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병역의 권리'와 여성지원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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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1.16. 오전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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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인구급감 전망과 함께 여성징병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나 노르웨이의 사례도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병역제도의 변화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징병제 도입에는 저항감이 클 수밖에 없고 자발성이 없는 징병이 국방력 강화에 효과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현대 전쟁은 병사들의 자발성이 필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병역을 '의무'로 보는 여성징병제보다 '권리'로 보는 자발적 여성지원병제를 우선 논의해보는 것은 어떨까.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혁명 프랑스는 공화정에 반대하는 유럽 전체 왕정에 맞서 전쟁을 치렀고 연전연승을 거뒀다. 나중에 영국과 러시아에 의해 팽창이 겨우 저지됐을 정도로 혁명 프랑스 군대는 강했다. 프랑스 군대가 강했던 것은 무엇보다 공화정 설립으로 프랑스인들이 애국심을 가진 '국민'이 됐기 때문이다. 전투방식의 혁명적 변화가 공화정을 도왔다.

과거에는 총을 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총구에 화약을 넣은 후 총알을 재고 부싯돌로 불을 붙여 총알을 발사했다. 총알 한 발을 발사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과거에는 오랫동안 엄격한 군기 속에 훈련된 베테랑 용병들이 전투의 주역이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군인이 된 용병은 막상 전투에 투입되면 전장이탈, 즉 탈영의 위험성이 컸기에 용병부대는 오와 열에 맞춰 속보로 행군하는 전투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전후로 전쟁기술에 혁명적 변화가 생겼고 총알을 재고 발사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제 총알이 쏟아져 날아오게 됐고 이런 상황에선 오와 열을 맞춰 행진하는 전투방식으론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병사들이 흩어져 몸을 낮춰 각개전투를 치르고 전투가 끝난 후 재집결하는 방식을 택해야 했다. 하지만 애국심이 없는 용병들로는 이러한 전투를 해낼 수 없었다. 전시에는 탈영이 그들의 '합리적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용병과 달리 '국민'의 지위로 올라선 프랑스 사람들은 애국심이 있었기에 탈영 없이 각개전투를 해냈고 용병군대엔 금기였던 야간전투, 추격전도 해낼 수 있었다. 병사의 자발성은 전투의 필수요소가 됐다.

자발적 병역 참여에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강제징집은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자발적인 여성지원병제를 우선 논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지원병제를 도입하더라도 남성과의 신체상 차이를 감안해 여성들에게 어떤 임무, 특히 어떤 전투임무를 맡기는 것이 좋을지 새 제도를 실시하며 신중히 검토해나가야 할 것이다. 군대의 약화로 이어지는 제도를 도입해선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장교와 부사관엔 이미 여성들이 진출했지만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나라에 봉사'하기 위해 청춘의 귀한 시간을 병영에서 보내고 전시에는 목숨을 바치는 것까지 각오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르다. 나라는 이 숭고한 봉사와 희생에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이고 병사 본인에게도 큰 긍지가 될 것이다. 인구급감의 시대를 맞아 이러한 병역의 '권리'를 여성들에게도 개방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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