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는 인도 후기대승불교의 뛰어난 불교사상가인 샨타라크쉬타의 사상과 그 사상형성의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샨타라크쉬타의 주저 』중관장엄론자주(中觀莊嚴論自註)『(이하 』중관론『이라 표기)의 성립에는 』이제분별론세소(二諦分別論細疏)『(이하 』세소『라고 표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이 』중관론『과 』세소『의 관계가 중요한 것은 인도 후기중관파의 역사에서 절대적인 중요성을 가진 샨타라크쉬타의 사상배경이 』세소『의 존재로서 해명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소『를 해명하는 것은 오히려 샨타라크쉬타의 사상을 보다 분명히 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샨타라크쉬타의 사상배경을 해명하는 것이 그의 사상적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일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일다성증인’이라는 불교역사상 불후(不朽)의 정리를 명확히 제시한 최초의 인물이며, 7-8세기 인도의 모든 사상을 아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섭진실론『과 같은 방대한 저서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티베트에 불교를 전한 최초의 인물로서 따라서 그의 사상은 티베트에서 오랫동안 전승될 수 있었지만, 이런 의미에서 그간 도외시된 』세소『에 대한 연구는 티베트에서 샨타라크쉬타에 대한 전통적 이해에도 적지 않는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불교사상의 역사에 있어 찬란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샨타라크쉬타의 사상 이해에 이 』세소『에 대한 연구는 그의 사상 형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본서는 그와 같이 불교사상 중요한 위상을 갖는 샨타라크쉬타의 사상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특히 』세소『와 관련한 사상형성 내지 후대의 사상영향 등 다각적인 입장에서 그의 사상을 고찰할 것이다.
◈ 주요 내용
본서는 인도 후기대승불교의 대표적 사상가인 샨타라크쉬타(Santaraksita)에 의해 저술되었다고 하는 』세소『에 대한 연구로서, 나아가 샨타라크쉬타의 주저인 』중관론『과의 사상적 관련성을 고찰한 것이다. 샨타라크쉬타는 자신의 』섭진실론(攝眞實論)『에서 인도의 모든 철학을 비판적으로 집성하고, 주저인 』중관론『에서는 인도 불교의 모든 사상을 중관의 이제설(二諦說)에 근거해 비판적으로 종합하고 있다.
』중관론『이 ‘이일다성(離一多性)의 증인(證因)’에 의해 일체법이 무자성인 것을 이제설에 의거해 밝히고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으로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형상(形象)에 관한 논의이다. 샨타라크쉬타는 형상과 지(知) 혹은 식(識)의 관계를 중요한 고찰의 대상으로 삼아 유부, 경량부, 유가행파 등을 비판해 간다. 이 형상에 관한 논의에 대하여 후대의 사람들은 샨타라크쉬타를 형상진실파(形象眞實派) 또는 형상허위파(形象虛僞派) 등으로 다양하게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형상과 관련한 그의 사상은 어떠한 연유로 확립되었고, 아울러 』이제론『에는 형상에 대해 어떠한 서술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들은 저자로 하여금 』세소『를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형상론을 중심으로 하는 샨타라크쉬타 사상의 배경을 더듬어보는 것도 본서의 목적 중의 하나이다.
이 형상에 대한 논의가 샨타라크쉬타의 사상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중관론『은 그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근본목적은 이제에 관한 올바른 설정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 형상에 대한 논의도 ‘진실에 있어서’ 행해지는 것으로, 따라서 무자성의 논증도 실은 그 ‘진실에 있어서’, 즉 승의(勝義)에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무자성의 논증을 승의라고 설명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제설이란 나가르주나의 』근본중송『에서 명확히 제시된 이래 오랜 기간 다양한 해석이 전개되어진 것이다. 그것을 샨타라크쉬타가 』중관론『에서 새롭게 논하고 엄밀하게 정리한 것은 역시 이전의 이제설에 대하여 어떤 비판의 입장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중관론『 자체로서는 그러한 배경이 보이지 않더라도, 』세소『에서는 그러한 배경을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즈냐나가르바의 』세소『가 그 이름에서 보이듯이 이제에 대한 올바른 설정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그 샨타라크쉬타의 주석서에 이제의 배경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제에 관한 』세속『의 설명과 』중관론『의 이제설과의 관계가 명확히 되면 샨타라크쉬타의 이제설의 배경도 자연히 설명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