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벤츠도 넘보는 현대차 '비밀 기지'… 친환경차 잘나가는 이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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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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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기아 수소·전기차 개발 산실 '남양연구소'
전기·수소 상용차 환경풍동시험장… 전 세계 유일
전기차 성능 높이기 위한 극한의 시험·연구 시설
현대차 남양연구소 상용환경풍동실에서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의 유동가시화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그룹
[데일리안 = 편은지 기자] 뜨거운 여름철 동남아지역 도로 한복판. 무더운 열기와 높은 습도 탓에 뜨거워진 바람을 뚫고 거대한 수소전기트럭 한 대가 홀로 내달린다.

이 장면의 배경은 놀랍게도 한 연구소 건물 안이다. 실제로 구현하려면 승용차도 아닌, 거대한 수소 트럭을 동남아에 가져다놓아야 했겠지만 이 곳에선 가벼운 버튼 조작만으로 실제 상황이 된다. 지난 27일 찾은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 '상용 환경풍동시험장'에서다.

현대차 남양연구소에 위치한 '상용 환경풍동시험실'은 이름 그대로 다양한 환경에서 상용차의 풍동시험을 하는 곳이다. 실내 온도를 –40℃~ 60℃까지, 습도를 5%~ 95%까지 조절할 수 있어 세계 곳곳과 극한 환경까지 재현이 가능하고, 3.3m의 대형 팬으로 시속 120km에 달하는 기류도 만들어낼 수 있다.

동남아 기후로 설정된 상용 환경풍동시험장으로 들어서자 후덥지근한 열기가 훅 끼쳐오며 숨이 턱 막혔다. 시험장 내부를 36℃로 설정해둔 탓이다.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에은 지정한 속도에 맞게 뒷바퀴가 빠르게 굴렀고, 트럭 정면에 설치된 거대한 팬에서는 속도에 맞게 거센 바람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동남아 지역에서 실제로 달리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구현한 것이다.

풍동장은 글로벌 자동차업체 연구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시험장으로, 대형 송풍기로 바람을 발생시켜 차량의 공기저항력을 파악하기 위한 시설이다. 주로 공기저항과 소음을 측정해 차량의 연비나 방음효과를 개선하는 데 사용된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상용환경풍동실에서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의 유동가시화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그룹
하지만 현대차 남양연구소 내 상용 환경풍동시험장이 특별한 건 이 시험장 안에 서있는 차량이 수소전기트럭이라는 점이다. 내연기관과 달리 가스를 주입해야하는 만큼 폭파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거대한 차체를 수용해야하는 것은 물론, '환경 풍동장'이라는 이름처럼 다양한 주행 환경까지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현대차 상용 환경풍동시험장 곳곳에는 수소·전기 상용차에 최적화된 설비가 갖춰졌다. 후륜구동을 기본으로 하는 상용차 특성상 앞바퀴가 고정된 채 뒷바퀴만 다이나모 위를 빠르게 달리고 있었는데, 이 앞바퀴를 자동으로 고정시키는 시스템은 미국의 BEP사에 현대차가 최초로 아이디어를 제공해 탑재하게 됐다고 한다.

이강웅 현대차 상용 연구개발팀 책임은 "앞바퀴를 잡는 시스템을 장착하는 데는 반나절씩 걸린다. 연구기관들은 일주일에 한 두번정도 시험하기 때문에 장착하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지만, 저희는 하루에 두 세번도 시험을 해야한다"며 "다양한 차를 교체해가며 시험한다 해도, 앞바퀴 시스템을 장착하는데는 5분이면 완료된다"고 말했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양연구소에만 마련된 장치도 있다. 매연 대신 물과 수증기가 배출되는 수소트럭 특성을 고려해 구비된 후처리장치다. 영하 20~30도 조건에서 시험시 수증기와 물이 배출되면 그대로 얼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임은 "벤츠가 세계 최고라고 하지만, 벤츠에도 이런 장비는 없다. 내연기관 상용차용은 있을 수 있지만, 친환경 차에서는 없다"며 "저희 상용환경시험동은 친환경차로도, 내연기관으로도 모두 개발할 수 있는 전세계 유일한 상용차용 시설이다보니 각국의 기관에서 많이 방문하기도 한다"고 했다.

상용시스템시험동에서 로봇팔을 이용해 쏠라티의 개폐내구성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그룹
환경풍동시험장이 있는 상용시스템시험동에서는 풍동시험 뿐 아니라 차량 개발 및 평가에 필요한 300여가지 시험도 진행된다. 승용차 대비 주행거리가 긴 상용차 특성상 24시간 내내, 몇 달씩 시험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로봇 등 최첨단 시스템이 대거 동원된다.

풍동시험장을 거쳐 로봇시험실에 들어서자 로봇 팔이 차 문을 일정한 강도로 열고 닫기를 반복하며 부품의 내구성을 시험하는 테스트가 진행 중이었다. 문을 여닫는 강도는 실제 사람의 힘과 동일하며, 충분한 내구성 데이터 확보를 위해 로봇이 24시간 내내 몇 달간 시험을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 상용시스템시험동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시험은 이처럼 필드 조사 결과에 기반해 실제와 비슷한 조건으로 진행된다.

조향∙현가 시험 구역에도 유압 액추에이터로 구동되는 육중한 로봇이 시험장 한쪽에서 커다란 굉음을 내며 전기버스 일렉시티 서스펜션의 내구성을 시험하고 있었다. 로봇이 타이어에 직접 하중을 가하며 다양한 방향의 움직임과 회전을 구사할 수 있어 혹독한 상황을 가정한 테스트까지 가능하다.

