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종근, 검사 때 자신이 수사·기소한 ‘코인 다단계’ 사기범 2명 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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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4. 오후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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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은 대검 형사부장 때 수사 관여한 ‘브이글로벌 사건’ 횡령범

다단계·유사수신 사건 분야 1급 공인전문검사(블랙벨트)로 인증받았던 이종근(사법연수원 28기) 변호사가 검사 시절 자신이 수사하고 기소했던 ‘코인 다단계 사기’ 사건의 일당이 저지른 다른 사건을 변호사 개업 후 수임했던 것으로 4일 전해졌다. 검사 시절 조사실에서 만난 피의자들을 퇴직 후 의뢰인으로서 다시 만난 것이다. 법조인들은 “직업 윤리를 저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1번 후보인 박은정 전 부장검사의 남편이다.

박은정 전 부장검사, 이종근 변호사 /조선DB

이종근 변호사는 지난 2016년 1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수원지검 형사4부 부장검사로 근무했다. 그 직후 그는 문재인 정부 때 법무부 정책보좌관으로 발령나 ‘가상 화폐 대책 태스크포스’ 실무 총괄을 맡았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 변호사는 수원지검 형사4부 부장검사이던 2016년 6월 ‘ACL 코인’ 업체 회장 엽모(57)씨와 계열사 부회장 곽모(52)씨 등을 구속 기소했다. 이들 일당은 2015년 9월~2016년 1월 “ACL 코인을 구입하면 6개월 만에 5배의 수익을 보장해주겠다”며 무등록 다단계 조직을 통해 피해자 수백 명에게 58억원을 받은 사기, 유사수신 등 혐의를 받았다. 일당이 만든 ACL 코인은 현금 환전과 유통이 불가능한 가짜 코인으로 조사됐으며 이들의 지급보증서도 허위인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엽씨와 곽씨는 각각 징역 4년 6개월, 징역 2년을 2017년 9월 대법원에서 확정받았다. 이 사건의 판결문에는 이 변호사가 엽씨와 곽씨를 직접 기소한 ‘주임 검사’라고 나온다.

수원지검 형사4부는 재판 진행 도중 엽씨와 곽씨의 다른 범행을 찾아내 2017년 3월 추가 기소하기도 했다. 엽씨는 비슷한 수법으로 코인 구입 비용, 사업 투자금 등 명목으로 23억 여원을 추가로 받아낸 혐의 등을 받았다. 곽씨는 2013~2014년 “온라인 게임 작업장 운영 수익금 등을 지급하겠다”며 1억여 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 등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2018년 엽씨와 곽씨는 각각 징역 7개월, 5개월을 추가로 확정받았다. 엽씨와 곽씨를 추가 기소한 주임 검사는 이 변호사가 아니라 당시 수원지검 형사4부 소속 다른 검사였다. 그러나 이때도 이 변호사는 수원지검 형사4부 부장검사로 추가 수사와 기소를 지휘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이 변호사는 작년 3월 변호사로 개업한 뒤 엽씨와 곽씨의 또다른 ‘코인 다단계 사기’ 관련 사건을 각각 수임했다. 엽씨는 작년 6월 경남 창원에서 ‘코인 다단계 사기’ 사건으로 또 구속기소됐다. 엽씨는 지난 2022년 3월부터 10월까지 상장 가능성이 거의 없는 코인으로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피해자 6600여 명으로부터 1100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변호사는 엽씨가 기소될 때부터 사건을 수임했다가 작년 말 사임했다고 한다. 이 재판은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다.

곽씨도 피해 액수 2조원대 ‘브이글로벌 코인 사기 사건’의 범죄수익 횡령범으로 작년 7월 구속 기소됐다. 곽씨는 브이글로벌의 범죄 수익에서 나온 109억원으로 계열사를 운영하면서 2021년 2~4월 허위 물품 거래를 통해 63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변호사는 곽씨 사건을 수임했고, 작년 12월 곽씨는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에 대한 본지 보도가 나온 뒤인 지난 2일 이 변호사는 사임서를 제출했다.

앞서 곽씨는 이 변호사가 대검 형사부장(검사장) 재직 시절 보고받고 지시했던 ‘브이글로벌 코인 사기 사건’의 일당 중 한 명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 사건은 2021년 경기남부경찰청이 수사하고 수원지검이 지원했다. 브이글로벌이 발행한 코인 ‘브이캐시’에 투자하면 300%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모집했는데 피해자가 5만여명, 피해액은 2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 사건의 주범인 대표 이모씨는 2021년 7월 기소돼 징역 25년이 확정됐다.

2021년 브이글로벌 사건은 중요 사건으로 취급돼 대검 형사부가 직접 챙겼다고 한다. 이종근 당시 형사부장은 형사부 검사를 통해 수원지검에 ‘경찰에서 압수 수색 영장 등을 신청하면 요건을 엄격히 따지지 말고 얼른 청구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으며, 수원지검은 2021년 4월 경찰이 브이글로벌 범죄 수익에 대한 몰수 보전을 추진하자 이에 대한 지원 상황을 대검 형사부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는 2020년 8월부터 2021년 6월까지 대검 형사부장을 지냈다.

수원지검이 2016년 6월 20일 'ACL 코인 다단계 사기 사건'을 기소하면서 외부에 배포한 공식 보도자료. 이 사건은 이종근 변호사가 당시 수원지검 형사4부 부장검사로 수사하고 기소한 것이다. /수원지검 홈페이지

법조계에선 “이 변호사가 검사로서 직접 수사하고 기소했던 피의자를 변호사 개업 후 변호하는 것은 직업 윤리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퇴직 전 1년 동안 근무한 국가기관에서 처리한 ‘사건’을 퇴직 후 1년 동안 수임할 수 없도록 했다. ‘전관예우’나 ‘법조 비리’를 막차는 차원이다. 이 변호사의 경우에는 퇴직 전 근무한 검찰에서 처리한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변호하는 것이라 변호사법 위반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한 법조인은 “피고인을 변호하는 게 변호사의 의무라곤 하지만 이 변호사처럼 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는 처음 본다”며 “이 변호사가 후배 법조인들을 볼 면목이 있겠나”라고 말했다. 검사 시절 다단계 수사 전문가로 관련 피해를 근절하겠다고 했던 이 변호사가 22억원을 받고 다단계 업체 휴스템코리아를 변호했던 것도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종근 변호사는 이날 오후 4시 23분 본지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로 (연락)주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본지가 ‘수원지검 형사4부 부장검사 재직 때 수사했던 ACL 코인 사건을 아느냐’고 묻자 이 변호사는 “그게 무엇인지요”라며 “(당시 수원지검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찾아보겠다”고 답했다. 본지가 재차 ‘엽모씨와 곽모씨를 아느냐’고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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