 여기 포함되면 좋겠다.
일각에서는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행 체제에서는 소아과 전문의를 취득하고도 다른 진료를 하는 의사가 이미 부지기수다. 대한민국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약 2.5명으로 일본 2.5명, 미국 2.6명과 비슷하다. 오스트리아(5.3명)나 폴란드(4.8명)에 비해선 적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의 기대수명이나 암, 뇌 심장질환 사망률 등 주요 의료 지표는 훨씬 앞서있다. 단순히 의료인 숫자만 늘려서 의료 질을 향상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모두 힘든 시기에 상대적으로 돈 잘 버는 의사를 지원해달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기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진료비를 의사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현 건보 체제에선 어쩔 수 없다. 추후 수가 조정을 다시 하더라도 급한 불은 꺼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아무도 소아과 의사를 하지 않으려는 지금의 상황은 코로나보다 더한 위기상황이다. 그야말로 나라가 소멸할 수 있다. 근본적인 초저출산에 의한 인구절벽만큼이나 귀한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인프라 붕괴를 그대로 두면 대한민국은 망한다. 나라를 지킬 사람이 없는데 국방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대한민국 사람이 소멸하고 있는데 이념이고 정당이고 다 무슨 소용인가? ‘망해야 정신 차린다’는 말은 그만하자. 어떻게 세우고 발전시킨 나라인가. 또 얼마나 소중한 어린 생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