▲ 전세계 '올해의 차' 휩쓰는 비결… 전동화 시험센터

2024 월드카 어워즈, 북미 올해의 차, 유럽 올해의 차, 2024 독일 올해의 차, 2024 영국 올해의 차, 2024 레드 닷 어워드, 2024 iF 디자인 어워드, 한국자동차기자협회 및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가 각각 주관한 ‘2024 올해의 차’.

올해 아이오닉 5, 아이오닉 6, EV6, EV9 등 현대차그룹 전기차들이 이름을 올린 각종 어워즈다. 수십개의 어워즈에서 수상을 한 지난해 이후 올해에도 글로벌에서 현대차, 기아의 전기차를 지치지않고 주목하고 있다.

핵심에는 남양연구소 내 위치한 전동화시험센터가 있다. 현대차그룹의 전동화 체제 전환에 따라 기존 파워트레인 개발 조직이 전동화 조직으로 개편된 곳이다. 이곳에서는 신차가 양산에 이르기 전까지 충분한 성능 개발을 통해 EV 품질을 개선하고 확보하는 활동을 담당한다.

전기차 동력계 4축 시험실에 아이오닉5 차량이 올라가 있다.ⓒ현대차그룹
전기차 성능의 중심인 모터, 인버터, 변속기 등을 평가하는 동력계 실험실로 들어서니 좌우에 위치한 여러 개의 시험실 유리창 너머로 ‘위이잉’ 대는 모터 소리가 들려왔다. 총 3곳으로 이루어진 시험실 내부에는 모터와 인버터를 측정하는 커다란 장비들이, 그리고 한쪽에는 현대차 아이오닉 5 차량이 장비에 맞물려 있었다.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은 EV 핵심 구동계인 모터와 인버터의 성능을 사전 개발하고 실차 효율을 평가해 전기차가 최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이다. 다양한 상황과 조건을 모사해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신속한 원인 파악과 개선으로 EV의 품질 제고 및 강건화를 가능하게 한다.

동력계 장비의 개수에 따라 크게 1축과 2축, 4축 동력계 실험실로 나뉘는데, 1축, 2축 실험실에서 모터와 인버터, 감속기, 구동축 등의 주요 동력계 실험이 이뤄지고 나면 4축실험실에서 실제 차량을 직접 구동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4축 실험실에 들어서니 아이오닉 5가 기계 위에 올라가 있었다. 이 공간에서 아이오닉5를 직접 구동해 사륜구동 포함 구동계 전체의 시험 평가를 진행한다. 전기차에 탑재되는 실제 배터리를 직접 활용하며, 주행 환경과 동일한 조건에서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든 영역에서의 EV 성능을 가장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다.

아이오닉5 차량 운전석에서 로봇이 가·감속 제어를 하고 있다.ⓒ현대차그룹
특이한 점은 운전석에 로봇이 기어, 액셀, 브레이크 등을 조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운전자의 역할을 대체하는 이 로봇은 가속과 제동을 위해 페달을 밟는 동작을 사람과 유사하게 따라 하고, 심지어 자동으로 변속까지 할 수 있다.

연구원이 장비를 가동하자 실제 아이오닉 5 차량 구동축에 연결된 장비가 돌아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차속에 따른 토크, 모터 온도, NVH 파형 등이 그래프로 나타났다.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를 분석하는 공간도 따로 마련돼있다. 배터리를 분석해 세부 구성 물질을 연구하는 곳이다. 배터리 셀을 구성하는 소재에 대한 정밀 분석을 통해 셀의 성능, 내구성, 안정성 등을 전체적으로 평가한다. 현대차∙기아가 배터리 내재화를 위해 자체 연구하고 있는 차세대 배터리에 적용될 신규 소재에 대한 분석도 진행하고 있다.

배터리 분석실은 소재 연구 특성상 온·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드라이룸 환경 하에 운영되고 있었다. 이재욱 재료분석팀장은 “전기차 배터리는 소재 특성상 수분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일정 온도와 습도 조건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드라이룸이라는 특수환경에서 셀을 해체하고 분석을 진행해야 신뢰성 있는 분석 결과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터리분석실 내 드라이룸 전경 ⓒ현대차그룹
분석을 위해 배터리가 처음 옮겨지는 장소는 ‘셀 해체실’이다. 배터리 셀의 구조 파악과 구성 소재 분석을 위한 시료 채취 작업이 진행된다.

셀 해체실 공간은 혹시 모를 화재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바닥, 벽면, 천장을 비롯해 테이블과 같은 기본 설비 모두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로 마감돼 있다. 또 해체실 한편에는 자동소화 설비가 적용된 흄후드와 각종 화재 차단 설비가 곳곳에 비치돼 있다.

채취된 시료는 드라이룸의 ‘전처리실’로 옮겨진다. 배터리를 구성하는 일부 소재가 수분과 산소에 민감해 글로브 박스 내에서 시료 절단 및 샘플링 작업이 진행된다. 샘플링 된 시료는 이후 ‘메인 분석실’로 이동해 배터리 구성 소재에 대한 기본적인 재질 및 화학구조 분석 등 정밀 분석이 진행된다.

1995년, 겨우 독자 모델을 만들어 미국 시장에 진출했건만 '싸구려' 오명을 벗지 못하던 현대차가 칼을 갈며 세운 남양연구소. 벤츠, 토요타 등 역사 깊은 업체들의 등을 보며 기술을 갈고 닦던 이곳은 이제 글로벌 유명 업체들마저 선망하는 개발 기지로 탈바꿈한 모습이었다.

글로벌 유수의 자동차 연구소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규모와 수준의 시험 설비들을 돌아보며, 현대차그룹이 전동화 시대에 돋보이는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기술 혁신과 경쟁력 향상을 통해 글로벌 게임체인저로 거듭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도전에 더 큰 기대가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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