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지방 총각들’도 가정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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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2. 오후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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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일 하면서 만난 또래들 모두 결혼하고 싶어 했지만…
퇴근해 현관문 여는 순간 미소로 맞아줄 가족 있었으면

청년이 지방을 떠난다. 왜? 일자리가 없으니까. 서울로 올라와 시도해본 실험이 있다. 일자리 정보 사이트 워크넷을 통해 구직 신청을 하는 것. 창원에선 용접 일자리 알선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서울은 과연 어떨까. 결과는 놀라웠다. 문자함으로 한 주에 두 번꼴로 일자리 정보가 꽂혔다. 경기도 화성과 평택 쪽 공장은 조건이 지방보다 훨씬 좋았다. 연봉 최소가 3500이고 최대 4800까지 써놓았다. 대다수 창원 공장에서 연봉 3500은 언감생심이다. 일자리를 얻을 기회와 액수, 성장 기회며 교통마저 몽땅 수도권이 우위였다.

이렇듯 큰 격차를 감내한 채 ‘지방 총각’으로 남는 이유란 대체로 비슷하다. 인간관계를 끊어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방의 네트워크는 몹시 좁고 깊다. 아무리 멀어도 한 다리 건너면 다 이웃이다. 오랫동안 사귄 친구며 형님 아우를 두고 떠나기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소중한 인연의 으뜸은 단연 가족. 아무리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이라 한들 지방엔 아직도 가족주의가 짙게 남아있다. 가족주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지방 총각’의 최종 목표는 가정의 재창출, 부모에게 손주를 보여주는 일이다. 빠르게 취업할수록 이 욕구는 더 강해진다. 공장일 하면서 만난 또래 대다수가 결혼을 생각했다. 작년 폴리텍대학교 학생들과 좌담회를 했을 때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참석한 남성 7명 중 7명 모두가 결혼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지방 총각들’의 목표는 언뜻 보면 아주 허황돼 보이진 않는다. 지방은 뭐가 됐든 일단 물가가 싸다. 빈손으로 자기 집 마련 또한 불가능하지 않다. 안정의 최소 요건은 쉽게 갖출 수 있다. 하지만 부모 세대가 당연한 듯 이루어왔던 이 목표는 지방의 젊은 세대에겐 장래 희망 같은 꿈이 됐다. 일단 지방에는 또래 여성이 별로 없다. 제조업에 몰아주었던 산업 구조는 여성 일자리의 소외를 불렀다. 청년들의 지방 이탈 문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그 와중에 계속 기울어지는 성비 불균형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성비뿐만 아니라 인구 수 자체가 적으니 이성끼리 만날 기회 또한 적다. 어찌 마음 맞는 사람을 찾아 혼인에 성공해도 아이 낳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맞벌이 부부가 이렇다 할 시설 없는 지방에서 아이를 키우는 건 난망한 일이다. ‘지방 총각’들도 이 사실을 잘 안다. 그런데도 왜 가정을 이루기를 원하는가. 공장 다닐 적 결혼한 친구들이 꼭 받는 질문이 떠오른다. 결혼 왜 했냐. 그 누구도 이유를 매끄럽게 설명하진 못했지만 핵심은 같았다. 가장의 책임을 짐으로써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

‘지방 총각들’ 장래는 썩 밝지 않다. 이들 대다수가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노동자다. 이들의 신분 상승은 요원하다. 쇠락해가는 지역과 닫힌 정규직 등용문이 세월과 함께 압박해온다. 절대 쉽지 않은 삶이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의지를 다잡게 해준다. 누구보다 익숙하며 신뢰할 수 있는 이 존재는, 무거운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게 만든다. 자기 자신을 건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에 가족주의는 낡아빠진 삶의 방식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지방에도 역시 개인주의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그러나 계급 이동 사다리가 사라진 지난한 현실 속에서도 지방 총각들은 가정을 꿈꾼다. 내 차를 타고 퇴근해, 내 집의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나를 맞이할 아내와 아이들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면서.

[천현우 alookso 에디터. 전 용접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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