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편 표류와 현역 의원 책임[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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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훈 前 국회입법조사처장, 前 홍익대 법대 교수

제22대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내년 4월 10일에 치러질 총선이 채 6개월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도 선거제도에 관한 내용은 확정된 게 없다. 국회는 지난 4월 나흘간에 걸쳐서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도 개편안을 논의하기 위해 전원위원회를 20년 만에 의욕적으로 열기도 했으나, 이후 진척된 것은 하나도 없다. 공직선거법 제24조의2 제1항에서는 국회가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는데, 자신들이 정한 일정을 스스로 지키지 않는 것이다.

이번 선거제도 개편에서 확정해야 할 일은 여러 가지다. 우선,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구를 지역구의 인구 변화를 반영해 조정해야 한다. 또한,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구를, 현행대로 소선거구제로 할 것인지 아니면 중대선거구제로 변경할지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선거구를 현재와 같이 전국으로 할 것인지 권역별로 할 것인지, 비례대표와 지역구를 (준)연동형으로 할 것인지 병립형으로 할 것인지도 확정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국회의원의 정수를 늘릴 것인지 축소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이 모두가 간단치 않은 사항이다.

선거제도가 확정되지 못하고 계속 표류하는 동안,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후보들은 자신의 선거구가 어디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는 슬픈 현상이 발생하게 되며, 유권자들도 자신의 지역구에 어떤 후보가 출마하게 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선거 일이 임박해서 확정될수록 기존 국회의원들은 정치 신인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선거에서 유리하게 된다. 인지도와 지명도 면에서 현역 국회의원들이 정치 신인들에게 앞서기 때문이다. 정치 신인과 현역 국회의원(정치인) 사이에 불공정 경쟁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선거제도가 확정되지 못하고 표류하는 데 따른 불이익과 고통은 오로지 정치 신인과 유권자들의 몫이 된다.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국회의원 선거는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해 4년 동안 입법권을 행사할 국민대표를 선출하는 행위다. 그런데 지난 4년 동안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대신해서 입법 활동을 열심히 잘 해왔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국회의원들이 각종 특권은 다 누리면서 정작 국리민복을 위한 입법을 위해 밤낮으로 고뇌하며 입법 활동을 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현역 의원들을 교체하고 싶다는 국민의 욕구가 대단히 크다. 가능한 한 선거제도가 조속히 확정돼야 하는 이유다.

선거제도가 확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여당과 야당 어느 쪽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각 당의 내부 문제는 뒤로하고, 여야가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확정에 나서야 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의 선거제도 개편에서는 정해야 할 사안이 많다. 따라서 이견이 심한 부분은 현행대로 하고, 여야 간에 타협이 가능한 부분을 추려내서 타결지어야 한다. 하루속히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다시 가동해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확정하기를 고대한다. 적어도, 여야 현역 국회의원들의 ‘이권 카르텔’이 작동해 선거제도 개편이 표류하고 있다는 의심은 받지 말아야 한다.

임종훈 前 국회입법조사처장, 前 홍익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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