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시장 골목을 바꾼 '스타벅스의 공간 철학'
1960년에 지어진 경동극장
멀티플렉스 시대 열리면서
1990년대 역사 속 사라져
"공간이 가진 DNA 보존"
내리막 계단 따라 좌석 설치
스크린 자리에 음료 제조바
잿빛 벽도 옛 모습 그대로
간판을 따라 들어선 상가에서는 흙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복도를 따라 인삼을 파는 매장이 모여있는 영향이다. 두리번거리는 낯선 방문객이 익숙하다는 듯, 상인들은 복도 끝 계단을 가리켰다. 상인들이 가리킨 곳을 따라 3층까지 계단을 올랐다. 마스크 속으로 커피 향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경동극장은 1960년 지어졌다.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리면서 1990년대 들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폐관 이후 창고나 촬영용 세트장 등으로 간간이 쓰이긴 했지만, 방치되다시피 한 곳이었다. 천덕꾸러기이던 이곳은 이달 초 스타벅스 경동1960점으로 재탄생하며 ‘핫플레이스’로 부활했다.
스타벅스는 매장 기획 단계부터 공간 DNA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극장의 계단식 구조를 그대로 살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매장 내 소파 좌석들은 내리막 계단을 따라 층층이 놓여 있다. 가장 아래쪽, 한때 스크린이 있던 자리에는 음료 제조 바가 들어섰다. 소파 좌석은 바 방향을 바라보도록 배치돼 무대를 바라보는 객석을 연상케 한다. 나무와 목재로 만든 레트로한 소파, 소파 사이사이 놓인 유리 갓 스탠드 등도 극장 분위기를 더한다.
거친 질감의 잿빛 벽도 옛 모습 그대로 남겨뒀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목조 트러스 구조가 노출돼 있다. 이 또한 경동극장 시절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계단 맨 위에 있는 영사실은 직원용 회의실로 쓰인다.
빔프로젝터를 활용해 음료 주문번호, 고객의 닉네임을 스크린에 띄우는 것도 극장 콘셉트에 충실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일반 모니터를 설치할 경우 매장 콘셉트에 맞지 않는다는 고민이 있었다”며 “극장이라는 콘셉트에서 필름이나 영사기 아이디어가 나왔고, 빔프로젝터로 영화 엔딩크레딧처럼 주문번호나 고객의 닉네임을 띄우자는 의견이 구체화됐다”고 설명했다.
옛 극장의 구조와 콘셉트를 그대로 살린 스타벅스 매장은 세계에서 스타벅스 경동1960점이 유일하다. 전례 없는 매장을 기획하게 된 데는 ‘커피가 아닌 문화를 판다’는 스타벅스의 철학이 녹아 있다. 편안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아늑한 공간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지역 사회의 맥락을 반영한 공간을 추구하자는 취지다.
입점 상담을 신청하면 스토어개발팀이 이를 검토해 유치 여부를 결정한다. 스타벅스 경동1960점에 대한 기획도 경동시장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스타벅스는 ‘승인’이 아니라 ‘협의’를 통해 매장을 기획한다고 설명한다. 규격화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최소한으로 적용하고, 매장이 들어서는 지역의 여건을 우선 고려해 개성을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둔다는 얘기다.