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PF에 전세사기까지 덮쳐…저축은행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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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4.29. 오전 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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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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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정부의 전세사기 특별법안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4.28.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전세사기 사태까지 겹치면서 국내 저축은행들이 직격탄을 맞는 것이 아니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국내 저축은행 업계의 유동성에 대한 불안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전세사기 사태가 터지면서 저축은행의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번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대책 중 하나로 피해 임차인이 직접 경매 유예·정지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당국은 전 금융권과 함께 전세사기 피해자의 거주 주택에 대한 6개월 이상의 자율적 경매·매각 유예조치도 추진 중이다. 선순위 채권자인 금융권이 경매절차를 유예하면 피해자들이 거주지에서 곧바로 퇴거하지 않고 새로운 주거지를 찾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다.

다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자칫 금융사들의 부실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단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피해가 이어진 전세사기에 연루된 주택은 대부분이 빌라로,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의 대출이 대다수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더군다나 저축은행의 경우 시중은행 등 1금융권에 비해 자금력이 크지 않다는 점 등에서 이번 경매 유예 조치가 저축은행들의 유동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2금융권의 부동산PF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세사기 사태에 따른 경매 유예 기간이 길어질 수록 관련 자금 회수 시기 역시 늦어져 금융사들의 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저축은행의 부동산금융 자산은 총 5조2000억원으로 자기자본 대비 비중은 197% 수준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부동산금융 내에서도 브릿지론 비중(약 60%)이 높고, 자기자본 대비 브릿지론 비중 역시 약 110%로 A급 이하 캐피탈사(약 70%) 대비 높다. 이처럼 저축은행 업계의 부동산금융으로 인한 양적 부담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란 판단이다.

부동산금융 관련 자산건전성 지표도 급격하게 저하됐다. 본PF의 요주의이하여신비율은 2021년 말 14.6%에서 지난해 9월 말 23.7%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고정이하여신비율도 같은 기간 0.7%에서 1.4%로 빠르게 상승했다.

이런 가운데 실제 올 1분기 저축은행 업계가 9년 만에 적자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어 이러한 우려를 더하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올 1분기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순손실(잠정)은 약 6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저축은행이 적자를 내는 것은 지난 2014년 이후 9년 만이다. 순손실이 예상되는 저축은행은 약 25개로 자산규모가 큰 대형사도 포함됐다. 연체율은 5.1%로 지난해 말(3.4%) 대비 1.7%포인트 상승했다.

다만 저축은행 업계는 이번 1분기 영업실적 악화는 일시적·단기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판단이다. 저축은행은 2017년 이후 매년 1조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냈고 대부분을 사내유보해 그간 적립된 이익잉여금으로 이번 손실은 충분히 흡수 가능하다고 보고있다.

유동성비율도 규제비율을 충분히 웃도는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저축은행은 법정기준(100%)을 크케 웃도는 241.4%의 유동성을 보유 중이며, 저축은행의 일시적 유동성 부족 발생시 중앙회도 즉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마련돼 있단 설명이다. 아울러 연체율도 올 들어 급등하긴 했지만, 과거 연체율 수준을 감안할 때 아직 우려할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28일 '퇴직연금 서비스 혁신을 위한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시스템 리스크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중심으로 보면 일부 지표의 악화에도 저축은행과 관련 특정 포트폴리오는 여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다만 연체율이 꾸준히 올라가고 있는 것은 신규 연체 발생 부분도 있지만, 보유하고 있는 상각 대상 자산의 매각, 상각 절차가 지연되고 있는 부분이 있어 금융기관들이 부담을 떨어낼 방법이 있는지 금융회사 및 협회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전세사기로 인한 금융사들의 부담을 최소화 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 중이다.

이복현 원장은 "금융권 건전성 측면과 관련해 전세사기는 금액이나 자산 구조의 쏠림 측면에서 그렇게 걱정할 것은 아니다"며 "다만 결국 차주 등 소비자 측면에서 신속하게 챙겨보고 있고, 나아가 경매 진행과 관련해 결국은 누군가 경매 중단으로 인해 지연된 손해에 대한 부담이 생길 수 밖에 없는 만큼, 특정 민간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일방적으로 부담하지 않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은 부동산 PF에 따른 부실을 막기 위한 대응에도 나서고 있다.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약 130조원, 부동산 PF 사업장은 전국 3600여곳에 달한다. 금융당국은 이 가운데 지난해 말 기준 500여개의 PF 사업장을 보통 또는 악화 우려 사업장으로 분류해 집중 모니터링하고 있다. 연체율은 1.2% 정도다.

금융당국은 약 3800곳의 금융사가 참여하는 대주단을 통해 이들 PF사업장 3600곳에 대한 만기연장·상환유예 등 채권 재조정을 추진하고, 금융사들의 의결 절차를 거쳐 신규자금 지원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신규자금 지원 여부는 원칙적으로 4분의3 이상 채권을 보유한 금융사의 찬성이 요구되지만, 만기연장의 경우 3분의2 이상이 찬성하면 추진 가능하다. 이마저도 안 될 경우 경·공매 등을 통해 금융사는 채권 회수 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이번 전세사기와 관련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이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이번 사태로 인한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저축은행의 경우 다른 업권에 비해 더 많은 안전장치가 걸려있고, 올 2분기부터는 다시 (영업이)정상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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